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에서 하얼빈으로, 다시 하얼빈에서 여순으로
[장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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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관동법원내 소계단. 법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 계단이 안중근 의사가 올라간 곳,. |
| ⓒ 장애라 |
- 안중근 '동포에게 고함'에서.
이상기후로 사계절이 흐릿해졌다지만 한반도의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마른 가지에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뭇 사람들에게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 봄밤의 한 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을 깨우치려는 듯 금방 꽃잎이 난분분 흩날린다. 싱그러운 새잎이 나무를 연록으로 뒤덮던 날, 오래전부터 예정해 둔 안중근 의사 순례 일정을 따라 요동 반도로 향한다.
비행기로 불과 1시간 남짓, 요동 반도 남쪽 끝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이 이제 막 한두 송이 꽃을 피울 뿐 아직 겨울이 머물러있는 것 같다. 잔뜩 흐린 날씨를 헤치고 여순 일본관동법원에 들어선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한국통감부 초대 통감)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재판 후 사형을 선고받은 곳이다. 그가 올랐을 계단을 따라 법정에 들어선다.
판사 앞에서 동양평화와 한국독립을 위해 의거한 자신을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당당히 요구한 그는, 주변 나라의 평화를 짓밟은 간악한 이토의 죄악을 일일이 열거한다. 이어 항소를 쓸데없다 여겨 포기하고 의연하게 순국을 택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환난 중인 고국의 역사와 다름없는 자전적 기록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 집필에 매진하다 사형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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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의 유묵. 안중근 의사의 유묵 복사본 전시(여순 일본관동법원) |
| ⓒ 장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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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순 감옥 부근 바다. 여순감옥 가까이에는 황해와 발해가 서로 마주치는 바다가 있다. |
| ⓒ 장애라 |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일본의 만주 진출로 얼룩진 대련시는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며 크게 달라졌지만 지나간 역사의 흔적은 여전히 뚜렷하다. 고유한 양식을 간직한 러시아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아직도 사용 중이라 한다. 아마 전쟁이 남긴 황폐한 상처에 대한 기억도 애써 드러내지 않을 뿐, 그 안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일 것이다. 우주선이 오가고 AI가 문명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안중근 의사가 목숨으로 외쳤던 평화론을 생각한다. 당시 일본제국이 침략을 합리화하면서 주창한 평화론과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일본처럼 앞서 발전한 나라가 한국을 비롯한 미개발·후진국들을 개발시켜 하나의 질서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라면, 안중근 의사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다르듯 국가도 다양함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독립한 상태로 동맹과 화합으로 동양과 세계평화를 위해 애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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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벌판. 대련에서 심양, 장춘을 지나 하얼빈으로 가는 열차안에서 촬영 |
| ⓒ 장애라 |
생존을 위해 이곳 물설고 낯선, 만주로 온 조선의 백성들은 그 척박한 땅을 일궈 옥토로 만들었다. 초목이 푸르기 시작한 한반도에 비해 이제야 봄이 시작되는 이 추운 땅에서 벼농사의 기적을 이룬 사람들, 그 모진 고생의 시간을 짐작하기 어렵다. 이번 순례길에는 특히 중국이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투자를 많이 한 관광지라는 이유도 있지만, 숙소의 작은 물건에서 거리의 건물들, 대중교통에 이르기까지 발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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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1 세균부대전시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를 전시하는 곳, 만주 하얼빈 |
| ⓒ 장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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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곳. 역 바닥의 세모 표시는 당시 안중근 의사의 위치, 네모 표시는 이토의 위치 |
| ⓒ 장애라 |
"하얼빈역 철길은 총 맞기 좋은 자리다."
"나는 철도를 좋아한다. 쏘기도 좋은 자리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대화에서(김 훈 작가의 '하얼빈')
많은 작가들은 가혹한 일제강점기의 만주와 연해주, 사할린 등지에서 끝내 좌절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던 조선인들과 그들의 강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리 책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만주 벌판을 달려 이곳 하얼빈역까지 직접 와보니 이제야 잘 알 것 같다. 길과 길이 이어져 있듯 그들과 우리 또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순례의 큰 깨달음이다. 이제 안중근 의사를 하얼빈역에 두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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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역 광장.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코레아 우레!'(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역 광장 |
| ⓒ 장애라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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