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으로서 사과드립니다"...이 영화가 만든 놀라운 장면

임경희 2026. 4. 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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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사북, 늦은 메아리] 영화 <1980 사북>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임경희]

우리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중립성'을 기대해왔다. 카메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고, 감독은 그 안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정말 당연한 걸까.

많은 다큐멘터리가 이미 그 경계를 넘나들어 왔지만, 영화 <1980 사북>은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끌어온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현실을 보여주는 반영 매체일까, 아니면 갈등에 개입할 수 있는 실천 매체일까.

영화는 화해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 <1980 사북> 포스터
ⓒ 엣나인필름
영화 <1980 사북>의 시작은 이렇다. 2019년 4월, 박봉남 감독은 사북 출신이자 광부의 아들인 황인욱으로부터 "사북에 한 번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았다. 오랜 시간 소외됐던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사회적으로 환기하려는 기대가 담긴 요청이었다. '사북사건'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어느 한쪽의 입장을 택하기보다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역사적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해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2024년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첫 상영을 마친 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감독은 선언하듯 말한다.

"이 영화는 지역 공동체의 화해와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사북 사건 이후, 주민들 사이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면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밀고했던 기억은 불신과 분열을 키웠다. 폐광 이후 어려운 상황까지 겹치면서 공동체는 더 심하게 무너졌다. 이 문제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다뤄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박봉남 감독은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잇는 '중재자'로 나선다. 역사 해석에서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현실에서는 적극적으로 관계 회복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영화 <1980 사북>은 바로 그 두 태도 사이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화해의 '중재자'가 된 감독

감독의 화해 전략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구체화된다. 사북 사건은 생각보다 연구가 많지 않다. 강원도 소읍이라는 지역적 한계와 광부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오랫동안 관심 밖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감독은 직접 움직였다.

광부와 가족, 회사 관계자, 경찰, 정보과 형사, 재판부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60회가 넘는 촬영과 6천 장이 넘는 기록이 쌓였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들이 기존 연구의 공백을 채웠다.

감독은 단순히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사북사건을 다시 기록하고 해석하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된 셈이다. 또한 그는 토론회와 공론장에도 적극 참여하며, '늦은 메아리'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사회적 의제 확산에도 가담한다. 이 작업은 학문 밖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역사 기록'이자,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공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상영회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봉 전인 2025년 4월 20일, 영월에서는 전직 경찰 모임과 가족들을 초청한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이 끝난 뒤, 광부 대표 이원갑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사건으로 경찰관이 목숨을 잃고, 지부장 부인 등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분과 유가족 및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 45년 만에 서로 손 맞잡은 광부와 경찰 2025년 4월 20일 영월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1980 사북' 특별상영회 직후 광부 측 대표 이원갑(사진 왼쪽 두 번째) 씨가 당시 진입경찰로 피해를 입은 진문규(맨 오른쪽)·이종환(오른쪽 두 번째)·최병주(가운데) 등 전 영월경찰서 소속 경찰들과 손을 맞잡고 화해의 뜻을 전하고 있다. (영화사 느티 제공)
ⓒ 영화사 느티
이 사과는, 사건 당시 진압에 동원되었다가 피해를 입은 전직 경찰들을 특별상영회에 초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영화 상영이 끝난 직후, 경찰 측 피해자였던 진문규와 광부 측 대표 이원갑은 서로 적대적 위치에 섰던 45년의 세월을 넘어 서로 포옹을 했고, 그 후에도 두 사람은 직접 소통을 시작했다. 이는 영화와 상영회가 갈등 해소의 단초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피해 당사자들의 화해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흐름은 같은 해 12월 원주 상영회에서도 이어진다. 광부 대표 이원갑과 당시 군사법원 재판관 임원배가 4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임 재판관은 "내가 잘못했으면 여기서 질타를 받을" 마음으로 참여했다면서 영화를 보고 사북사건을 처음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니까 그동안 제가 알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 중에 참 나쁜 역사, 이것이 지옥이 아니겠느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감상을 했습니다. (중략) 오늘 보니까 그때 예상을 했던 것보다는 너무나 차이가 많고 이렇게 고문을 당하고 이런 것을 제가 다 짐작은 했습니다마는 왜 이렇게 심한지는 알지를 못했고 오늘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임원배, <1980사북> 원주 상영회에서 한 발언 중에서, 2025년 12월 19일)

