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잃은 부모들에 대한 애도와 위로, 이 영화 놓치지 말길
[오길영 기자]
정신의학에서 트라우마(Trauma)는 개인의 대응 능력을 압도하는 위협적인 경험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 외상을 가리킨다. 원인은 죽음이나 심각한 부상과 폭력 등 실제적인 위협, 그리고 전쟁, 자연재해, 사고, 테러 등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이다. 정서적 학대, 방임, 이별 등 주관적으로 일상의 안전감을 흔드는 사건도 트라우마를 일으킨다.
많은 문학이나 영화가 트라우마를 다룬다. 삶이 고통과 상실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죽음과 이별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삶의 경험이기에 반복적으로 다루는 제재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그런 상실의 고통을 피하기는 어렵다. 상실의 고통에 등급을 나누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그 고통에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부모의 죽음은 때가 되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닥칠, 그래서 힘들어도 받아들이고 넘어가게 되는 일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남긴 상실감은 다른 문제다. 누구나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지만,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 남은 부모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그런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좋은 문학과 영화가 숙고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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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햄넷> 스틸컷 |
| ⓒ 유니버설 픽쳐스 |
영화 <햄넷>은 비극 <햄릿>을 창작한 셰익스피어가 실제 겪었던 전기적 사실인 어린 아들 햄넷의 죽음이라는 삶의 고통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타당하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시각을 거의 의도적으로 피한다. 실제 영화에서 거의 2/3의 시점까지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지운다. 그는 계속 윌(폴 메스칼)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린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윌리엄(William)이다. 그리고 아들 햄넷을 잃은 뒤 연극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그 유명한 햄릿의 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윌은 독백으로 말한다. 그 독백의 의미가 절절하다. 그러나 아버지 윌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결말인 연극 <햄릿>의 공연장면에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그의 아내 아녜스(제시 버클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그 고통과 상실을 어떻게 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우리 시대와는 달리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17세기는 근대의학이 없던 시대였다. 햄넷(11세에 사망)의 사례처럼 당시 아동의 조기 사망은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라 흔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영아 사망률(1세 미만)은 15% 내외로 출생아 1000명당 약 120~150명이 1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아동 사망률(10세 미만)은 30% 정도로 많은 아이가 채 10살이 되기 전에 햄넷처럼 목숨을 잃었다. 가혹한 시대였다.
영화에서도 윌의 어머니인 메리(에밀리 왓슨)가 오래전 자신이 잃었던 세 명의 아이에 관해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녜스가 겪는 고통이 단지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햄넷>은 당대, 혹은 지금도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 대한 애도와 위로의 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배우 제시 버클리가 탁월하게 표현한다(버클리는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녜스가 겪은 고통의 원인에는 아들이 죽을 때 남편 윌이 같이 하지 않았다는 원망이 작용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두 사람이 다른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부부라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윌이 아녜스에게 들려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가 그 점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끝내 재회하지 못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윌과 아녜스는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아녜스는 "표현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이며 자연과 깊이 연결된 사람"이다. 윌은 "문명과 연결된 채로 어디론가 떠나거나 도망"치는 사람이다. <햄넷>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룬 영화이면서 동시에 부부 관계의 깊은 거리감을 예리하게 표현한다.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연극 <햄릿> 공연에서 햄릿의 죽은 아버지의 유령 역할을 하면서 윌은 드디어 죽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아들이 죽는 순간 함께하지 못했다는, 그래서 자기를 원망하는 아내 아녜스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전달하며 아버지의 죄책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사후 세계에서의 아들의 행방을 알고 싶다"라던 마음을 전한다. 연극 무대에서나마 죽은 아들을 불러내서 "칼을 들고 싸워 이기는 배우가 되고 싶어"했던 아들의 꿈을 실현해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그렇게 해서 아들을 보내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애도할 수 있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무대에 선 햄릿의 유령 아버지 연기를 하는 윌은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나를 기억해주렴." 이 말은 곧 아들 햄릿/햄넷을 잊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다짐이다.
처음에 연극 <햄릿>을 보면서 아녜스는 아들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연극 내용에 분개한다. 하지만 아들 햄넷을 그대로 재현한 배우를 보면서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영화에서 어린 햄넷 연기를 한 배우와 연극 공연장면에서 햄릿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 형제라고 한다. 그렇게 햄넷과 햄릿은 아녜스와 윌에게 죽은 아들의 모습으로 합쳐진다.
윌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연극에서 마지막 대사를 남기며 죽어가는 햄릿을 보면서 아녜스는 햄릿/햄넷에게 손을 내민다. 아녜스에게 전해진 햄릿의 대사는 아들을 애도하고 떠나보내려는 윌이 고통 속에 창조한 대사이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으로 우리의 정신과 육신이 겪는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말이다. 단검 하나로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없는데 누가 이 짐을 지고 고단한 삶을 살아갈 것이냐. 어떤 자도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땅.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견디게 한다. 남는 것은 침묵이다."
그 대사를 들으며 아녜스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는다. 아니, 운다. 그리고 윌과 아녜스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들을 다른 세계로 떠나보낸다. 애도가 이뤄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관객은 아녜스와 함께 모두 햄릿에게 손을 내민다. 이 장면은 평범한 연극에선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 아녜스와 배우, 나 같은 관객 모두가 하나의 합일된 감정을 공유하며 애도의 공동체가 순간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장면의 감흥이 거기서 나온다.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방식으로 승화(sublimation)해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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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28일, 이란 미나브의 한 학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주민들과 구조대원들이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Abbas Zakeri/Mehr News/WANA(서아시아뉴스통신) (via 로이터/연합뉴스) |
| ⓒ 로이터/연합뉴스 |
"삼신할미와 서천 꽃밭의 어린 망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른 나이에 죽은 아이는 서천 꽃밭에서 삼신할미의 보호를 받으며 꽃을 가꾸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곳은 저승 초입에 있었는데, 그렇게 꽃을 가꾸다 부모 중 한 명이 죽어서 오면 비로소 함께 저승 세계로 들어간다고 했다. (중략) 그러다 아이가 멈춘다. 멀리 낯익은 그림자 하나가 걸어오고 있다. 물바가지를 내던지고 아이는 달린다. 엄마! 목소리가 되기도 전에 터져 나온 울음이 공중에 흩어진다. 젊었을 적 그대로의 모습으로 엄마는 두 팔을 넓게 벌린다. 고생했어, 우리 아가."
아녜스와 윌의 마음이 이것과 같을 것이다. 나는 <햄넷>을 보고 나서 최근 이란 침공에서 어이없게 희생된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린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아이들이 2천 명이 넘는단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역병이 아니라 어리석고 잔인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윌과 아녜스는 연극이라는 예술로 상실의 고통을 애도했지만, 이 시대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도 그럴 수 있을까? 참혹한 시대다. 미치광이들이 벌인 잘못된 전쟁은 즉각 끝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애도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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