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왜 지금 돌아왔을까? 런웨이의 앤디와 미란다, 응원하기 어렵네

장혜령 2026. 4. 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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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장혜령 기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는 전설적인 패션 매거진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20년 만에 기획 에디터로 돌아온 앤디(앤 해서웨이)가 재회한다. 그사이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명품 브랜드 디올의 임원이 됐다. 완전히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관계성 사이에서 세 여성은 패션계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고군분투한다.

왜 20년 만의 속편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패션 세계의 섬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향한 메시지도 선사해 인기를 끌었다. 20년 만의 속편은 나이와 성별을 떠나 어느 업계라도 공감할 이슈로 확장했다. 전작이 세상 속의 한 개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의고사였다면, 속편은 선택의 결과를 마주하는 낯 뜨거운 성적표다.

마치 종이 매체가 퇴물이 된 세상에서 신념을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이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20년 전 <런웨이>는 업계를 선도했지만 현재는 다른 위치다. 더 이상 종이 잡지는 팔리지 않고 광고주의 구미에 맞춰 편집권도 박탈당할 위기다. 소셜 미디어와 인플루언서가 주도하고, 자본의 힘에 휩쓸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며 비튼다. 패션 업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원, 해고, 합병이 만연한 후기 자본주의를 풍자했다. 종이매체는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바이럴이 된 시대의 생존을 고민하는 식이다. 기존의 저널리즘과 인쇄매체, 엔터테인먼트는 다른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 더 이상 예전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씁쓸하게 깨닫는다.

업계의 지각변동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란다'의 위상은 그대로다. 동시에 천하의 미란다도 별수 없는 게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위엄을 흔든 디지털 홍수는 고고했던 미란다의 어깨도 굽신거리게 했다. 당당함과 우아함을 잃지 않았지만 악랄함과 카리스마는 다소 무뎌졌다. 비서를 괴롭히거나 폭압적인 태도로 무례하게 굴지도 않는다. 책상에 코트를 던져 버리거나 개인 일정을 지시하지도 않는다.

독설로 유명한 미란다였지만, 젠더 이슈 등과 관련한 독설은 조심한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일반석을 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미란다의 모습은 세월의 변화를 말해준다. 누가 회사를 인수하느냐에 따라 파리 목숨이 되는 건 시간문제, 그야말로 한풀 꺾인 미란다는 시대에 적응하려 분투한다. 그를 보자니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연민이 생긴다. 미란다의 총기, 현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기에 가치가 있어서다.

앞서 메릴 스트립은 미란다를 두고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아닌 절제미를 갖춘 배우이자 감독 클린튼 이스트우드의 실제 모습에서 영감받았다고 밝혔다. 사려 깊은 카리스마는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신뢰와 존중에서 시작한다는 거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앤디'는 언론인이 꿈을 좇던 사회 초년생에서 커리어의 정점에 선다. 영화는 탐사보도 전문지 <뉴욕 뱅가드>의 베테랑 기자로 상을 받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그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했지만,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받는다. 그렇게 런웨이로 복귀한다. 기자 경력을 살려 무너진 <런웨이>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긴급 투입된 구원투수인 셈이다.

일과 사람 모두에게 진심을 다하는 앤디는 특유의 긍정 에너지도 잃지 않았다. 앤디를 상징하는 세룰리안블루 색 상의가 재등장해 반가움을 안긴다. 세룰리안블루는 2000년 팬톤이 올해의 컬러로 선정한 색깔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을 지닌 하늘색을 의미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마지막에 앤디가 입고 나와 전편의 향수를 자극한다.

다만, 왜 20년 만에 이들이 다시 만났는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찾지 못했다. 달라진 환경 속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는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속편이 조금 더 일찍 나왔다면, 전편의 정체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기힘으로 럭셔리 브랜드 디올의 임원까지 올라선 에밀리가 부자 연인의 힘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미란다야 그렇다 쳐도 40대 싱글인 앤디마저 재취업에만 목메는 설정 역시 의아하다. 20년의 경력과 인맥을 활용해 직접 회사를 차려볼 시도조차 하지 않기에 안일하다 느껴진다.

전편에 이어 작가, 감독, 배우가 그대로 재회했지만 껍데기만 화려할 뿐이다. 20년 전 사고방식에 머물러 버린 반쪽짜리 서사와 공감력을 잃어버린 얕은 캐릭터는 희미한 향수만 불러일으킨다. '굳이 왜 이제서야 속편으로 돌아왔나'라는 물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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