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이 휘날리는 공주 공산성 성곽을 걸으며

김병모 2026. 4. 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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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 기자]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던 25일 오후, 국립공주박물관을 잠시 들러 세계유산 백제 역사 유적지구 공산성으로 갔다. 먼저 박물관에 들어서자, 박물관 80주년 마지막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주시와 충남 연정 국악단이 색소폰 악기 협연으로 비틀스의 '헤이 주드(Hey Jude)' 음악이 흐른다. 감미로운 음악 소리를 들으며, 웅진 백제 시대의 위대한 군주 무령왕의 흔적과 업적을 둘러본다.

박물관에서 색소폰 음악 소리를 들으며 전시물을 보는 맛이 새롭다. 무엇보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지석(국보 제163호)은 능의 신분을 알 수 있게 해준 한국 고대 유일한 왕릉의 지표이다. 당시 무령왕릉에서 지석이 발굴된 순간, 한국 역사 학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고학계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필자는 박물관에서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를 뒤로 하고, 웅진 백제 시대의 울타리이자 무령왕이 한때 거닐었던 공산성으로 향했다.

공산성은 웅진 백제 시기(475~538)를 대표하는 왕성이다. 철교를 가로지르는 비단 금강으로 천연 해자를 두른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천오백 년 전 고대 왕국 백제의 찬란했던 향취가 잠시나마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요즘은 공주 산성을 공산성이라 부르지만,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 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 산성으로 불렀다고 한다.
 공산성.
ⓒ 김병모
공산성 금서루 입구에 들어서자, 즐비하게 세워진 비석들이 이채롭다. 안타깝게도 비석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궁금해하는 사람도 더러 보인다. 필자 역시 눈을 비비며 비석의 글씨를 읽어본다. 주로 공주에 부임했던 관리들이 선정을 베푼 후 임지를 떠날 때, 공주 백성들이 뜻을 모아 세운 비석 같다.

성곽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수문장과 백제 병사들이 창과 사신도 깃발을 휘날리며 등장한다. 공산성 서문 금서루로 행렬하는 백제군 수문병 교대식이다. 일순간,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깃발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걷는 수문병들이 당당하다. 여행의 맛이랄까. 예상하지 못한 교대식 행사에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한다고 한다.

깃발을 보면 노란 색깔로 비슷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이 깃발은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6호분 벽면에 회를 바르고 그려져 있는 사신도를 재현하여 만든 것이란다. 사신도는 동서남북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성곽 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노라니, 신라와 고구려를 대항하여 힘을 겨루었던 백제군의 위상을 보는 듯하다. 행렬 후 수문병들이 힘든 일정에도 관객들의 사진 촬영에 응해주는 모습이 정겹다.

공산성의 역사는 조선으로 이어진다.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공신들을 높이 등용한다. 세상의 이치가 언제나 그렇듯 만족할 만한 자리를 차지한 공신들이야 의기양양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공신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인조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1574~1624)은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이 임진강을 건너 한양으로 입성한다는 급보에, 인조는 황급히 공주공산성으로 피신한다.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인조는 한때 반정에 참여한 공신 이괄 일파에 밀려 공주공산성으로 파천해야 했다.

인조는 공산성에 머물면서 반란군이 진압됐다는 소식을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렸을 것이다. 그때 인조는 공산성 큰 나무 두 그루에 기대어 시름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반란군이 토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인조는 그동안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나무에 정 3품 벼슬을 내리고, 훗날 이곳에 정자를 지어 쌍수정(雙樹亭)이라 한다. 쌍수정의 일화를 아는 듯,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보인다.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반란군에 밀려 전전긍긍했던 왕이 안쓰러워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떡을 만들어 왕에게 올렸는데, 왕은 그 떡의 맛에 감탄한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임씨가 만든 떡을 "임절미"로 불러오다가 "인절미"가 되었다는 설(說)이 있다. 공주가 인절미의 유래가 된 셈이다.

바람 없는 성곽 위로 뜨거운 햇살이 여전히 내리쬐고 있다. 잠시 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성곽 주변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곳엔 벌써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다. 분위기가 약간 어색한 듯하여 인절미 유래를 살짝 흘렸더니, 어느 분이 "그래서 공주 주변 떡집이 유명한가"라고 거든다.

결국 공산성은 백제를 지켜내지 못한 채, 신라에 내주고 만다. 수많은 주인이 바뀌는 굴곡진 역사를 담은 공산성은 성곽에 흔적을 남긴 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2015년)된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금강을 낀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공주시가 한눈에 보인다. 깃발 휘날리는 성곽 안쪽으로 좀 더 걸으면 찬란했던 백제의 숨결까지 느껴질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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