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시시각각] 국정조사가 놓친 ‘노무현의 1분’

조용한 비밀 공간에서의 술자리, 진술을 회유하는 음습한 녹음, 녹취록 단어를 바꾼 보이지 않는 손….
마치 추리소설 같은 증거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작 기소 의혹’ 사건은 독자들과 함께 퍼즐을 푸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전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처럼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지난 28일의 종합청문회로 막바지에 다다른 국정조사에선 용의자를 꼼짝 못 하게 할 결정적 단서도,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반전의 논리도 나오지 않았다. ‘네가 범인 아니냐’는 고함이 커질수록 용의자의 탈출구는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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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의 추리소설 같은 국정조사
성급히 결론지으려다 스텝 꼬여
자백 이끄는 설득과 논리 사라져
」

더불어민주당의 ‘탐정’들은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범인을 색출했노라 외치면서도 찜찜함을 느끼는 듯했다. 청문회 증인으로 처음 나온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그날 자정이 다 된 시간,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석열 정권과 똑같다”면서다.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 달러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가 아니라 주가조작용이었다는 추궁을 당하자 민주당을 향해 “의원님들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지나가는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했다. 민주당의 조작 기소 프레임에 균열이 생겼다.
김 전 회장은 민주당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연어 술파티’ 추궁에 “술을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과거 접견 기록에서 검사들을 “악마”라고 표현한 것도 조작 기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 전 회장은 동료가 구속되고 가족의 불륜까지 공개되는 수사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대통령을 ‘그분’이라 표현하며 “본 적도 없다. 내 평생 마음속 영웅인데 누가 돼 죄송스럽다”고도 했다. 검찰이 이 대통령을 목표로 수사한 것 같다고는 했지만, 같은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김 전 회장이 조작 기소 여부를 판단할 계제는 아니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향해 한달음에 달리고 싶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스텝이 꼬였다. 사건 관련자의 진술이 오염되면서 박상용 검사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인과 나눈 부적절한 대화마저 ‘스모킹 건’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박 검사의 입장은 들어보려 하지 않는 바람에 오히려 이 대통령의 억울함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기회를 놓쳤다. 민주당의 오만한 자세는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게 뻔한 국정조사를 강행하고 특검을 통한 공소 취소를 당연시하는 모습에서 반복되고 있다. 38년 전 ‘청문회 스타’였던 선배 정치인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모습과 현격히 대비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선의 청문위원으로 이름을 드높인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는 1분 길이 영상으로 SNS에서 접할 수 있다. 1988년 11월 5공 비리 청문회에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정경유착의 잘못을 시인받는 질의의 시작 부분이다. 진실 찾기는 적개심과 예단이 아닌 설득과 존중의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웅변하는 것 같다.
“크게 성공하신 기업인의 능력과 정열이나 경륜에 대해서는 항상 존경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중략)… 증인이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이 국민의 사표가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인이 지금까지 하신 처신이 당연시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증인의 증언이 영웅시되는 사태에 대해서는 본 의원은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증인에게 몇 가지 묻고자 합니다. 서로 입장이 다르고 견해가 다른 것이니까 증인의 생각과 다른 질문을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성실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청문회를 과거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조사는 국민의 이익과 이해에 맞춰져야 한다. 성급하고 정략적인 국정조사로 진상 규명은 더 난해해졌다. 향후 재판이나 특검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또 다른 회유와 조작 의혹을 양산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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