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뒤에 숨은 가해자...교황의 말에 뜨끔한 이유
[박서화 기자]
지난 3월, 국제정세가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던 무렵, 국제사회는 충격적인 영상 한 건을 목격했다. 미 백악관이 공개한 이란 공습 영상에서 폭격으로 부서지는 건물은 비디오 게임의 타격점처럼 묘사돼 있었고, 전쟁은 게임 속 '멋진' 플레이 한 편과 유사하게 중계됐다. 비판은 사방에서 쏟아졌다. 교황 레오 14세는 언론인들에게 전쟁을 "피해자의 눈"으로 보도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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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디오 게임으로 묘사되는 전쟁 공격 폭탄 투하 장면을 게임 화면처럼 만든 백악관 |
| ⓒ 백악관 공식 엑스 계정 캡처 |
역사는 1991년 걸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걸프전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이 '실시간 생중계'된 사례였다. 정밀 타격 영상은 전쟁을 스펙터클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당시 '애국 언론'들은 무기가 타격점을 '정밀 타격'하는 가해자 측 영상을 집중 살포하며 전쟁을 고도의 기술적 행위로 인식시켰다. 미디어의 시선을 따라가는 청자는 자연스럽게 '가해하는 쪽'에서 편집된 영상을 보게 되는 프레이밍이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미 국방부가 종군기자(embedded journalist) 제도를 도입했다. 기자들을 전투 부대에 직접 배속시켜 병사들과 함께 이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비무장 시민'이어야 할 기자가 '부대의 일원'이 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시민은 군대와 동고동락하는 기자들로부터 '가해자의 시선'에서 짜인 전쟁을 관찰하게 됐다.
2026년, 앞서 언급했듯 미 백악관이 전쟁을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묘사하자 국제사회는 마치 놀랍다는 듯 비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쟁의 계보로 볼 때, 이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서 보인 각종 행태는 그저 해묵은 관행의 최신 버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죽어가는 참혹한 전쟁을 한 편의 스펙터클한 '비디오 게임'처럼 무감각하게 소비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미디어 연구에서는 미디어와 기술을 인간 감각의 연장이라고 언급한다. 특히 전신과 전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감각을 조정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미디어가 전파되는 범위, 즉 지구촌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으니, 확장된 신체에 매료되면서도 '확장'이 자신의 일부라는 점을 감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 '비디오 게임 전쟁'과 'AI 전쟁'이 범하고 있는 과오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연결돼 있음을 감각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보고 듣는 참혹함 속에 그 감각기관을 통제하는 시민, 즉, '나'의 책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소거에 맞서기
정밀유도무기의 카메라가 포착한 건물 폭파 영상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타격하는 자의 시선만을 재현한다. 걸프전의 실시간 중계가 미국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서 소비되는 스펙터클이 되듯, 그리고 그 스펙터클이 미국 중심적 헤게모니를 통해 식민화된 지역에 퍼져 나가듯이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2026년의 전쟁, 그리고 전쟁을 서사화하는 시각 역시 가해자의 시선에 충실했다. 이란에서의 초등학교 폭격 사건을 두고 'AI 오폭'만을 강조했던 미디어와 국제뉴스 보도 관행 역시 이 연장선상이다.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쓰이는 'AI'를 통해 기술적 매개의 층위가 더욱 두꺼워졌다는 점, 대중은 그것이 '매개'라는 사실 자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이 '가해자성'을 더욱 두껍게 했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Narcissus)의 예시를 들며, 미디어가 확장시켜 비춘 이미지를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지각하지 않을 때 인간사회가 집단적인 감각 마비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1960년대 급격히 진전되는 기술 변동 속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 매클루언의 통찰은 전쟁 보도가 온통 'AI'를 언급하는 지금도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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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가 HIV 치료약을 들고 있는 모습 |
| ⓒ EPA/연합뉴스 |
의료를 유비로 '깨끗한 전쟁'임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가 놓친 것은, HIV의 사례에서 보듯 의료와 보건 역시 그것이 놓이는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재현하는 실천이라는 점이다. 누가 치료받을 수 있고 누가 방치되는지, 어떤 질병이 '위기'로 호명되고 어떤 질병이 통계 속에 묻히는지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문제는 탈정치적 외피를 두른 전쟁 수사가 국제사회의 비극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가 그동안 경험한 바를 토대로 이야기들을 재구성하면, 이제 1960년대 미디어 이론은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AI라는 기술 뒤에서 가해자성을 묵인하지 말고, 소거된 목소리의 복원에 나서야 한다." 폭격을 행하는 카메라 렌즈, 그리고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AI 알고리즘 뒤에는 오랜 기간 쌓여 온 인간의 편향과 기만이 있다. 기술적 해결주의를 마법의 탄환처럼 여겨온 오랜 관행들, 마치 비디오 게임 전쟁과 같이 인구를 통치해 온 식민주의적 권력, 타깃만 제거하면 전쟁과 폭력이 끝날 것처럼 선전해 온 의식은 모두 전쟁의 발화 뒤에 쌓여 온 오랜 편향과 기만이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정교하게 구축된 스펙터클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화면 속 반짝이는 타격점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임을 감각해야 하지 않을까. 국제사회는 오랜 기간 '정밀'하고 '타격점'을 '정확'하게 타격한다는 전쟁의 프로파간다가 누구를 피 흘리게 하고, 누구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목격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26년, 국제적인 폭력을 보는 인류의 시각은 알고리즘의 편향과 달라야 한다.
기술이 약속하는 '깨끗하고 통제 가능한 전쟁'은 세상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SC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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