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함께 먹은 '최애' 요리, 식당 기둥에서 발견한 글

이정미 2026. 4. 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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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 옛 동네를 만나고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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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기자]

'꽃이랑 열매가 꼭 닮았구나!'

블루베리 나무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난생 처음 본다. 블루베리 꽃이 이토록 앙증맞고 고상할 줄이야. 꽃과 열매가 서로 꼭 닮았다. 색이 우아한 아이보리 빛을 머금은 '하양'이다. 손톱 만한 꽃망울이 사랑스럽다.

꽃이 피었다는 것은 열매가 맺힐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1년 만에 블루베리 맛을 볼 수 있다는 뜻. 이것은 기적이다. 최소한 2~3년 기다릴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어쩔 수 없다. 귀엽고 예쁜 것은 '옳다'. 귀엽고 예쁜 것을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마음도 그들을 닮아간다. 자주 가까이 할 일이다.
 블루베리 꽃
ⓒ 이정미
기대하지 않았는데, 상상하지 못한 모양으로, 그것도 몰래, 게다가 취향을 저격하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장착한 채 모습을 드러낸다면, 넘어가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 꽃등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한 연둣빛 암술 주위를 갈빛 수술이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꽃봉오리가 암술과 수술을 포근하게 안아 보호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일듯 말듯 감춘 모양새가 더욱 고상하고 우아하다. 무릎을 한껏 낮추어 깨끗하고 맑은 얼굴을 보고 또 본다. 좋다. 며칠 간은 아마 요놈의 얼굴을 자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갈 것이다.

지난 26일은 어머님의 87번째 생신날이었다. 토요일 다른 일정이 있어 밤 늦게 느루뜰에 들렸다. 지난 주말에 옮겨 심은 모종들과 채소들의 안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일요일 아침에 선물같은 블루베리 꽃을 기쁘게 만나고 채소 모종에 물을 주고 이것 저것 손길이 필요한 곳을 어루만진 후 어머님 댁으로 출발했다.

어머님을 따라 나선 곳

"복집에 가자. 내 아는 복집이 있다."

지난 주에 느루뜰에 오셨을 때 생신 점심으로 '복국'을 먹자고 어머님이 제안하셨다. 자세한 설명은 없으셨다. 나는 '우리가 자주 갔던 시내 그 복집을 말씀하시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 어머님은 오래된 명함 한 장을 내보이셨다.

식당 이름과 주인장 부부의 핸드폰 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님이 아시는 먼 친척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오랜만에 이 식당을 찾는 어머님의 다소 흐릿한 기억에 기대어 식당을 찾아가는 길, 몇 번의 우왕좌왕이 있었고 결국 명함 속 주인장님께 전화를 걸어 식당 이름이 바뀐 것을 확인한 후에야 제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무슨 사연이신가요?"

식당 문을 열자마자 내 눈 앞에 펼쳐진 예사롭지 않은 그림들과 둥근 기둥을 가득 메운 글귀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웃으며 다짜고짜 여쭈었다. 누구의 그림인지 묻는 나의 질문에 안주인님은 북한 화가가 그린 그림, 몽골 화가의 그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셨다.

어머님과 남편이 주인장 부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나는 액자 속 그림들과 기둥을 장식한 글귀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제가 좋아하는 글귀들이 가득하네요. 그림도 예사 솜씨가 아닌데요. 주인장님이 직접 쓰시고 그리신 건가요?"
"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안주인님의 답변이다. 내 마음 속에는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를 살피느라 그 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점심 시간이라 하나 둘 다른 손님들도 오셨고 주방의 손길은 바빴다. 어머님도 시누이, 형님, 아가씨 부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어 수육, 복 튀김, 부추 부침개, 복껍질 무침, 미나리 양배추 새콤 절임이 차려졌다. 부드럽고 온화한 맛이 좋은 복어 수육, 바삭 바삭 고소하고 담백한 복 튀김을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복 요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의 '최애' 요리 중 하나이다.

연신 맛있다며 먹고 있는 사이 마지막으로 복지리탕과 비빔밥이 나왔다. 그리고 식당 사장님과 안주인분이 의자를 가져와 어머님 옆에 다소곳이 앉으셨다. 나는 지금껏 참아왔던 궁금함을 여쭈었다.

"응~ 내 외삼촌의 아들이시다."

그제서야 나는 식당 사장님과 어머님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세가 63세라는 것과 대학 나와서 30년째 복요리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다는 것을.

"코로나 때 심심해서 기둥에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옮겨 적고..."
▲ 기둥을 가득 채운 글과 그림 삶을 살면서 명심할 글들이 가득하다.
ⓒ 이정미
글귀 중 박노해 시인의 시가 있어 반가웠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 슬퍼하지 마라/ 포기 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 박노해 <잘못된 길은 없다> 중에서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라며 지혜와 위로를 건네는 박노해님의 시를 눈 앞에 두고 옛날 풋풋한 내 젊은 날의 어느 날 한 모퉁이가 스쳤다. '아! 삶은 이처럼 뜻하지 않게 과거와 접속하게 하는구나' 어머님 생신 날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지는 음식점에서 어머님, 어머님의 외삼촌의 아드님 내외,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추억과 조우하고 손잡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추억이 몽글몽글 옛 동네, 옛 사람

점심을 먹고 남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마을 근처에 있는 사찰을 둘러보았다. 어머님 생신이 있는 이맘때는 겹벚꽃이 한창이었건만, 기후 변화 탓에 겹벚꽃은 거의 지고 있었다.

시누이는 어머님과 함께 있을 때면 어릴 적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이 동네를 자주 입에 올렸고, 우리는 시누이를 따라 종종 이 동네를 찾곤 했다. 옛 집은 사라진 지 오래고 동네 주변은 지역민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호수 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공기 좋으니 새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많네."

뒤로는 잔잔한 산 능선이 편안하게 펼쳐지고 앞으로는 소담한 계곡과 걷기 좋은 산책로, 아담한 논과 밭이 정스럽게 앉은 곳에 제법 근사한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남편이 일곱살 무렵까지 살았다니 벌써 오십년 세월이 흘렀다.

세월을 따라 옛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좋아하고 누리는 곳으로 바뀌니 옛 땅이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는 이런 노력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명맥을 잇고 살리는 일은 결국 우리의 국토에 새 생명이 움트게 하는 일이니까.

차 안에서 어머님은 며칠 전 TV에서 KBS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를 봤다며, 거기서 옛날에 아버님이 군대에 계실 때 아버님과 함께 어머님 집을 방문했던 한 동료가 나왔다고 했다.

"아이구야, 나무를 140만 그루 심었다고, 90이 다 돼 가던데 정정하더라.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내 거기 꼭 한번 가 보고 싶다."

집에 와서 어머님 말씀을 되짚어 보며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검색해 보았다. 거창이었다. 어머님 기억 속 아버님의 동료 분을 뵈러 조만간 거창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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