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이 쓴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의 무대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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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교룡산 원경. 가운데 교룡산에서 오른쪽으로 낮게 기린산과 복음봉이 보인다. 이 복음봉 오른쪽 아래에 만복사지가 있다. 앞의 냇가는 요천. |
| ⓒ 김태윤 |
만복사지 가까이 150m 거리에 축천이 돌아서 흐른다. 고려말(1380년)에 지리산 황산에서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대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원성에 들렀다가 축천변의 강정(江亭)에서 쉬었다 갔었다. 훗날 조선이 건국되고 왕이 머물렀다 하여 이곳 마을(강정몰)을 왕정(王亭)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원은 남쪽의 요천(蓼川)과 북쪽의 축천 사이 충적지에 형성된 고을이다. 광한루 앞을 흐르는 요천에는 소 바위가 있었다. 남원의 형세가 행주지형(行舟之形)이라 닻을 내리거나 소를 매어두어야 한다는 풍수설이 전해왔다. 축천(丑川)은 수철(水鐵, 무쇠)로 소 형상을 조성해서 냇가에 세워두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만복사지는 부처 뒤의 광배처럼 보이는 기린산 복음봉 앞에 잔디밭으로 펼쳐져 있다. 남원의 상징인 교룡산(519m 복덕봉, 밀덕봉)에서 2km를 달려온 기린산(239m). 기린산에서 다시 1.3km의 산줄기가 내려와 멈춘 구릉 형태가 복음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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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기린산 복음봉 만복사지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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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만복사지 인왕상, |
| ⓒ 이완우 |
본래 인왕상은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영향으로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가 불교의 수호신으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초기의 모습은 중앙아시아의 아리안족이나 헬레니즘 계통의 외양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문지기 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남원 만복사지의 인왕상은 부릅뜬 눈, 매부리코처럼 우뚝 솟은 코, 깊게 파인 눈매로 다른 사찰의 한국적인 모습보다 서역인(西域人)의 외양을 띠고 있다.
김용근 향토사학자가 이곳 인왕상과 가까이 세워진 당간지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인왕상은 절 입구에 세워져 당간지주 역할도 한 것으로 추측돼요. 만복사의 영역을 알리는 커다란 번(幡, 깃발)을 달았을 거예요. 저곳에 있는 당간지주는 법당 앞에서 괘불(掛佛, 그림 부처)을 걸었고요."
인왕상이 당간지주 역할을 겸했다고도, 당간지주에 인왕상을 조각했다고도 여길 수 있는 만복사지 인왕상은 분명 개성적인 양식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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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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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하) 남원 만복사지 석조좌대 |
| ⓒ 이완우 |
고구려의 숨결, 남원 국악의 뿌리가 되다
석조좌대 가까이에 가람 터로 보이는 유적이 모여있다. 만복사지는 '1탑 3금당'의 고구려식의 절 배치가 확인된다고 한다. 중앙의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북쪽에 금당을 두는 고구려식 가람 양식. 이는 고구려 멸망 후 약 400여 년이 지난 고려 시대까지 고구려 사찰 양식이 이 지역에 전해졌음을 의미한다.
서기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금마(익산)에 세워졌던 고구려 유민들의 국가인 보덕국(674~684)이 통일신라 신문왕 대에 해체되면서 유민들이 남원 지역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 왕산악과 거문고의 음악적 전통이 천 년을 이어왔고, 남원이 오늘날 '국악의 성지'로 자리 잡는 기틀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언어적 측면에서도 고구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골짜기를 뜻하는 고구려계 언어로 볼 수 있는 순우리말 '실'은 강원도 한계령이나 경상도 주실마을처럼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남원 지역에서는 호두산 아래 범실(호곡)을 비롯해 한실(대곡), 잣실(성곡), 가실(가곡) 등 다수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세 번의 설법을 형상화한 '1탑 3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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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만복사지 마애여래입상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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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만복사지 마애여래입상 연화대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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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만복사지 마애여래입상 후면의 마애아미타여래 상부 |
| ⓒ 이완우 |
지리산 만복대. 교룡산의 복덕봉 밀덕봉. 복음봉. 요천 건너 덕음산. 요천의 끝자락 문덕봉. 만복사가 보이는 곳 지명에 '복'과 '덕'이 밀집하여 나타난다. 또한 축천과 요천에 조성된 무쇠소와 바위소는 쌓은 덕이 흩어지지 않고 복으로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풍수적 염원의 산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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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남원 주생면 지당리 석불입상 (우) 남원 덕음산 숲바람 길 석불입상 |
| ⓒ 이완우 |
거대한 사찰 만복사가 폐허로 남겨진 지 400년이 넘었다. 만약 만복사가 복원된다면, 사라진 건축물의 물리적 재현을 넘어 잊힌 역사의 숨결을 되살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적 원형을 회복하는 숭고한 여정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국여지승람(1486년) 불우(佛宇, 불당) 만복사 조(條)에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고, 그 안에는 높이 35척(약 10m)의 동불(銅佛)이 있는데, 고려 시대 11세기에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남원 고을 읍지인 용성지(1752년)에는 '대웅전, 약사전, 장륙전, 영산전, 보응전, 종각, 천불전, 나한전, 명부전 등의 몇몇 터가 남아 있다'고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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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속 그늘 속의 연분홍 진달래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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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속 햇볕 속의 연분홍 진달래 |
| ⓒ 이완우 |
고구려 유민의 숨결이나 미륵을 향하는 민초의 마음, 그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기억을 다시 세울 차례다. 이 기다림과 기억이 남원 만복사를 찾는 여행의 출발점이자, 돌아갈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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