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라 욕하든 진보라 욕하든, 이야기가 좋으면 거기에 충성한다"

임미리 2026. 4. 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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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리의 집중인터뷰]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②

[임미리 기자]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 그는 30여 년간 한국 사회와 한반도 문제를 해외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 뉴욕타임즈 영상 갈무리
<[인터뷰①] "사명감 강한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최상훈은 어떻게 기자가 됐나>에서 이어집니다.

최상훈 기자는 1991년부터 한국을 취재했다. 그 사이 대통령은 일곱 번 바뀌었다. 선거와 금융위기, 대통령 탄핵, 남북 대치와 화해, 세월호 참사와 K-팝의 세계적 확산까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장면들이 그의 취재 시간과 겹쳐 있다.

오랜 시간 한 사회를 지켜본 사람에게는 축적된 감각이 생긴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은 변하지 않았는지, 어떤 문제는 사라지고 어떤 문제는 얼굴만 바꿔 돌아오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인 그는, 지금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로 주저 없이 두 가지를 꼽았다. 혐오와 두려움.

냉전 틀에 갇힌 한국, 혐오가 키운 진영 정치

일곱 명의 대통령을 취재하며 그가 먼저 본 것은 권력자의 개성이 아니라 권력 주변에서 반복되는 습성이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권력 주변의 유혹과 오만, 자기 확신은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오래된 문법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처럼 노골적인 지역주의는 약해졌지만, 한국의 좌우 구도는 여전히 냉전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외국에서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 낙태, 세금, 복지, 노동 같은 정책이라면, 한국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가 정치적 구도의 기초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냉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지역적인 진영 논리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혐오와 두려움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그가 보기에 지금의 진영 정치는 정책 차이보다 감정의 동원에 더 가까웠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 의심, 공포가 진영 정치를 부추기고, SNS는 그 감정을 더 빠르게 증폭한다. 건강한 의심이 비합리적 음모론으로 넘어가는 순간도 많아졌다고 했다.

"부정선거를 예로 들면, 정말 부정선거를 믿어서 저쪽을 혐오하는 건지, 아니면 저쪽이 무조건 싫으니까 부정선거라고 믿는 건지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는 이것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했다. 미국과 유럽 역시 혐오 정치와 음모론의 확산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 감정의 밑바닥에 여전히 분단과 냉전의 언어가 겹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 언론의 전환점
 세월호 참사 직후 도심 시위에 참가한 시민. 최상훈 기자는 세월호 사건을 한국 언론 신뢰가 흔들린 전환점으로 꼽았다.
ⓒ sooduk Kim from Pixabay
30여 년 동안 겪은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묻자 세월호를 꼽았다.

"세월호죠. 우리가 배가 가라앉는 걸,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깥에서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요. 삼풍 사건은 인명만 따지면 더 많이 죽었어요. 그런데 세월호는 실황 중계된 재난이었어요. 기술의 발전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고, 그게 컸던 것 같아요."

그에게 세월호는 국가의 실패이자 언론의 실패였다. 사건 당시 기사와 속보가 쏟아졌지만 시민들이 얻은 것은 이해보다 혼란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외신 기자로서 한국 언론 보도를 광범위하게 참고해야 했다. 그런데 기사 수는 폭증했고 서로 충돌하는 정보도 많았다. 어떤 기사를 읽으면 이렇고, 다른 기사를 읽으면 저렇고,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는 기사들도 넘쳤다.

"기사라는 건 숨을 돌리면서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를 정리된 정보로 전달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던 거죠. 정리된 기사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의 언론 불신이 세월호를 거치며 한 단계 깊어졌다고 봤다.

"엄청나게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는데, 언론이 판단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헷갈리게 하는 정보가 쏟아져 나온 거죠. 그래서 짜증이 난 거예요."

분단은 외부 세계가 한국을 읽는 가장 오래된 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전경. 남북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경비 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분단은 여전히 외부 세계가 한국을 읽는 가장 오래된 창이다.
ⓒ Wikimedia Commons
한국 내부에서 보면 북한 이슈는 익숙한 일상일 수 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분단 국가'라는 상징으로 읽힌다고 했다.

"부모 자식이 50년 동안 못 만나 울고불고 다시 만나고, 또 다시 못 만나는 길로 헤어지고, DMZ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다 따지고 보면 분단 이야기예요."

그는 한국 사회 내부의 많은 갈등 역시 분단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우리는 못 보는 거예요. 외부에서 보면 한국 내부의 여러 갈등이 결국 분단과 연결돼 있다는 게 보일 수 있죠."

북한 보도는 단순한 호기심 소비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도 했다.

