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영어교사였던 내가 '한센인 소설'을 쓴 이유
[오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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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간 4만여 페이지의 자료를 읽고 쓴 한센인 소설 <올무에 걸린 아기사슴> 한글판과 영문판 표지 모습. |
| ⓒ 오문수 |
5년간 4만 페이지 자료를 읽고 쓴 소설이 드디어 출간됐다. '올무'는 올가미의 또 다른 말이고 '아기 사슴'은 사슴 섬인 '소록도'를 의미한다. 소설 <올무에 걸린 아기사슴>은 올가미(사회적 낙인)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한 채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 흘렸던 한센인들의 이야기다.
옴니버스 소설(9장) 형태로 쓴 이 소설은 한센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73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알았던 한센인에 대한 지식은 빈 껍데기 뿐이었다. 그래서 진정 중요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도전했다. 한센인들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경남 산청 성심원에 살았던 세례명 요한씨의 얘기다.
"풋고추를 따 갖고 자루에 넣어 한참 길을 가다 보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이 지나가요. 손들면 태워주는 데 얼마 안 가 재수 없다고 내리라고 난리지요. 겨우 진주까지 가서 가져간 풋고추를 팔고 돌아오는 길도 험난했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어깨에 메고 오다가 버스를 타면 곧 쫓겨 내려야만 했어요. 그날은 버스를 세 번 탔습니다. 세 번째 버스에서 안 내려 가냐고 난린데 우짭니까. 우리는 인간이 아입니다. 돼지도 소도 트럭에 태워가도 우리는 안 태워준다 아입니까."
1939년 11월 20일자 <동아일보> 뉴스를 보면 한센인들을 바라보는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다.
"진주 경찰서에서는 부내(府內)의 미화를 더럽히는 환자를 일망타진하여 11월 7일 전남 소록도로 보냈다."
소설을 쓴다고 하니 가까운 지인의 시선이 차가웠다. 내가 자존심 상해 할까 봐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네가?"라며 회의적인 눈초리를 보냈다. 그럴 만도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30년간 영어만 가르쳤던 사람이 소설을 쓴다고 하니 믿지 못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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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록도 병원 건너편 해변가에 세워진 84인 학살사건 위령비 모습. 1장에는 해방 직후에 벌어진 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
| ⓒ 오문수 |
"아버지 어디 갔다 와요?"
"응? 고흥!"
"고흥? 가까운 친척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웬 고흥?"
"그냥!"
매년 11월이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계속되는 대화였다. 아버지의 "그냥!"이라는 대답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군 입대를 앞둔 하루 전날 누나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고?"
"너 두 살 쯤 되던 어느 날 소록도에 계시던 할머니가 선글라스에 하얀 장갑을 끼고 새벽 4시쯤 오셔서 잠자는 네 얼굴을 들여다보고 가셨다. 손주를 보고 가라고 해도 상처 주기 싫다며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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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도 간척지 모습. 한센병에서 완치된 환자들이 살길을 찾아 오마도 일대 바다를 막아 간척지로 거의 완성해가던 순간 빼앗겨 버린 현장으로 한센인들의 피와 땀, 한이 서린 현장이다. |
| ⓒ 오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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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도 약국도 없던 시절 발병한 자식을 바라보는 모친이 어찌할 줄 몰라 울며 절규하고 있다. 일본 한센인 요양원인 전생원에서 촬영한 사진. |
| ⓒ 오문수 |
20여 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승진 문제로 부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이 분노를 누구하고 상의할까? 생각하던 중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소록도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뭔가 암시를 주시지 않을까? 하며 난생 처음 소록도를 방문했다. 다리가 없던 시절 소록도 선창가에 내려 백사장을 열 번 쯤 돌아다니던 중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나는 모든 걸 다 버리고 소록도에 와서 종교에 귀의해 이렇게 살았다. 승진이 뭐 대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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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센인의 아픔을 시로 쓴 한하운의 시가 벽화로 적혀있다. 오마도간척기념 공원 뒷편 벽에 있다. |
| ⓒ 오문수 |
그러나 한센인 역사를 철저히 공부하면서 수탄장 한쪽에 서있는 아이들은 보육원에 수용된 '미감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다
시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내가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다. 홀로 외치는 고독함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글쓰기 책을 30여 권 읽고 나니 글이 보였다.
내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고향 친구가 있다. 소아과 의사인 조성익. 선친은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인 최익현 지사와 함께 독립 운동하다 일경에 잡혀 옥고를 치른 후 고향인 우리 동네에 서당을 세운 우국지사의 후손이다. 친구와 나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한 시간씩 전화로 대화했다. 일제강점기 기구한 가족사를 지닌 친구와 나는 통하는 게 너무 많았다.
친구가 어느 날 내게 할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했다. "20년간 <오마이뉴스>에 1500여 기사를 썼으니 기사는 자신 있는데 소설은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친구는 한 달간 끈질기게 재촉했다. 어느 날 지인인 이민숙씨와 식사하며 친구가 권한 얘기를 들려줬더니 "선생님은 할 수 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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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출신으로 산청 성심원에서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유의배(Uribe) 신부 모습. 올해로 50년째 한국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4장에는 부모님과 주고 받은 서간문이 기록되어 있고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
| ⓒ 오문수 |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추천한 한센병 문학의 최고봉은 일본 동경 전생원에서 세상을 떠난 호조 다미오가 쓴 <생명의 초야>이다. 책 속에는 격리와 불치가 업인 한센병 환자의 피 맺힌 절규와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그가 느낀 삶의 관조가 녹아있다. 그의 책에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간 생명의 보편적 명제가 그려져 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실존의 보편성을 돌아볼 수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난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말이 유창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기무라 선생님은 <태백산맥>을 두 번이나 읽고 나와 동행해 소설의 배경이었던 벌교 일대를 돌아보았다. 한센병 소설을 쓰고 있던 나는 기무라 선생님을 모시고 소록도를 돌아보며 자세히 설명해줬다. "일제강점기에 이런 일이 있었냐"며 깜짝 놀란 기무라 선생님한테 "(일본) 전생원을 안내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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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동경에 있는 전생원 모습으로 소록도의 전신이랄 수 있다. |
| ⓒ 오문수 |
책을 완성해 가는 도중에 초안을 읽어보던 여러 명이 눈물을 흘렸다. 영문 번역하던 교사, 출판사 편집국 직원, 초임 교사시절 소록도에서 봉사활동 했다던 교사도 울었다. 어느 날 9장 초안을 읽은 분이 책을 읽다가 울었다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 소설은 한국인만 읽기에 너무 아까운 글이에요. 영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알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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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발병해 동경 전생원에 입원했던 김하일 모습으로 실명했을 뿐만 아니라 손까지 마비되자 혀로 글자를 읽고 있는 모습. 일명 설독 모습이다. |
| ⓒ 오문수 |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 간다."
2001년 5월 25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과거 정책이 한센병 환자·회복자의 인권을 제한했고 큰 고통을 줬다"며 사과를 표명했다. 일본은 한센병에서 완치된 분들의 공식 명칭을 '회복자'로 부르고 대만도 비슷한 의미의 '강복자'로 부른다. 다음은 성심원에서 살았던 세례명 프란체스코씨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했던 말이다.
"이 병 걸려봐요. 살고 싶지 않아요. 이 병은,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다 떠나가게 만들어요. 신이 있습니까? 신은 정말 인간을 사랑합니까? 신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비인간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이 분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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