그는 "국가를 대신할 처지는 못 되지만, 재판을 한 사람으로서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사과 말씀을 올린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서로 포옹하고 있는 사북사건 재판관 임원배씨(왼쪽)와 당시 구속된 광부 이원갑씨 지난 2025년 12월 19일 원주에서 열린 영화 1980사북 원주시민초청상영회 직후 사북사건 광부 피해자 이원갑씨와 당시 재판관 임원배씨가 45년 만에 서로 만나 서로 포옹하고 있다. (영화사 느티 제공)
ⓒ 영화사 느티
화해에 필요한 용기

영화에는 두 가지 화해 행동이 등장한다. 하나는 황인오가 노조지부장 이재기의 횡령 액수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던 오해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사과(해당 부분은 DMZ영화제 버전에 포함되어 있다가 개봉 버전에서 빠졌다), 또 하나는 광부를 대표하여 이원갑이 노조지부장 아내 김순이를 향해 쓴 사과 편지다. 이 장면들은 주변 사람들의 설득도 있었겠지만, 당사자들이 용기를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가 일관되게 지켜왔던 태도와 방향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특히 노조지부장 가족의 영화 참여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감독은 5년 동안 관계를 이어가며 설득했다고 한다. 최대한 객관적 시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감독의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감독에 대한 일말의 신뢰가 없었다면, 그들은 감독의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영화의 이야기에 말을 섞지 않았을 것이다.

화해의 과정은 곧은 길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영월 상영회 직후 언론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경찰 공격해 사망하게 한 광부들 고개 숙여 '잘못된 일'"이라는 제목으로 광부가 '폭도로서 사과'하는 측면을 강조하며 피해자들과 연구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는 "45년 전 계엄령 하의 사북사태 '광부⋅진압 경찰 모두가 피해자'"로 표현하며 광부와 경찰을 동일한 피해자로 묶었고, 이는 반대로 경찰 측에 불편함을 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갈등은 실패라기 보다, 오히려 화해가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화해는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가기도 하고, 다시 흔들리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화해의 과정은 한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지 않는다. 마침표 찍힌 결과도 없다. 사람마다 기억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보통 감독의 역할은 영화를 완성하고 상영하는 데서 끝나지만, <1980 사북>의 감독은 그 이후에도 사건 당사자와 다양한 주체들 사이를 잇는 역할을 계속한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선택이지만, 이런 감독의 실천이 있었기에 실제로 뜻깊은 만남과 의미 있는 후속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 지점에서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실천의 장'이자, 갈등이 화해로 전환되는 매개가 된다.
▲ 늦은메아리운동 늦은메아리 운동 스크린을 배경으로 영화 <1980사북>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정선지역사회연구소)
ⓒ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영화의 울림이 극장 밖으로 나와 '늦은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침묵과 단절 속에 머물러 있던 사건이 공공의 장으로 호출되고, 공동체 간 소통과 이해의 공간으로 전환되어 과거가 더 이상 고통의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이고 있다.
치유되지 않은 기억은 상처로 전승된다. 그것은 분노와 불신, 설명되지 않는 두려움으로 남아 공동체를 갈라 놓는다. 하지만 화해의 과정을 거친 기억은 다르게 남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잘못됐는지, 그리고 공동체가 어떻게 그것을 마주 했는지를 함께 기억하게 된다. 그 기억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자산이 된다. 이런 점에서 <1980 사북>은 기억을 나누고 관계를 다시 잇는 화해의 공간이다.
▲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이행 촉구 사북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기자회견 사북항쟁 제46주년을 1주일 앞둔 14일 오전 사북민주항쟁동지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이행을 촉구하는 사북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사북 사건 피해자들은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 발생 46년을 맞는 2026년 4월 14일, 국가폭력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청와대 앞에 모여 국가사과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미래 세대는 책과 이야기, 그리고 때때로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운다. 국가가 어떻게 시민을 침묵 시켰는지, 그 침묵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 상처 입은 공동체가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 '1980 사북'의 역사는 그 생생한 과정을 보여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경희 : 강원대학교 평화학과 박사 과정,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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