희망퇴직 거부한 50대 가장의 마지막 직무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최문희 2026. 4. 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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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앗아갈 수 없는 인간의 희망... 김혜진 장편소설 <9번의 일>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기자]

희망퇴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도는 요즘이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창사 이래 희망퇴직을 받지 않았던 마이크로소프트사조차 4월 말, 근속연수와 자기 나이를 합쳐 70이 넘는 '시니어 디렉터급'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희망퇴직을 말 그대로 '희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거절해도 일명 지옥이 펼쳐진다. 인간의 고유한 생애주기 따위 고려하지 않는 이 제안을 거절하면, 좌천되거나 갖은 수단으로 괴롭히는 회사의 꼼수가 펼쳐질 테니까.

그래서 오늘날 희망퇴직은 매일 출근하던 곳으로부터 나의 쓰임이 끝났음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최후의 직무'를 뜻한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남자의 근무일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만 해도 낯설었던 단어, 희망퇴직은 2026년 오늘날엔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희망'이니, '명예'니 허울 좋은 수식어를 달고 회사에 헌신했거나 그러했다고 믿어온 고경력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그러나 김혜진의 장편소설 <9번의 일>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다르다. 그는 퇴직을 '거부'하고, 현직에 남아있기를 '희망'한다.
 장편소설 <9번의 일>(김혜진)
ⓒ 한겨레출판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간" 일해온 주인공은 평범한 50대 남성. 마트에서 일하는 아내, 고3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아버지이자, 아프고 형편 어려운 양가 어른을 틈틈이 챙기며 살아왔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오래된 단골 이발소가 있고, 동료와 담배를 태우던 명소가 있고, 입사 시절엔 영세했던 회사를 키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자부심도, 그가 살아낸 삶의 맥락도 읽을 마음이 없다. 어느 날, 인사팀 부장의 호출을 받은 주인공은 '희망퇴직' 대상자에 자신이 포함됐음을 직감한다. 예의를 갖추고 퇴사를 종용하는 어린 부장을 뒤로하고 남자는 결정한다. 회사에 남아 있기로. 이후 그는 지하 강당에서 수상한 교육과 질책을 받고, 급기야 그동안 해온 직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유배' 당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가득한 상품 판매부서로 발령난 주인공. 그러나 "인터넷 아저씨"라 불리며 의외의 성과를 거둔다. 이주노동자 청년 '차오'의 숙소에서 와이파이를 잡아준 일을 계기로 인터넷 상품 계약을 따낸 것. 이후 계약과 무관한 일을 청하는 주민들에게 환심을 얻어 판매에 자신감도 얻지만, 텃새로 위기에 몰려 더 열악한 일터로 몰린다. 그는 회사의 속셈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침내 자신이 회사가 만들어놓은 시험장 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직감하게 된 거였다."
- <9번의 일>(김혜진) 중에서

꺾이지 않는, 낙인찍힌 '잉여인간들'

어떤 업무도 받지 못 해 '잉여인간'으로 내몰린 인물들은 이 소설에 다양한 인간군상으로 나온다. 고객센터에서 최다 실적을 내왔지만 정년 전에 좌천된 황 여사, 5년간 자기 능력에 맞는 직무를 달라고 요구해오다가, 분신으로 사망한 동기 종규 등이 주인공과 닮은꼴이다.

세상을 뜬 종규의 분향소에서 주인공은 노조 사람들의 연설을 듣는다. 노조는 처음엔 종규의 죽음을 애도하다가 "회사에 대한 분노와 비인간적인 처우"에 성토하고, "세계와 빈곤 같은 거대한 단어" 를 부르짖기에 이른다. 친구 종규의 존재가 증발한 것 같은 헛헛함 속에서 주인공은 짐작한다.

"종규의 삶에도 타인이 결코 짐작할 수 없는 성취와 감동, 만족과 기쁨, 즐거움과 고마움의 순간"이 자명했을 것임을. 그리고 이내 달갑지 않을 자신의 미래를 점친다. 온통 회사에 맞서느라 소진한 어떤 껍데기 앞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종규와 닮은 자신의 내일을. 그럼에도 주인공은 버티는 쪽을 선택하고, 지역 소도시 시설팀으로 또 다른 '유배'를 당한다.

