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복수심, 44년 묵힌 영토분쟁 깨웠다…포클랜드에 무슨일이
“잉글랜드인은 잉글랜드로 돌아가라.”

빅토리아 비야루엘 아르헨티나 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이 한 줄이 남대서양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해묵은 분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수십 년간 사실상 동결 상태였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갈등이 재점화된 데는 뜻밖에도 이란 전쟁이 있다. 영국이 이란 전쟁 지원 문제로 미국과 파열음을 내자, 아르헨티나의 친(親)트럼프 정부가 포클랜드 영유권 주장을 고조시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란전 불똥, 남대서양으로 튀었다
이번 사태는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의 보도에서 비롯됐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이 작성한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다. 이 문건에는 이란 전쟁에 대한 군사 지원에 비협조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을 겨냥한 불이익 조치 목록이 담겼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포클랜드 제도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의 이른바 ‘제국주의 해외 영토’에 대해 미국의 외교적 입장을 전면 재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이란 전쟁과 관련 미군 기지 사용 요청을 거부하자, 미국이 영국의 가장 민감한 영토 문제를 건드리며 보복성 압박에 나선 셈이다.
포클랜드 제도는 남아메리카 남부 파타고니아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500㎞ 떨어진 남대서양 군도다. 원래는 무인도였다가 1764년 프랑스가 정착촌을 세웠고, 실랑이 끝에 1766년 스페인이 물려받았다. 이 틈을 타 영국은 1765년 영국 정착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1690년에 영국 해군이 이 섬에 최초로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후 1774년 영국이 재정 문제를 이유로 포클랜드 정착촌을 떠나면서 스페인의 독점 지배가 시작됐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지리적 인접성과 역사적 근거를 들어 영국의 불법점거를 주장하고 있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본토와 가까운 섬의 주권까지 합법적으로 승계했다는 게 아르헨티나의 일관된 입장이다. 실제 아르헨티나는 1820년대 이곳에 정착촌을 만들고 관원을 파견해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했다. 애초 원주민이 없었던 무인도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깃발을 꽂으며 시작된 역사인 만큼 누구 땅인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982년 4월 이 섬에 침공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전쟁은 74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끝났고 양측에서 9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이후 영유권 갈등은 사실상 동결 상태였다. 2013년 주민투표에서 유권자의 99.8%가 영국 잔류를 택했고 영국은 이를 근거로 협상의 문을 닫았다.

미·영 파열음에 아르헨, “켈퍼(영국계 주민)는 떠나라”
이란 전쟁 발발과 함께 미·영 사이 외교적 기류 변화가 감지되자 아르헨티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즉각 공세로 전환했다. 비야루엘 부통령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의 아르헨티나명)는 아르헨티나의 땅”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 섬들에 대한 논의는 국가 간에 이뤄지는 것이며, 영국은 법적·역사적·지리적 이유에 근거한 우리의 주장에 대해 아르헨티나와 양자 논의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포클랜드 영국계 주민을 가리키는 구어 표현인 ‘켈퍼들(Kelpers)’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포클랜드 사안을 단순한 영토 갈등이 아니라 아직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 문제로 다시 규정했다는 얘기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비야루엘 부통령은 켈퍼들을 향해 “아르헨티나 영토에 살고 있는 잉글랜드인일 뿐이며 논의에 낄 자격이 없다”면서 “그들이 잉글랜드인이라고 느낀다면 자기 나라가 있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썼다.
정부 차원에서도 보조를 맞췄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말비나스 군도가 아르헨티나의 영토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평화적이고 결정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을 향해서는 양자 협상 재개를 요구했다.
영국은 즉각 선을 그었다. 영국 정부는 포클랜드 제도의 주권이 영국에 있고 무엇보다 2013년 주민투표를 들어 섬 주민들의 자결권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영국 "협상 불가" 일축했지만… 美 '중립' 표방에 묘해진 기류
파장이 커지자 미 국무부는 진화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24일 “해당 섬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여전히 중립”이라며 “상충되는 영유권 주장들을 인지하고 있고 사실상(de facto) 영국의 행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립이라는 표현 자체가 영국엔 불편할 수 있다.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포클랜드 제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만 강해진 것 아니냐는 의미다.
친트럼프 밀레이 참전…승부수 띄웠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변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이후 라틴아메리카 어느 정상보다도 노골적인 친트럼프 행보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밀레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며 우호 관계를 과시해왔다.

밀레이 대통령도 직접 움직였다. 그는 SNS에 “말비나스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아르헨티나의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또 방송 인터뷰에선 “아르헨티나의 말비나스, 그 섬들, 그 모든 영토가 아르헨티나의 손으로 돌아오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며 “전례 없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변수를 활용해 영유권 문제를 다시 국제적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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