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도 나만 보면 웃어줬어"... 결혼 60주년 부부의 사랑
[최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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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맞은 이봉진·김연수 어르신 부부가 리마인드 웨딩 콘셉트로 카메라 앞에 섰다. |
| ⓒ 김은혜 |
결혼 60주년을 맞은 김연수 어르신은 남편 이봉진 어르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25일, 충남 서산 해미읍성 잔디 위에서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대표 김은혜, 이하 내봄눈)가 진행하는 장수사진 프로젝트 '꽃보다 예쁜 우리' 촬영이 열렸다. 올해 첫 재능기부로 마련된 이날 촬영의 주인공은 엘림재가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과 가족들이었다.
결혼 60주년, 곧 회혼례를 맞은 이봉진(88)·김연수(82) 어르신 부부, 전영희(83) 어르신, 그리고 센터 최고령인 정종호(96) 어르신과 따님 정석순(62)씨가 카메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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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60주년을 맞은 이봉진·김연수 어르신 부부가 서산 해미읍성에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
| ⓒ 김은혜 |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김연수·이봉진 어르신 부부였다. 두 사람은 올해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맞았다. 센터에 계시는 부인 김연수 어르신 곁에는 밖에서 생활하는 남편 이봉진 어르신이 함께했다.
두 분은 인천 영흥도의 작은 섬에서 교회를 다니며 처음 만났다. 어느새 60년 세월을 함께 건너왔고,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와 여섯 명의 손자·손녀를 두었다.
세월이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연수 어르신은 당뇨와 뇌수술, 치매를 겪었고, 이봉진 어르신도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남편은 한결같이 아내 곁을 지켰다.
60년을 함께 산 비결을 묻자 김연수 어르신은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야. 다시 태어나도 저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할 말 없을 정도로 잘해줬지. 나한테 손 한 번 안 들었으니까. 화가 나도 나만 보면 웃어. 그 얼굴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꼈지. 그래서 행복했어."
남편 이봉진 어르신의 대답은 담백했다.
"우리 할머니가 다혈질인데, 내게 맞추라고 하지 말고 내가 거기에 맞춰주면 그게 제일 편안해."
주변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60년 세월을 지켜온 사랑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니었다. 아픈 날 곁을 지키는 일, 화가 나도 웃어주는 일,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내가 먼저 맞춰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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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희 어르신이 서산 해미읍성에서 꽃다발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어르신은 촬영 후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
| ⓒ 신윤희 |
이어 카메라 앞에 선 전영희 어르신은 젊은 시절 과일 도매업을 크게 운영하며 활발하게 살아온 분이다. 현재는 치매로 인해 기억력 저하가 진행되고 있으며, 친언니의 돌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교사의 꿈을 실제 교직에 종사했던 것처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르신이 평생 마음속에 품어온 꿈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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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을 쓴 전영희 어르신이 서산 해미읍성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
| ⓒ 김은혜 |
촬영을 마친 뒤 전영희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어. 다시는 해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야. 오늘 사람 구경 많이 해서 행복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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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호 어르신과 따님 정석순씨가 서산 해미읍성에서 함께 촬영하고 있다. 정씨는 아버지를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
| ⓒ 김은혜 |
이날 촬영의 마지막 울림은 정종호 어르신과 따님 정석순씨에게서 나왔다.
정종호 어르신은 6·25 참전 용사이자 무형문화재 48호 무속 1호로, 전국 무대를 벗 삼아 활동하고 제자들도 양성한 분이다. 96세의 나이에도 매일 새벽 일어나 목욕을 하고, 거울 앞에서 스스로 옷매무새를 살필 만큼 단정한 분이다.
따님 정석순씨에게 아버지는 평생 사랑을 아낌없이 준 사람이었다.
"저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김살 없이 클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제일 행복해하셨던 순간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으실 때였죠. 저는 딸로서 그 모습을 보며 한평생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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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호 어르신과 따님 정석순씨가 서산 해미읍성에서 손을 맞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
| ⓒ 신윤희 |
이날 해미읍성 잔디 위에서 아버지와 딸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을 마친 정종호 어르신은 "딸과 함께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했다"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어 뜻깊고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어르신의 목소리는 잠시 흔들렸다.
"내가 이런 말 한마디만 너한테 당부하겠다. 누구든지 부모 모시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의욕은 다 있을 거다. 고맙다. 사랑한다."
촬영장은 잠시 숙연해졌다. 긴 세월을 살아온 아버지가 딸에게 건넨 말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 안에는 미안함도, 고마움도, 걱정도, 사랑도 모두 들어 있었다.
정석순씨도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 같은 분이세요. 아버지가 살아오신 모습과 마음가짐이 제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아버지, 살아계시는 날까지 행복하게 제 곁에 계셔주세요. 저도 아버지 곁에서 최선을 다해 보필할게요. 사랑해요."
정종호 어르신은 봉사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생각도 못한 추억이야. 봉사자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고마워."
촬영을 마친 정종호 어르신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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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5일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장수사진 프로젝트 ‘꽃보다 예쁜 우리’ 촬영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따님 정석순(62)씨와 아버지 정종호(96) 어르신, 전영희(83) 어르신, 김연수(82)·이봉진(88) 어르신 부부 |
| ⓒ 김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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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봉사자들과 이날 촬영의 주인공인 어르신 및 가족이 서산 해미읍성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 김은혜 |
"어르신들의 봄날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가진 깊은 아름다움이 분명 있습니다. '꽃보다 예쁜 우리'라는 이름처럼, 어르신들께서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주인공으로 기억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수사진은 흔히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날 해미읍성에서 만난 장수사진은 이별의 예고가 아니라, 살아온 삶을 존중하고 오늘의 행복을 축복하는 기록이었다.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그 안에는 미처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함께 담겼다. "고맙다", "사랑한다", "행복했다"는 짧은 고백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 사이로 오래 머물렀다. 그렇게 사진은 얼굴을 남기고, 말들은 마음을 남겼다.
삶의 봄날은 젊은 시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 서산 해미읍성 잔디 위에서 어르신들은 웃고, 울고, 사랑을 말하며 또 하나의 계절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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