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이 되자 배앓이 시작한 아이...우리가 함께 찾은 치유법
[박은미 기자]
"엄마, 배 아파."
벌써 일주일이 넘은 시점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아이는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꾀병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온 시간으로 알 수 있다. 엄마들은 아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아이를 의심하기 보다 복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중학교 3학년 아이에게 찾아온 위기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를 성실하게 다녔다. 지각 한 번을 안 했고 열이 아주 심한 감기를 제외하고는 매일 열심히 학교에 갔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해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담임 선생님에게도 좋은 평을 듣는 아이였다. 마음에 맞는 몇 명의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떠는 것으로 학교 가는 낙을 찾는 아이였는데 3학년이 되면서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반에 배정이 되었다. 워낙 교우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곧 친구가 생기려니 하고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결국은 친구들과의 관계 스트레스가 복통을 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사춘기의 끝을 달리면서 점점 더 거칠어지는 남자 아이들의 말투와 행동에 아이는 거부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이면 욕을 섞은 말투로 다른 아이에게 심한 장난을 쳐보라는 강요도 있었고 그걸 하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너만 또 쏙 빠지냐"라는 조롱도 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내가 모르는 학교폭력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거기까진 아니었다고 했지만 아이는 1학기를 보내면서 이런 상황들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말을 나눌 친구도 없이 혼자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반의 남자 아이들이 무리가 형성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거친 면이 있어서 우리 아이와 맞지 않는 걸 느꼈다고 하시며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역시나 무리에서 조금 소외되고 있는 아이 두 명과 친해져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 주셨다. 선생님 말씀을 아이에게 전하며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아이는 일단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것에 조금은 후련해진 것 같았고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은 매일 어두웠다. 학교에 다녀오면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잠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 복통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 학교 생활을 물어보니 여전히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수업 시간에 아이에게 가해지는 언어 폭력이라고 했다.
아이는 운동, 특히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몸을 움직여 승부를 가르는 활동을 어려워하는 편이다.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할 때는 괜찮은데 긴장을 하면 실수가 많아진다. 이런 활동들을 팀으로 하게 될 때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너 때문에 못했잖아", "그것도 못하냐", "야! 좀 빨리 해"라며 욕설을 섞어 비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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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살이 함께 하면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아이들 |
| ⓒ 고양자유학교 |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찾아보니 '고양자유학교'라는, 20년이 넘은 대안학교가 있었다. 홈페이지를 보면서 얻은 정보만으로는 궁금한 점 투성이였다.
'미디어 리터러시? 이건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는 건가? 아이랑 트러블이 좀 생기겠는데?',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고 별명을 부르네? 아, 낯설다', '그런데 검정 고시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학교에서 도와주나? 대학에 가고 싶을 땐 어떻게 하지?', '그나저나 이 학교에서는 대체 뭘 배우는 걸까?' 질문을 잔뜩 적어서 입학 설명회에 참석했다.
고등과정인 숲터 재학생들의 리코더 공연을 시작으로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 과정과 학교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우리 부부가 가장 놀랐던 것은 재학생들이 직접 나와서 자신들의 학업 과정을 설명하고 그동안 해왔던 과제들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 모두 떨지도 않고 발표를 능숙하게 해 내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반짝반짝한지, 한 명 한 명이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리코더 공연부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는데 결국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울음을 참기 위해 애써야 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울고 있었다.
설명회 이후로 학교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대 문자를 보내주셨고 우리 가족도 다른 일을 다 제치고 참여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겨우 두 번째 가던 날, 재학생들이 이미 아이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환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그날 따뜻한 환대에 자신이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꽁꽁 얼어붙었던 아이의 마음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우리 가족은 고양자유학교에 지원하기로 결정을 하고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예상보다 면접이 어려웠지만 솔직하게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고양자유학교에 보내게 되면 기대하는 것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틀 뒤 합격 전화를 받았다. 이제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희망이 생긴 것이다. 억지로 버텨야 하는 10대 마지막 시간이 아닌, 자유롭게 자신을 찾고 고민하는 시간이 아이 앞에 펼쳐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고 잘 해 보고 싶다는 의욕을 보여주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열 여섯, 다시 시작하는 배움
입학 전까지 2개월 가량 학교에서는 아이에게 특이한 과제를 내주셨다. 리코더 연습, 달리기, 책 읽고 독후감 쓰기, 부모와 함께 책 읽고 토론하기, 끼니를 직접 만들어 보기, 그리고 10학년 과정부터 시작되는 아웃턴십을 어떻게 준비할지 미리 생각해 보라는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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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학 전 기지개 학교 굳게 닫힌 교실 문! 선배들이 준비한 미션을 완료해야 들어갈 수 있다. |
| ⓒ 고양자유학교 |
현재 아이가 다니는 고등과정 숲터에서는 책과 영화를 보고 자기 생각을 써 보기, 본인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가는 '길 탐구' 과정을 통해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분을 찾아 인터뷰하기,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의견으로 기사 쓰기, 매달 부모와 함께 학교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는 '비정상회담', 미디어 사용을 기록하고 변화가 필요한지 토론하고 규칙을 만드는 '미디어',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계획해서 여행을 가는 '들살이' 과정이 있다. 물론 영어와 수학, 과학, 체육, 음악도 한다. 공교육과는 전혀 다르게 '외워서 풀기'가 아닌 몸으로 느끼고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배우고 있다.
중3 때까지는 해보지 않던 글쓰기가 많아 어려울 텐데도 아이는 밤 늦게까지 과제를 하며 적응하고 있다. "시험 기간에도 이렇게 늦게 잔 적은 없는데"라며 뿌듯해 하는 아이를 보며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낀다. 경쟁을 붙이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비난을 받던 아이는 이곳에서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글쓰기가 좀 서툴러도, 리코더의 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아, 잘하는데?"라며 한번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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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학 전 기지개학교 첫날이라 어색함도 잠시 서로의 생각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아이들 |
| ⓒ 고양자유학교 |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둘이서만 어려움을 해결해 왔고 어느 시점이 지나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한계를 느꼈을 때 고양자유학교라는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아이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함께 산다고 표현한다. 초1 나이에 들어오면 12년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짧은 기간이지만 나와 남편도 이 공동체를 통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의 어려움이 오롯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남편과 내게 고양자유학교 엄마 아빠들은 같이 고민을 나누면서 우리도 같이 놀자고 말한다.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그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 아이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이 우리 아이들에게로 옮겨가고 우리 사회로도 옮겨간다. 아이들을 위해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고양자유학교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공교육 9년 동안 아이는 학교에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속으로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지금의 교육 환경에서 우리 아이처럼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대안교육을 추천하고 싶다. 하늘을 나는 것을 가장 잘 하는 새에게 토끼 만큼은 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며 배우는 학교도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이 고통 받지 않고 반짝반짝 눈부신 웃음을 되찾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으면 좋겠다.
고양자유학교는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때 만나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준 곳이다.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곳, 자신에 대한 단단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 '자립'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곳, 고양자유학교의 대안교육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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