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유족인 나는 왜 합의를 했나

최현주 2026. 4. 29. 12: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상을 잃어버린 유족들, 살아야겠기에 합의했는데... 그 결과가 '징역 15년 →4년' 감형이라니

[최현주 기자]

 23명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 2심 판결 과정과 선고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아리셀참사대책위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원심보다 대폭 감형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운영총괄본부장도 1심 징역 15년에서 항소심 7년으로 줄었다.
ⓒ 권우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검은 숯덩이가 되어 돌아왔고, 저는 충격과 슬픔, 고통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투쟁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과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투쟁을 하면서 저희들이 요구했던 것은 진심 어린 사과, 엄중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이 세 가지입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저희들이 줄기차게 외쳐왔던 이 세 가지는 현재 단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더군요.

물론 100여 개가 넘는 시민사회노동단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연대해주신 덕분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구속 수사, 1심에서 15년 선고도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러나 2심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도 학교도 그만두고 병원 다녀... 풍비박산 난 건 유족들입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원인도 참사일뿐 아니라 참사 이후 과정도 '참사'입니다.

사측은 유족들에게 부분합의를 종용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유족들은 체념 상태에서 합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리셀 측은 사과를 했다고 하면서 오히려 유가족들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사과는 기자들 앞에서였고 판사 앞에서였을 뿐입니다.

저 또한 1년 10개월 동안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1년 넘게 정신과와 정형외과를 오가고 있고 10년 가까이 천직이라 생각하던 회사와 일도 아리셀 참사 이후 모두 정리했습니다.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동료들에게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참사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대학생인 두 딸은 아직 방황하고 있고 아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기까지 했습니다. 2024년 당시 고1이던 아들은 아빠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멈췄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자퇴를 했습니다. 설득과 치료 끝에 가까스로 2025년 3월에 다시 1학년으로 재입학했지만 수시 입시 준비를 못한 관계로 현재 다시 자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던 모범적인 아이입니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우재준 국회의원은 박순관, 박중언 부자의 1심 15년 선고가 패가망신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은 바로 우리 유가족들이 쓰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패가망신을 넘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제가 1년 10개월을 견디다 2심 선고를 열흘 앞두고 합의를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아야겠기에, 일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합의였기 때문입니다. 민사소송을 해본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소송의 승패를 떠나 그 과정이 얼마나 지리하고 고통을 주는지 말입니다.

무엇보다 제 남편은 아리셀 연구소장으로 1심 형사재판 내내 아리셀 측은 폭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제 남편인 것인 양 주장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과실이 없다고 확신하지만 배우자로서 세상에도 없는 남편에게 화재의 원인을 전가하는 것을 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민사소송이 시작되면 남편의 과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툴 텐데 저는 이를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 편하자고 합의를 하는구나'라는 자책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합의는 살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고 이해옥씨의 사촌 언니 여국화씨가 22일 오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1심 징역형(15년)을 대폭 감형한 항소심 선고(징역 4년)에 "유가족 심정을 조금만 헤아렸어도 그런 판결을 못 내렸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 전선정
다른 유가족들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별적인 사정은 각각이지만 남은 가족이라도 살아야 하기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이제는 고인을 잘 보내주어야 하기에 합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한 합의가 2심 형량이 파격적으로 줄어든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또다시 제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저는 2심 선고 이후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마저 듭니다. 막내 아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나 봅니다. 선고 이후 아이는 "우리나라는 답이 없다. 이민 가자"라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할 수만 있다면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참사에서 합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고인의 일실수입과 위자료를 받으면 용서가 되고 다 해결이 된다는 말입니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유가족에게 용서와 해결이란 없습니다. 이미 사랑하는 가족은 영영 볼 수 없게 되었고 남은 자들의 삶도 산산 조각났습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견디고 버티고 살아내는 것뿐입니다. 유가족들에게 합의란 그 과정에서 가해자가 건네는 최소한의 도리일 뿐입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유가족 최현주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