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 이어 살목지 간다…영화 끝났는데 관객은 집에 안 가는 이유[비크닉]

이지영 2026. 4. 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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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에 ‘새벽 3시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충남 예산의 한 외진 저수지 앞으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사진이다. 한밤중인데도 차량 행렬은 끊이지 않았고, 교통 앱에도 이 저수지로 향하는 차량 흐름이 실시간으로 잡혔다.

지역 축제도, 맛집 오픈런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향한 곳은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공포 영화 ‘살목지’의 실제 배경지, 충남 예산군 저수지 ‘살목지’였다. 영화 속 ‘그 장소’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발길이다.

영화 ‘살목지’의 한 장면. 영화는 살목지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 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 쇼박스


낯선 풍경은 단순한 흥행담을 넘어선다. 관객은 영화관을 나서 실제 장소를 찾고, 영화 홍보를 담당하는 이들도 영화 바깥에서 또 다른 콘텐트를 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관객은 작품 안에 더 오래 머문다. 영화 한 편이 상영관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영화관 불 꺼지자, 내비게이터를 찍는다


‘살목지’는 MBC ‘심야괴담회’ 등 각종 공포 콘텐트에서 화제를 모았던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온라인 지도 로드뷰에 수상한 형체가 찍힌 뒤 이를 확인하러 간 촬영팀이 저수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와 맞닥뜨린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살목지는 ‘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으로 불리는 금기의 장소다. 숲 깊숙한 저수지, 물과 땅의 경계가 흐릿한 공간, 밤이면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설정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크린 속 공포를 현실에서 직접 체험해보려는 움직임이 이어진 이유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위치한 저수지 살목지의 위성 지도(위)와, 한밤중에도 183대의 차량이 살목지로 향하고 있다는 교통 앱 화면(아래). 영화 개봉 이후 외진 저수지가 단숨에 전국적 화제의 장소가 됐다. 사진 네이버 지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상영 직후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에 ‘살목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평소 지역 주민과 낚시객 일부만 찾던 외진 저수지는 단숨에 화제의 장소가 됐다. SNS에는 “직접 가봤다”, “새벽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후기들이 이어졌고, 차량 행렬 사진과 교통 앱 화면 캡처도 빠르게 퍼졌다. 이에 “살던 귀신도 사람 많아 이사 가겠다”, “이제 살목지가 아니라 살리단길”, “올해 워터밤은 살목지에서 하자”는 농담까지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물귀신과 함께하는 워터밤 2026' 이미지. 영화 흥행 후 실제 살목지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패러디한 합성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왕사남’도 그랬다…영화 밖에서 이어지는 열기


비슷한 현상은 불과 한두 달 전에도 있었다. 1660만 관객을 돌파한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에는 방문객이 몰렸다. 청령포와 장릉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영화의 여운을 실제 공간에서 이어가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한 번 본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보는 N차 관람도 활발했다. 관객들은 같은 영화를 반복해 보고, 영화 속 공간을 직접 찾고, SNS에 후기를 남기며 작품에 몰입했다. 이보다 앞서 2018년 개봉한 공포 영화 ‘곤지암’ 역시, 흥행 이후 공포 체험객들이 영화 촬영 장소인 경기 광주의 곤지암 정신병원(현재 철거)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역사적 배경이 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에서 관람객들이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종호 기자

업계에선 같은 영화를 여러 차례 관람하고, 굿즈를 모으고, SNS에 해석을 올리고, 촬영지를 찾는 행동이 모두 콘텐트 안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 ‘과몰입’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과몰입은 본래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거나 빠진다는 부정적 의미였지만, 최근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는 의미로 통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디깅(digging·파기)’ 문화와도 연결된다.


과몰입 유도하는 홍보, 지자체는 올라탄다


쇼박스가 영화 ‘살목지’를 위해 운영 중인 노션 페이지. 관객이 극장 밖에서도 작품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설계한 콘텐츠다. 사진 노션 캡처
관객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배급사도 영화 바깥에서 즐길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부가 콘텐트로 관객의 관심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런 방향에 맞춰 배급사와 홍보사 모두 개봉 이후 관객 몰입을 붙잡는 전략을 강화하는 추세다.

쇼박스가 영화 ‘살목지’를 위해 운영 중인 노션 페이지가 대표적이다. 괴담 소개 사이트처럼 꾸민 이 페이지에는 영화 설정과 분위기, 비하인드 정보가 담겼다. 관객이 극장 밖에서도 작품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설계한 콘텐트다. 앞서 ‘왕과 사는 남자’ 개봉 당시에도 촬영 현장 사진과 제작 뒷이야기를 담은 노션 콘텐트 ‘촬영 실록’이 팬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플랫폼을 다시 활용했다.

‘살목지’ 노션 콘텐트를 담당하는 박연수 쇼박스 커뮤니케이션팀 대리는 “최근 작품들이 입소문과 함께 개봉 2주차부터 본격적인 관객 유입이 시작되는 추세였다”며 “개봉 이후 시점부터 영화 속 서사와 설정에 대한 관심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을 이어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 대리는 “작품마다 장르적 결이 다른 만큼 콘텐트를 풀어가는 방식도 작품 성격에 맞춰 다르게 설계하고 있다”며 “‘살목지’의 경우 호러 영화 특유의 로케이션과 굿·고사 비하인드, 인물 간 관계성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 안에서 모두가 같은 영화를 보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영화는 각자의 해석 속에서 새롭게 완성된다”며 “그 해석과 대화가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이벤트도 이어졌다. ‘살목지’ 출연진은 손익분기점 돌파 공약으로 귀신 분장을 한 채 서프라이즈 무대인사에 나섰다. 단순 홍보 행사를 넘어 영화 속 분위기를 다시 체험하게 한 셈이다.

충남 예산군 공식 유튜브 채널의 ‘예산군 광시면에 살목지 있는 거 아세요?’(위)와 한국수자원공사 공식 유튜브 채널의 ‘살목지, 거기는 찌꺼기도 못 나와’(아래) 영상 캡처. 두 기관 모두 영화 '살목지'를 재치 있게 패러디하며 화제를 모았다. 사진 유튜브 지자체 패러디 영상 캡처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도 이런 과몰입 흐름에 올라탔다. 예산군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영화 예고편을 패러디한 영상을 올렸고, 한국수자원공사는 ‘살목지, 거기는 찌꺼기도 못 나와’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영월 역시 영화 흥행과 맞물려 관광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영화가 지역의 풍경을 바꾸고, 지역은 다시 영화의 여운을 이어받고 있는 모습이다.

■ b.이슈

「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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