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고 웃어준다고요? 호감이 아닌 사회생활입니다

이가현 2026. 4.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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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직장 내 성희롱'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노동과 젠더의 불평등을 짚어내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합니다. <기자말>

[이가현 기자]

 지난 3월 동료활동가들과 함께 진행한 성희롱 예방 캠페인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나는 지난해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하여 올해 상반기는 수습노무사로서 수습교육을 받고 있다. 노무사가 되기 전에는 성평등 활동을 주로 해 왔기에, 노무사가 된 이후에도 성평등과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활동을 만들어내 보고 싶었다. 이러한 멋진 동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동료 활동가들과 번화가에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캠페인 문구는 네 가지였다.
당신을 보고 웃어준다고요? 호감이 아닌 사회생활입니다
"둘이 잘 어울려~", "OO씨랑 잘 해봐~"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발.
직장에서 성적인 농담을 하지 맙시다. 그거 재미없어요.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요? 그거 괴롭힘입니다

퇴근길에 피켓을 마주친 시민들의 표정은 글쎄, 나쁘지 않았다. 피켓을 슬쩍 보고, 은근히 동의한다는 눈빛을 분명히 읽었다. 적어도 인상을 찌푸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I 시대에 고정되어 인쇄된 문구로 지정된 장소에서 캠페인이라니, 오히려 신선했을지도 모른다.

피켓을 들고 찍은 캠페인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가자,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피켓 문구 중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면서 직장 내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듯했다. 자신의 직장 근처로 와서 피켓을 들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담긴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권력 가지면 공감능력 떨어진다?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사례를 공개하며 고용노동부의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17.12.12.
ⓒ 유성호
지난해 11월 한국여성민우회 등에서 주최한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 사례 분석 및 제도적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직장갑질119 젠더폭력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따르면, 직장 내에서 직급·나이·연차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을 향해 원치 않는 구애를 하는 이른바 '구애갑질' 사례가 공개되었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은 남성 팀장이 저에게 자주 화를 내더라고요. 참고 버티다가 회식자리에서 저한테 왜 그러시는지 물어봤는데 팀장이 "애인이 있는 너를 좋아해서 그래"라는 거예요. 팀장은 유부남이고요."

"직장에서 신규발령을 받고 저보다 오래 일한 남성직원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일했어요. 근데 어느 날 그 남성직원이 저한테 카톡친구가 안 뜬다며 번호를 알려달라길래 거절했거든요. 다음날부터 그 남성직원은 카톡친구 왜 안 해주냐며, 섭섭하다면서 '죽고 싶다', '니 목소리도 듣기 싫다' 같은 말을 하는 거에요. 기분 상하게 하면 위험하겠다 싶어 잘 대해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방금 너무 예뻤다', '오늘 청순한데?'라면서 외모평가를 하다가 '안경 끼고 머리 묶어주세요'라고 요구하기까지 하더라고요."

"팀장이 손을 잡아달라거나 안아달라고 해요. 'OO씨랑 더 놀고 싶으니까 야근시켜도 돼요?', 'OO씨한테 찝쩍거려야 하는데', "놀아줘요", "보고 싶다", "같이 퇴근해", "차갑게 굴면 나 삐진다"라는 말을 일삼네요. 선물이나 편지를 주기에 불쾌감을 지속적으로 표현했음에도, 가해자는 결국 고백까지 했어요."

직장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일하는 공간에서 만난 관계는 업무를 함께하는 관계일 뿐이다. 일하는 관계에 감정을 섞어 행동하면 일은 산으로 가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일할 누군가의 권리는 침해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이를 절제하지 못하고 표현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순간 직장은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먼저 유혹한 경우는 어떡하냐고? 그 유혹이 진짜 유혹인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면 공감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연구들도 존재한다. 권력을 가지기 전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직장동료나 후배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베푼 작은 호의, 상급자에게 할 수밖에 없는 사회생활과 감정노동을 권력과 지위를 가진 상급자의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으로 책임 물을 수 있어
 피해자의 용기가 외면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 pixabay
지난해 12월 말, 40대 점주로부터의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19세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식 자리에서 둘만 남은 뒤 벌어진 성폭력에 대해 가해자는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진술했고, 이는 수사기관에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피해자는 얼마나 피해를 인정받고 싶었을까. 나는 피해자가 붙잡을 수 있었던 지푸라기가 수사기관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형법상 성범죄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성범죄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 버린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해자들은 이러한 점을 역이용해 불기소나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기도 한다.

만약 형법상 판단 외에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성적 폭력이나 성적 괴롭힘은 법적인 개념인 '직장 내 성희롱'에 포함된다. 특정 사건에 대해 형법상 성폭력이 인정되기 어렵더라도 앞서 언급했던 노동관계법령상 사업주가 성희롱 예방 및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경우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다. 성희롱과 관련된 규정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지 않는다. 즉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또, 노동자가 성희롱이나 폭언 폭행 피해로 인한 질병을 얻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각종 급여를 지급받을 수도 있다.

직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회식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회식자리도 업무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으므로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업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다. 성희롱은 형법과 다르게 가해자의 의도나 고의가 없어도 성립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는 형법보다는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받기가 용이할 수 있다. 만약 안산의 청소년 노동자가 경찰의 불송치 통보를 받기 전 이러한 정보를 알았다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고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피해자의 용기가 회복의 단초가 되도록

스스로의 피해를 인지하고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하워드 제어는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에서 범죄피해를 겪는 것에 대해 "의지에 반하여 자기 통제력을 박탈당하고 타인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럽고 비인간적인 일"이라고 하며, "범죄는 자율성 인식을 파괴한다"라고 한다. 이어 하워드 제어는 피해자가 온전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해 행위와 가해자의 통제력을 벗어나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를 신고하고, 스스로를 탓하고, 주변인에게 말하는 등의 행동은 모두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피해에서 회복하기 위한 피해자의 능동적 선택이자 용기라고 볼 수 있다.

안산의 청소년 노동자는 성폭력 피해를 인지한 즉시 장소를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가해자가 파괴한 피해자의 "자율성 인식"을 스스로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피해자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의 용기가 회복의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는 제도들이 세상을 떠난 안산의 한 청소년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작동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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