"북한에 동조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인지 이해하게 하자는 거죠."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북한에 살면서 취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K-팝, 한국 사회를 읽는 또 다른 창
 방탄소년단(BTS)이 4월 11일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BTS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빅히트뮤직제공
북한만이 한국을 설명하는 창은 아니라고 했다. 최근에는 BTS와 뉴진스,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역시 해외 독자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 그는 K-팝 기사에서도 사회학적 시선을 놓지 않았다.

"한국 아이돌 산업은 군대식이고 획일적인 훈련 시스템, 극단적인 경쟁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바로 그런 시스템 속에서 전 세계 시장을 사로잡는 문화 상품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죠. 한국 사회가 초경쟁 사회라고 하는데, 그런 극단적인 면이 K-팝 그룹 양성 과정에도 보이는 거예요."

K-드라마와 영화의 세계적 확산 역시 하루아침에 생긴 현상은 아니라고 했다.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걸 외국이 발견한 거죠. 한국은 지난 50~70년 동안 전쟁, 독재, 민주화, 사회 갈등, 가족 구조 변화 등 인간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농축돼 있었잖아요."

그는 2025년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성민씨 사망 소식과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씨의 북한행 시도를 기사로 썼다. 한반도 정치 지형에서 정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와 나이가 같은 김성민씨는 탈북자 출신 북한 인권운동 1세대로 기자들을 자주 만나던 사람이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 두 분 기사를 인간 기사로 봤어요. 분단이라는 특이한 구조 속에서 사는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우여곡절을 겪는가. 인간이라는 게 주어진 상황에서 아등바등 사는 존재잖아요."

한국 언론이라면 진보지는 안학섭을, 보수지는 김성민을 썼을 것이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자로서 평소 이념적인 사람은 아니고 별로 관심도 없어요. 제가 '충성'하는 게 있다면 스토리예요. 스토리가 좋으면 거기에 충성합니다. 남이 보수라고 욕하든 진보라고 욕하든, 스토리가 좋으면 저는 거기에 충성하는 파예요."

그가 말한 '스토리'는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그는 취재에 들어갈 때 늘 "이게 왜 이야기인가"를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계의 '엘리베이터 피치'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유명한 감독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6층 갈 때까지 짧은 시간 안에 내 시나리오를 설명해서 '스토리 괜찮네' 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기사도 마찬가지예요. 핵심 문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관계자에 따르면'이 너무 많은 한국 언론

최 기자는 한국 언론과 미국 유수 언론의 차이 중 하나로 익명 보도 관행을 꼽았다. 미국 언론도 익명 취재원을 쓰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예외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언론은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너무 습관적으로 쓴다고 했다.

"기자로서는 내가 분명히 들은 말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었다고 자신 있게 쓰겠죠. 하지만 독자는 완전히 다릅니다. 실명으로 나온 것과 '관계자에 따르면'은 천지 차이에요. 정말 사실인지, 기자 혼자 지어낸 건지 독자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에게 실명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었다. 누가 말했는지 드러나는 순간 취재원도 기자도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그는 가급적 실명을 쓸 수 있게 취재원을 설득하려 한다고 했다. 익명이라는 마스크 뒤에 숨어 남을 공격하거나 도발적인 말을 쉽게 하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실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이 불신받는 이유 중 하나로 '건방져 보이는 태도'도 들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 '이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구나, 이해를 많이 했구나' 그런 느낌을 갖게 해야죠."

그가 말한 겸손은 자신 없는 글이 아니었다. 많이 공부하고 충분히 이해한 뒤, 단정 대신 책임 있게 쓰는 태도였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기사가 오래 기억난다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이 서울의 한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30여 년간 한국 사회를 취재해 온 그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한다고 말했다.
ⓒ 최상훈
인터뷰 말미, 남은 기자 생활 동안 어떤 기사를 쓰고 싶으냐고 물었다. 얼마 뒤 64세가 된다는 그의 답은 소박했다.

"내가 옛날에 이런 기사를 썼던 게 기억난다, 그런 기사를 좀 쓰고 싶어요."

그는 학생 한 명만 남은 시골 학교 기사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없어진 시골 학교에 동네 할머니들이 1학년으로 입학해 손주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이야기다. 경북 영주의 한 남성이 베트남 이주 여성들에게 위성 안테나를 달아줘 고향 방송을 듣게 해주던 이야기도 기억했다. 약간 자폐 성향이 있는 내향적인 노총각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신문 기사를 읽고 바로 내려서 찾아갔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면서 특이하면서도, 사람들이 보기에 다 수긍이 가는 그런 이야기들. 저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평범하지만 특이하고, 낯설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퓰리처상을 받고 7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기자가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상 받은 기사나 권력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가 오래 붙잡아온 것도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평범한 사람들의 삶. 사명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좋은 이야기 하나에 충성하는 기자로서의 30여 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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