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광주 이전? 무리수 두는 민주당과 침묵하는 최휘영 장관

곽우신 2026. 4. 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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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해외에서도 실패로 돌아간 예술대학 지방 이전... 현장성 무시한 '껍데기 이전' 멈춰야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곽우신 기자]

▲ 한예종 이전 법안 발표하는 정준호·민형배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알렸다.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예비후보도 자리에 함께했다.
ⓒ 정준호 의원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가 또 무리수를 뒀다.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을 압박하던 게 엊그제인데, 이번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를 전남·광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형배 후보 혼자 이런 주장을 한 게 아니라, 광주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관련 법안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대표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골자는 한예종을 올해 7월부터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전면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당근'으로는 한예종의 숙원 사업이었던 '일반대학원 설치'를 내걸었다. 이들은 지난 2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예종 광주 이전을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를 분산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실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법안은 현재 뜨거운 감자가 되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논란'이라고 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안 그래도 낙하산 인사로 격분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에 폭탄을 던진 셈이다.

조선왕릉(의릉)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는 언젠가 이전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지역이 '전남·광주'여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예술의전당 인근에 있는 서초동 캠퍼스, 혜화동 대학로 근처에 있는 대학로 캠퍼스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도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술 대학교나 학과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건 구시대적일뿐더러 이미 실패로 결론 났다. 애초에 정치 권력이 나서 국립예술대학교를 지방으로 통째로 옮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다분히 다가올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노린 공약일뿐더러, 문화예술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는 정책이다.

[해외] 2700억 원 들여 도심으로 돌아온 교토시립예술대
▲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석관동 캠퍼스 전경. 석관동 캠퍼스는 조선 왕릉(의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전 필요성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섣부른 예술대학 이전은 실패로 끝나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훨씬 많다.

대표적으로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의 회귀 사례가 있다. 교토시립예술대학은 1980년 니시쿄구(오에다 쿠츠카케초) 외곽으로 캠퍼스를 옮겼지만, 넓은 부지 대신 '예술적 고립'도 얻게 됐다. 학생들의 전시나 공연이 대중과 맞닿을 만한 접점이 형성되지 못했고, 예술 현장과도 거리가 멀어지며 업계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졌다. 교토시는 공식 문서를 통해 이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시내 중심부 입지가 바람직하다"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교토시와 학교 측은 막대한 예산(약 271억 엔)을 들여 2023년 10월, 교토역 인근 도심인 스진 지구로 캠퍼스를 전면 이전했다. 일본의 도시재생 및 예술계에서 큰 화제를 모은 사례로 새 캠퍼스를 설계하며 학생과 시민, 관광객과 비즈니스 인프라가 뒤섞이는 데 방점을 뒀다. 담장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술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재차 증명한 셈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문화 예술의 '수도권 중심화'를 경계하며 지역 분권에 심혈을 기울이는 국가이다. 이를 문화 분권화(Décentralisation culturelle)라고 하는데, 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프랑스조차 국가의 최상위 예술 교육 기관을 강제로 지방에 이전하지 않는다. 예컨대 파리국립고등음악무용원(CNSMDP)이나 파리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등은 여전히 예술의 도시 파리에 자리하고 있다.

대신 프랑스는 각 지역의 독립적인 문화예술 기관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이미 생태계에 녹아들어 뿌리내리고 있는 수도권 예술 학교를 그대로 뽑아서 지역에 이식하는 게 아니라, 각 지역 환경에 맞는 문화 예술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각 지역에 '지역현대미술기금(FRAC: 1982년)'을 만들었고, '국립드라마센터(CDN: 1972년)' 등의 지역 공연예술 거점을 구축했다. 유명한 퐁피두 센터의 메스(Metz) 분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랑스(Lens) 분관 건립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이다.

[국내] 역시 실패로 돌아간 예술대학 캠퍼스 지방 이전

국내에서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이 캠퍼스 이전의 부작용을 겪은 대표 사례이다. 중앙대는 1980년 안성캠퍼스가 신설되면서 예술대학을 안성캠퍼스로 이전했고, 1982학년도부터 신입생을 안성캠퍼스에서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에 가깝다. 중앙대 학보사인 <중대신문>의 2011년 당시 이연화 부총장의 인터뷰를 보면 "지난 30년간 우리 예술계열은 서울에서 안성으로 이전하여 경쟁력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 부총장은 오히려 "예술의 메카 뉴욕, 파리, 런던을 보라"라며 "도시 한 복판에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있다. 예술의전당에 있는 한예종이 좋은 예"라고까지 거론했다. 중앙대학교는 결국 일부 공연예술 교육 기능을 다시 서울 현장 쪽으로 옮겨야 했다.