이번에 발령 받은 곳은 주택도 거의 없는 허허벌판. 30년간 상담 업무만 해왔다는 황 여사와 한 팀이 되어 통신 설치와 수리 일을 분담한다. 주인공은 황 여사의 업무 할당량을 채워주는 수고를 감당하지만 황 여사는 늘 당당하다. 뭐든지 해봐야 터득할 수 있다는 여사는 업무 와중에 여럿 사고를 치는데, 신기하게도 밉지가 않다.

황여사는 주인공의 공구함에 담긴 못을 살뜰하게 정리해준다. 통신 설치 일에 숙달되지 않아 동료에게 기대는 데서 비롯된 미안함을 메꾸고 싶어서. 플라스틱 반찬함마다 못의 크기와 종류를 구분해 담아준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든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고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기꺼이 감수"해낸다는 믿음이 어려 있다는 것.

이 말을 뒤집으면 '불안에 대한 항거'일 텐데, 그동안 해온 일을 해냄으로써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증명'이 별스럽지도, 아프지도 않게 자기 온도에 딱 알맞게 그려진 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인물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싶다. 그것은 간신한 숨 쉬기와 닮아 있다.

탑 건설 반대 지역까지 다다른 노동의 끝

소설 중반부쯤, 독자는 예감하게 된다. '이들은 자기 성정대로 하겠구나." 소설가의 전작 <딸에 대하여>(2017)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주인공이 자신이 맡은 노인을 끝끝내 구하려 했던 것처럼, <9번의 일>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고집스레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려 한다. 어떻게든 쇠락하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기이하게도 '주체적 선택의 결단들 ' 같아서 읽는 내내 절망적이지 않다.

연일 이어진 농성과 법원의 판결 끝에 주인공은 하청 소속으로 새로운 발령을 받는다. 주인공은 업무가 완료되면 본사로 복귀한다는 조건에 다시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이번엔 "78구역 1조 9번"이라는 근무자가 되어, 철탑 건설 반대를 내건 움막 가득한 마을에서 탑 세우는 일을 맡는다.

이윽고 펼쳐지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몇 해 전 봤던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을 짓는 사측 직원과 건강권을 침해 받는 마을 주민이 격하게 대치하는 장면들. 독자는 상상하게 된다. 생존권을 걸고 탑을 철거하라 부르짖는 주민들 앞을 가로막은, '가해자'가 되어버린 한 노동자의 처지를. 티끌만 해진 존엄을 잃고 싶지 않은 한 인간의 뒷면을.

주인공은 주민들에게 멸시 받으며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겁에 질린 같은 표정으로 마을 사람과 맞서며 "누가 더 절박한지 경쟁"하고, 그 도가니 속에서 탑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갈 데까지 갔음을 직면하며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한 이상한 오기를 모두 버릴 수" 있음을 예감한다. "이게 상식적인 일이에요?" 묻는 질문에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 답한다.

주인공은 모든 걸 걸고 견딘다. 여전히 탑 위에서 스패너를 쥔 자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좋아하고, 농성 현장에서 다친 동네 개를 선의로 치료해주며. 그리고 어느 날,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철탑으로 향한다. 이 대목이 소설의 백미니, 놓치지 않기를.

2019년에 나온 소설 <9번의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절박한 사유의 실마리를 준다. AI 산업으로 인력시장이 급박하게 축소되는 요즘, 소설은 AI가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통념을 뒤집어, 그럼에도 앗아갈 수 없는 인간의 독특하고 여전한 희망을 타진한다.

"먹고사느라 그랬어." 푸념하는 악하고 선한 사람들 노동의 곡절을 헤아린 이야기의 끝에서, 어렴풋한 믿음 한 가지를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의 노동은 막연하지 않았다고. 어쩌면 우리도 그 믿음으로 오늘을 버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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