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산 5억 그림, 25년 우정에 금이 간 까닭

한별 2026. 4. 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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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아트>

[한별 기자]

가로 150cm에 세로 120cm. 흰색 바탕에 가느다란 흰색 선이 지나가는 그림. 이 그림은 5억이다. 절친한 친구 세르주가 샀다는 5억짜리 그림을 본 마크는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마크는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친구의 선택에 분통을 터트리지만, 세르주는 오히려 그런 마크의 태도를 지적한다.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6월 14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아트>는 세르주와 마크, 이반이라는 세 명의 25년 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다. 결혼식 증인을 약속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지만, 어느 날 세르주가 구입한 그림 '앙뜨로와'의 등장으로 그들의 사이는 삐걱거리게 된다.

지난 26일 관람한 <아트>는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으로,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2년 주기로 공연됐다. 거듭되는 시즌에 문제의 그림 '앙뜨로와'의 가격이 2억에서 5억으로 상승하는 재밌는 변화도 있었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야 하는 보통의 연극과는 달리 <아트>는 정해진 대사와 동선 외에도 배우만의 애드리브가 넘쳐나는 극이다. 배경은 세르주의 집으로, 무대 위에는 긴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다른 연극 무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정말 친구 집에 온 것처럼 익숙한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 연극 <아트> 공연사진 마크 역할의 배우 김재범(왼쪽)과 세르주 역할의 최재웅이 연기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도 1979년생 동갑내기다.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친구'들의 갈등, 회복 기간

세 명의 친구가 유치한 이유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아트>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오롯이 웃음만은 아니다. 세 명의 인물을 통해서 관계에 임하는 태도 등을 이야기한다.

이 극의 앙뜨로와는 갈등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르주에게는 5억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보고 있자면 흡족한 예술 작품이지만 마크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크는 이반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반은 특유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결혼을 앞둔 자신의 상황에 집중할 뿐이다.

극을 보다 보면 마크가 앙뜨로와를 구매한 세르주에 지나치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마크가 섭섭해하는 건 세르주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이상 친구인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미술 애호가와 같은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자신과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르주가 그랬는지 묻는다면 이 또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르주도 그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과 다툼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와 온도의 차이에 있다. 이반 역시 두 친구의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조언과 위로를 하려 한다.

이 갈등의 봉합은 마크가 세르주의 앙뜨로와를 빈 캔버스 삼아 스키 타는 남자의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회복 기간'을 가지게 된 세 친구는 서로의 의미를 계속 탐색하며 이 혼란이 눈 속으로 사라지는 스키 타는 남자처럼 사라지길 기다리게 된다.
▲ 연극 <아트> 공연사진 25년지기 세 친구의 우정을 그린 연극 <아트>가 6월 14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사진 속 배우는 왼쪽부터 김재범, 박정복, 최재웅이다.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을 보는 색다른 방법

연극 <아트>의 내용은 단순하다. 또 극의 분위기가 무겁지 않다. 애초에 각 인물의 독백이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무대와 객석 사이 제4의 벽을 쉽게 드나들기도 한다. 관람 매너가 중요한 연극 극장이지만, <아트>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에 함께 웃고 고민하게 된다.

이날 마크 역할을 연기한 김재범은 1열에 앉은 관객에게 "어디서 왔냐"등의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에 맞춰 세르주를 연기한 최재웅과 이반 역할의 박정복도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찰떡호흡을 자랑했다. 세 사람은 2018년부터 함께 공연해 왔다.

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친구들과 함께 보는 것도 좋다. 다른 어떤 극보다 감상을 나누기 적절하다. 각자 누구에게 이입하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다 보면, MBTI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트>를 보고 나면 한때 그 누구보다 소중했지만 시간과 환경에 따라 멀어지게 된 인연들도 생각나게 한다. 연극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밀접해 있는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는 <아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서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지속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트>는 오랜 시간을 보냈더라도 친구 사이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고 편안하게 전달한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풀어내는지 중요하다. 차곡차곡 마음을 맞춘 시간은 회복 기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필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a.star_see)에 취재 후기와 함께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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