서울 남산에서 경기도 안산으로 2001년 캠퍼스를 옮겼던 서울예술대학교도 여러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우수한 예술인들을 오래도록 배출한 명문대학교이지만, 캠퍼스 이전 이후 대학로나 충무로 같은 주요 문화 중심지와 멀어지며 교류와 학습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비판이 안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2020년, 서울예술대학교가 서울시에 임대했던 공공극장을 환수하며 연극계의 큰 반발을 산 바 있는데, 당시 학교 측에서 내걸었던 명분은 '안산 캠퍼스의 한계 극복'으로 귀결됐다. 학생들의 현장 진출과 산업 연계를 돕기 위한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를 서울 한복판에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실제 예술대학들은 학생 모집, 현장 접근성, 산업·공연 인프라를 이유로 오히려 수도권 접근성을 강화해 왔다. 한예종이 지방으로 옮겨 갈 경우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모양새가 된다.

학교와도 학생과도 소통 없었다
▲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리모델링을 마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 전경. 예술의전당 인근에 있는 서초동 캠퍼스(음악원)은 예술대학과 공연현장의 융합이 잘 되어 있는 사례로 꼽힌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예종은 지난 28일 공식 입장을 내고 "예술 교육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라며 "예술적 영감과 실무적 역량은 현장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전문 인프라와의 접근성, 그리고 예술 생태계 전반의 유기적인 결합 속에서 탄생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전 논의는 대한민국 예술 교육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라는 이야기였다.

학교 측은 이전 반대의 근거로 ▲예술 교육의 핵심인 '현장성'과 '네트워크'가 위축될 수 있다 ▲대학의 주체인 학생과 구성원들의 충분한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학위 과정 설치'와 '학교 이전'은 본질적으로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되어야 할 문제다 ▲지역 균형 발전의 취지가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예술계와 시민 사회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무겁게 살펴봐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특히 "주무 부처를 비롯한 정책 당국과의 실무적 협의 없이 진행되는 해당 안은 학교의 경쟁력을 상실시킬 위험이 크므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예종 학생들 역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예종 총학생회는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본 법안(광주 이전)은 학생들에 대한 고려나 일말의 예고 없이 추진된 주장"이라며 "문화예술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지난 28일에는 석관동 캠퍼스 예술극장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방세희 총학생회장은 "단순히 서울의 성공 모델을 오려내어 지방에 붙여 넣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 지역에 문화예술의 자생력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이는 빈껍데기만 남는 '껍데기 이전'이 될 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인프라와 생태계가 없는 물리적 이전은 결국 학생들과 학교를 정치적 도구로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도 꼬집었다.

한예종 고사 우려 큰 지방 이전

못자리의 모가 다 자라면 모를 옮겨 심어야 한다. 그러나 모를 옮길 때가 되었다고 아무 밭에다가 심어두면 모는 금세 말라 죽는다. 모를 심기 위해서는 논을 미리 갈아엎고 물을 대며 모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광주·전남을 '예향'으로 더욱 키우겠다면, 화려한 외피 속에 앙상한 콘텐츠로 황폐화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부터 살려야 한다. 지역에서 고생하고 있는 예술단을 키우고, 지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문화예술 학생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한예종과 경쟁할 만한 새로운 '국립아시아문화대학'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광주·전남으로 한예종을 옮기는 것은 잘 자라고 있는 모를 돌밭에 옮겨 고사시키겠다는 격이다.

오죽하면 국민의힘이 '맞는 말'을 하는 지경일까.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29일 "한예종 전남광주 이전법, 예술을 정치의 놀이터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학생들마저 볼모로 삼으려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예술을 권력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며 학생들의 미래까지 매표 행위에 이용하겠다는 수작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마저 SNS를 통해 "한예종 구성원들의 오랜 숙원인 대학원 설치 문제를 광주 이전과 맞바꾸는 '끼워팔기'로 묶어버렸다"라며 "'석·박사 과정 줄테니 일단 떠나라'는 식의 일방통보가 어떻게 민주주의일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민주당과 문체부의 침묵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일 '문화가 있는 날'의 매주 수요일 확대 시행을 기념해 서울역에서 열린 '수요일은 문화요일, 문화로 놀자!' 공연에서 직접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29일 오후 현재까지 침묵하고 있다. 자당 의원들이 논란이 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당 지도부는 가타부타 말도 없고 입장도 없다.

한예종의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뉴스1에 "(한예종 이전을) 검토한 바 없다"라고 응답한 것 외에는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선글라스 끼고 기타를 치며 '문화가 있는 날'을 홍보하던 최휘영 장관도 이 사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최소한 문화예술계 특수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점만 드러냈다. 문화예술계의 현안이 된 한예종 지방 이전 문제에 대해 여당과의 정책 조율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면 최 장관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뭔가. 연속된 문화예술계 인사 참사의 책임만 해도 가볍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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