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훈의 이코노믹스] 중국 희토류 등 모든 ‘초크포인트’ 평소에 대비해야

2026. 4. 3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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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정세와 한국의 산업통상 전략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이 힘들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해 온 이번 전쟁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맺을지, 중동과 세계 질서가 어떻게 재편될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우리 처지에서는 전쟁의 교훈을 정리하고,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 초크포인트는 지리적 해협 너머 레버리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 해당
국내 반도체 생산기반 유지·강화 등 우리 초크포인트도 발굴·육성해야
한국 물동량 40% 통과하는 대만해협 긴장 고조되면 충격 훨씬 클 것
일본·아세안과의 공급망 재구성하고 GCC·중앙아시아 등과도 협력을

평소에 산업·통상정책을 주로 다루는 필자가 국제정치까지 논하는 것은 다소 넓은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접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중장기적 질서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 변수로 작용할 때도 많다. 전쟁 당사국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사나 이란의 협상 전술로 인해 본질을 보는 눈이 흐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트럼프 고립주의 회귀 예측 빗나가
이번 전쟁은 트럼프의 미국이 신중함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국가로 변모했음을 재확인시켰다. 직감을 과신하고 즉흥적 결정을 내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트럼프가 취임 이후 손댄 이슈들은 역대 정부가 회피하거나 적당히 봉합한 난제들이 대부분이다. 연말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의 정치적 부담이 큰데도 밀어붙인 이란과의 전쟁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 통상·투자 협상은 물론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 재편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미국이 가진 문제의식과 충돌하는 접근을 택할 때는 상당한 위험이 수반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전쟁은 트럼프가 먼로주의식 고립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갔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패권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며, 다만 그 방식이 이전과 다를 뿐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동맹과의 조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느꼈을 것이다. 우리로서도 미국이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운신의 폭이 넓어져 나쁘지 않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다. 전략적 우방인 이란을 음양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두 나라는 적극적 개입을 자제하며 사실상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권유했고, 호르무즈 역봉쇄로 자국에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아직은 미국과의 전면 충돌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그들 스스로 이란이 핵보유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제질서의 재편 방향과 속도를 결정짓는 것은 여전히 미국의 의지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중동정세의 변화와 전쟁의 배경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추구한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란의 역량 약화가 핵심이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경제적 이해관계로 묶어 중동에서의 안보 부담을 줄이면서도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해왔다. 2020년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 간의 아브라함 협정 중재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대한 대응으로 제시된 2023년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은 그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반군 등 중동 내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이란의 방해가 지속하는 한, 이 구상의 현실화는 어렵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에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접근을 막으려는 이란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경민 기자

코카서스 지역에서도 유사한 구도가 펼쳐졌다. 2025년 8월 미국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37년 분쟁을 중재해 양국 정상의 평화협정 가서명을 이끌었고, 양국을 통과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트럼프 국제평화·번영 노선(TRIPP)’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노선은 러시아와 중국 인프라에 대한 중앙아시아의 의존도를 줄이고 자원 부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 계획의 가장 큰 장애물이 노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박경민 기자

이란이 핵무기 보유 능력까지 갖추기 전에 행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미국은 물론 주변국들 사이에서도 공유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란이 주변 이슬람국들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의 전방위적 폭격에도 주변국들이 침묵을 지킨 이유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쟁 이후의 변화와 기회 요인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강력한 무기임은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란의 군사적·경제적 역량이 현저히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수십 일에 걸친 폭격에도 반격의 강도는 미미했고, 최후의 카드로만 여겨져 온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명운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란의 실질 전력이 생각보다 취약함을 방증한다. 전쟁 이전에도 이란 경제는 재정 고갈과 에너지 위기, 5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으로 파탄 직전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최소 3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보도도 있다. 국제기구가 추산한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이 2024년 약 4000억 달러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전쟁 이후 중동의 미래는 GCC 국가들의 질서회복 노력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란을 제외한 역내 국가들은 호르무즈해협은 물론 홍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잇는 BTC 송유관을 이라크와도 연결하자는 구체적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우회로 역시 무장세력에 위협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란의 약화로 인해 그 힘은 줄어들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봉쇄 이후 호르무즈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질 것이다.

냉정한 시각이지만,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중동지역의 인프라 구축과 방위산업 등에서 협력의 여지는 충분하다. 중국 기업들이 독식해 온 일대일로 사업과 달리, IMEC이나 TRIPP 같은 서방 주도 연결 노선이 활성화되면 우리의 참여 가능성도 커진다. 중동의 안정이 인접한 중앙아시아 자원 부국들의 전략적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점도 해외전략 수립에 반영해야 할 요소다.

경제안보 전략의 강화 필요성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우리는 원유와 나프타 수급에 큰 차질을 겪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국이 비전투국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라고 논평했다. 근본 원인은 우리 산업 구조가 원유와 나프타 등의 수입에 의존하는 데 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NCC(나프타분해시설) 방식이 주를 이루는데, 한국의 나프타 의존도는 약 83%에 달한다. 미국이 에탄 크래커 중심으로 나프타 의존도가 4% 수준인 것과 대조적이며, 중국의 50%와 비교해도 현저히 높다. 나프타는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산 수입이 제한되며 중동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상태였고, 이번 전쟁으로 취약성이 드러났다.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한시 지정하고 긴급 수급 조정에 나서는 등 신속히 대응했다. 그러나 사후적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평소에 우리 산업의 취약 지점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 무역량의 약 20%, 우리 물동량의 40%가 통과하는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 그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한편, 핵심적 병목 지점을 의미하는 ‘초크포인트(Chokepoint)’는 지리적 해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희토류처럼 필요한 순간에 레버리지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해당된다. 역으로 우리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초크포인트를 발굴하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우리 영토 내의 반도체 산업 기반을 유지, 강화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전략적 능동성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세 가지 방향의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산업·통상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일본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공급망 구조 재구성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둘째, 중동정세 변화에 따른 기회 요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GCC 국가들은 물론 중앙아시아·코카서스 국가들과의 협력 기회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경제안보적 시각을 확장하여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며 우리가 가진 초크포인트를 지속적으로 발굴·육성해야 한다. 전쟁 이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대응을 서두를수록 우리가 설 자리도 넓어질 것이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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