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달러의 위기…미국의 통화스와프 고려는 '어게인 1974'
(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선임기자 = 미국이 아시아와 걸프 지역의 동맹국들이 통화스와프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걸프 및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미국에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미국에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것은 아랍에미리트(UAE)로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심화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선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한 금융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 모두 UAE의 제안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혀 협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만, 미국이 이처럼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이란 전쟁이 촉발한 국제유가 급등과 걸프 지역 동맹국들의 경제적 타격이 되레 중국의 역할과 위안화의 위상만 높여주면서 '달러 패권'의 추락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 조용한 중국의 위상 강화…커지는 '페트로 위안'
전 세계 은행 결제 시스템으로 활용되는 SWIFT(세계은행 간 금융통신협회)의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달러의 국제 거래 결제 비중은 전월의 49.2%에서 51.1%로 상승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미·이란 전쟁 격화에도 핵심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은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달러 패권이 더 강화됐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미국 주도의 SWITF 수치만으로 보면 달러의 국제결제 비중이 분명 늘어나긴 했지만, 중국이 SWIFT의 대항마로 내세운 CIPS(국경 간 지급·청산 유한책임 공사) 수치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CIPS는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2012년 10월 출범시킨 위안화 전용 국경 간 결제·청산 시스템으로, SWIFT에 맞서기 위한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핵심 기반이다.
중국 상하이증권보에 따르면 최근 CIPS를 통해 처리된 일일 거래액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1조2천200억 위안(약 264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미·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인 2월 일평균 거래액이 6천197억 위안이던 것이 3월에는 9천205억 위안으로 급증하더니 4월을 넘어서는 1조 위안을 돌파했다.
CIPS의 거래액이 이처럼 급증한 것은 주요 산유국과의 원유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SWIFT를 통한 위안화 결제 비중은 5%를 밑돌면서 달러화에 견줘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지만, CIPS까지 고려하면 전 세계 위안화 결제액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2025년 6월 기준, CIPS 참여 기관은 121개국 1천690개에 달한다.
특히 지난 2018년 본격적인 제재를 받아 달러 결제가 사실상 금지된 이란은 이후 중국에 원유를 수출하면서 거의 전액을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위안화 결제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21년 1% 수준이던 원유 결제의 위안화 비중은 2025년 7%로 높아졌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때 통행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인데, 위안화와 가상자산을 통한 징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추락하는 '페트로 달러'…통화스와프는 '어게인 1974'
미국이 걸프 동맹국들과의 통화스와프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실익 때문만은 아니다.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청한 UAE가 이란의 공격에 따른 경제적 타격으로 달러화가 부족해질 경우 원유 거래 시 위안화 등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미국 측을 압박한 것에서 보듯 미국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50년 넘게 유지돼 온 '페트로 달러'의 위상이 이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셈이다.
그래서 미국이 실제로 걸프 동맹국들과 통화스와프 체결 방식을 통해 동맹의 지위를 강화하는 조치에 나선다면 지난 1974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비밀 협정에 준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금본위제 폐지로 촉발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상실 우려 확대와 1973년 제1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키신저 전 장관은 사우디를 극비로 방문해 비밀 협정을 맺었다.
모든 원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는 대신에 미국은 사우디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사우디가 원유를 팔아 확보한 달러를 다시 미 국채 등 달러 자산에 재투자하도록 했다.
미·사우디 간 비밀 협정은 걸프 산유국으로 확대됐고, 이는 50여년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더욱 굳건하게 하는 핵심적인 기반이 됐다.
무엇보다 중동산 원유가 전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을 이루는 핵심이란 점에서 달러를 통한 결제는 달러 수요를 확산하고, 페트로 달러의 미국 내 환류를 통해 안정적인 미 국채 발행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미국엔 매우 강력한 동력이었다.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걸프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달러의 지배력과 기축통화 지위를 지속하고, 대체 결제 시스템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라고 언급한 것도 최근 위안화 국제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 대한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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