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5개밖에 안 돼” “고맙다”…호남 ‘돈봉투 선거’ 또 터졌다

6ㆍ3 지방선거를 35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호남발 금권 선거’라는 대형 악재에 직면했다. 민주당은 지난 16일 경선을 거쳐 후보로 확정된 손훈보 순천시장 후보에 대해 감찰을 벌이고 있다. 이르면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후보 후보 자격 박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26일 KBC광주방송은 손훈모 더불어민주당 순천시장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이 지역 사업가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보도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지난 21일 새벽 손 후보와 사업가 A씨, 선대위원장 B씨가 만난 자리에서 A씨를 형님으로 부르는 손 후보가 “형님 나 일어설게요”라며 자리를 뜬 뒤, A씨가 B씨에게 “지금까지 많이 썼죠. 10개 이상 들어갔소? 그거 5개밖에 안돼”라고 하자, B씨는 “아껴가면서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민주당은 녹취록 속에 언급되는 ‘5개’와 같은 숫자들이 손 후보 측에 전달된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손 후보는 “뉴스를 통해 처음 접한 사실이고 놀랐다”며 “저를 제거하려는 추악한 정치 공작”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중이다.
박성현 전 민주당 광양시장 예비후보도 이달 초 불법 경선 전화방을 운영하다 선관위에 적발됐다. 현장에서 광양시민 5만 4000여 명의 전화번호 명단과 운동원 수당 781만 원이 담긴 봉투 등이 무더기로 압수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관위가 고발한 첫 불법 전화방 사례인데, 문조차 잠그지 않아 증거 수집이 수월했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박 전 후보는 민주당을 탈당해 지난 13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 없는 공천 ▶부적격자 배제 ▶낙하산 배제 ▶부정부패 없는 공천 등 4무(無) 공천을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당 경선 승리는 곧 당선’이라는 호남은 여전히 선거 부정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 임실과 전남 화순 군수 경선에서도 돈 봉투 살포와 대리투표 의혹이 불거지며 경선이 중단되는 등 파열음이 일었고, 돈 봉투와 식사비 대납 의혹으로 얼룩진 전북지사 경선의 소음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의 한 기초자치단체장 예비후보는 “지역에 내려오니 ‘매수가 전통’이라는 말부터 들었다”며 “언론에 공개되는 호남 비리는 실제의 100분의 1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예비후보는 “돈 봉투를 뿌린 후보가 경선에서 이기니 제보자 대부분이 입을 닫더라”며 무력감을 토로했다.
호남 부패는 민주당의 고질적 문제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당선 무효형을 받아 직을 잃은 민주당 기초단체장 3곳(전남 곡성·담양·신안)도 모두 호남이었다. 현금 살포와 채용 비리 등 당선 무효 사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정의당은 지난 8일 이같은 재·보궐 사례 등을 지적하며 “견제 없는 민주당의 일당 독점체제가 호남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당내에선 컷오프를 최소화한 무한 경쟁 방식이 오히려 호남 부패를 키웠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남의 한 초선 의원은 “순천시장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도 부정 경선 의혹으로 공천이 취소됐던 인물”이라며 “정청래 룰로 컷오프되지 않고 후보직까지 거머쥐니 사고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의 또 다른 초선 의원도 “인구가 적은 호남에서는 권리당원을 확보한 현역이 유리해 도전자의 금권 선거 유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존재감을 잃으며 경선 비리가 수도권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최근 종로구청장 경선 과정에서도 현금 살포 의혹이 제기돼 당 차원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지선에서 경북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석권을 노리는 민주당은 ‘호남 부패’가 다른 지역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28일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 총회에서도 서울과 부산, 경남 등 격전지에서 야당과의 격차가 좁혀지는 여론 조사를 공개하며 “유권자에게 오만하게 보여선 안된다”며 내부 단속령을 내렸다.
정 대표가 윤리감찰단과 암행어사단 운영을 확대하며 부패 신고 활성화로 ‘감춰진 비리’가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권리당원 강화 기조로 힘이 빠진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에게 현금이 전달돼 오히려 신고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며 “당원 주권 강화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부패가 줄어드는 추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박태인·이찬규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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