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벨트'에 올라타지 못한 통계학 전공 학생입니다

최강훈 2026. 4. 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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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커뮤니티 'OOOO vs 하이닉스' 게시물 화제...취업 시장 쏠림 현상이 낳을 문제도 생각해야

평소 취미가 '딱히 없다' 말하지만 '에브리타임'과 같은, 대학생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매체에서 비슷한 세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런 제 눈에 요즘 자주 보이는 게 '하이닉스 찬양글'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드는 생각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기자말>

[최강훈 기자]

"조선시대 이조판서 vs 2026년 하이닉스 입사자, 누가 더 대단함?"

얼핏 보면 실소를 자아내는 이 질문은 최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OOOO vs 하이닉스'라고 검색하면 올라오는 게시글의 제목이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 'OOOO vs 하이닉스' 검색 하면 나오는 화면
ⓒ 최강훈
비단 이조판서뿐만 아니다. 재정경제부 차관, 한미연합군사령관, 심지 과거 행정고시, 사법고시 합격자까지 호출되어 계급장을 떼고 반도체 기업 사원과 붙는다. 과거라면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았을 이들의 대결이 최근 대학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취업 준비 중인 4학년 선배와 나눈 대화 내용도 그랬다.

"요즘 반도체 호황이라 대기업, 특히 하이닉스 들어가면 그게 최고의 효도야. 내 주변에 하이닉스 들어간 형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죄다 부러워 하더라."

하이닉스에 열광하는 사람들... 자본주의적 장원급제?

취준생 형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도 매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취업 얘기를 꺼내는 빈도가 늘었다(이제 대학교 2학년인데). 솔직히 내키지는 않지만 꾸역꾸역 듣다보면 나오게 되는 결론은 항상 비슷한데, 대강 이러하다.

"우리 강훈이 하이닉스 같은 데 들어가면 소원이 없겠네... 요즘 하이닉스가 대세잖아 대세."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런 말이 직관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궁금했다. 통계학을 전공하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왜' 갑자기(?) 대학가나 사회 전반에 하이닉스 열풍이 발생한 것인지 궁금증이 들어 뉴스를 찾아봤다.

가장 큰 이유는, 하이닉스가 역대 최고치를 아득히 웃도는 실적에 영업이익을 냈기 때문이다. 4월 23일 보도자료에 의하면, SK 하이닉스가 1분기에만 무려 37조 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한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7조4405억 원) 대비 405.5% 급증한 수치고, 바로 직전 분기에 달성한 19조1695억 원과 비교해도 96.2%가 늘어난 규모다. 1분기 영업이익율은 71.5%였다.

무엇보다 하이닉스 노사는 영입 이익 10%를 상한선 없이 성과급으로 주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지금된 성과급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급될 성과급에 대한 기대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천문학적 영업이익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 2025년 11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전시장에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 HBM3E가 전시돼 있다.
ⓒ 연합뉴스
하이닉스의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AI 시장의 변화이다. 수동적인 '생성형 AI'를 넘어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에이전틱 AI'가 다양한 업무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 고도화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고용량 D램 등을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이라 할 정도로 팔아치우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업의 소식은 취업과 그것을 위한 학업에 매몰된 대학가에 큰 여파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내가 느끼기에 이런 분위기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는 부러움을 넘어, 과거의 고시나 권력이 가졌던 위상에 버금가는, 혹은 능가하는 새로운 성취 지표가 된 듯하다. '압도적인 자본력과 보상'으로 성공이 재정의 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이닉스와 같은 기술 기업에 열광하는 현상은 가히 '자본주의적 장원급제'라 보아도 무방할 듯 싶을 정도다.

물론 '에브리타임'엔 반 진심, 반 농담으로 올린 게시물들이 대부분이다. 소위 '바이럴'처럼 올라오는 이런 게시물에 실증이 났는지 댓글도, '미국 대통령이랑 해도 하이닉스 압승임', '(그냥) 하이닉스라고 해주자' 등의 장난에 동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현상을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승전 '반도체'로 귀결되는 취업 시장의 쏠림이 던지는 질문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종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29.46포인트(0.46%)오른 6417.93으로 마감했다. 2026.4.22
ⓒ 연합뉴스
취업을 앞둔 대학생 입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영업실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성과급을 지급받는 직원들이 부러워 보일 뿐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돈'만 보지 않는다면, 하이닉스의 이런 이례적인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화려한 성과급 잔치의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도 물론 존재한다. '하이닉스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정 기업과 학과에 자본과 관심이 쏠리는 사이, 반도체 벨트 밖에 서 있는 인문계나 기초과학 전공 학생들은 묘한 상대적 박탈감을 마주한다.

당장 통계학과인 나도 이 상황에 그다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소식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나와 같은 취업 시장에서 소외된 전공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맞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여도나 학문적 가치와 별개로, 오직 '영업이익'이라는 단일 척도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듯한 분위기가 대학가를 거대한 '전공 양극화'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조판서'라는 과거 권력의 상징과 '하이닉스 신입사원'이라는 실리적 가치와 나란히 선 모습은 어쩌면 확실한 보상을 갈구하는 지금 청년 세대의 솔직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열풍의 이면에 반도체 벨트에 올라타지 못한 이들의 소외감 또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승전 '반도체'로 귀결되는 취업 시장의 쏠림 현상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고민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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