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없인 글로벌 못 간다? …그 공식이 만든 함정 [넷플릭스 없이, 통할까①]
특정 작품 흥행, 글로벌 인지도 직결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영토 확장은 넷플릭스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부터 '더 글로리', '지금 우리 학교는', '흑백요리사'까지. 전 세계적 흥행을 거둔 작품 뒤에는 언제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이틀이 붙었다. 하나의 플랫폼이 유통‧마케팅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 속에서, 특정 작품 흥행은 곧바로 글로벌 인지도로 직결됐다. 그 결과 업계에는 하나의 공식이 고착됐다. 넷플릭스에 편입되는 순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된다는 인식이다.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에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려면 국가별 에이전시를 거쳐 판권을 나눠 판매하며 제작비를 충당해야 했다.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주요 시장을 직접 돌며 수백억 원 규모 작품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하나의 OTT 플랫폼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으로도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한 번에 확보된다.
특히 넷플릭스는 제작비 100% 이상을 지급한다. 적자 위험이 없고, 지상파 심의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소재도 시도할 수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청률이 낮으면 도산 위기였지만, 넷플릭스는 적어도 돈 걱정 때문에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게 한다"고 했다.
초기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 진입을 위해 주연 배우 출연료를 회당 1억 원 이상, 스태프 일당도 지상파 대비 1.5~2배 수준으로 책정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반면 기존 지상파·케이블 방송사는 회당 제작비의 60~70%만 선지급하고 나머지는 광고 수익이나 판권 정산에 연동시키는 구조여서, 시청률이 부진하면 제작사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시장 선점 후, 조건은 점차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 제작사 PD는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유치 경쟁을 하느라 배우, 스태프, 제작사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이제 구독자가 오르고 시장을 장악하니 보상 수준을 기존 방송사 수준으로 내렸다"며 "이미 ‘갑의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3년 넷플릭스가 밝힌 ‘4년간 약 3조 원 규모 투자 계획’의 마지막 해가 2026년이다. 이를 두고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넷플릭스는 투자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다만 투자 총액과 별개로, 제작비 상승과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프로젝트 선별 기준이 강화되면서 제작사들이 체감하는 조건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후발 주자들이 콘텐츠 확보를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조건만으로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어디에 공개되느냐가 곧 글로벌 노출량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넷플릭스의 압도적인 점유율은 그 자체로 협상 카드가 된다. 제작사들이 조건이 낮아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넷플릭스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 구조가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IP와 해외 유통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탓에, 대박이 터져도 제작사가 가져가는 추가 수익은 없다. 약 9억 달러(당시 한화 약 1조 620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징어 게임' 시즌 1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가 거둔 수익 대비 제작비 배율은 40배를 상회했지만, 제작사에 돌아간 마진은 20억~5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반면, 넷플릭스가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1조 원을 훌쩍 넘었다
미국은 다르다. 할리우드에서는 작가·감독·배우 등 창작자들이 작품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재사용될 때마다 레지듀얼(residuals), 즉 재사용 보상금을 받는다. 미국작가조합(WGA)·미국배우조합(SAG-AFTRA)·미국감독조합(DGA) 등의 단체협약으로 강제되는 이 지급 의무는 작품의 수익성과 무관하게 적용된다. 나아가 협상력 있는 스타 감독이나 배우는 흥행 수익에 연동된 추가 보상 구조(backend participation)까지 계약에 포함한다. 한국엔 이런 제도적 안전망이 없다. 단체협약도, 재사용 보상금 의무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에서 제작사의 협상력은 넷플릭스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위이고, 영세한 제작사일수록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모든 권리를 넘기는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그렇다면 왜 제작사들은 이 구조를 감수하면서도 넷플릭스와 손을 잡을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기존 지상파·케이블 구조에서는 시청률 부진 시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적자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넷플릭스는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제작비 전액을 보전해주는 구조인 만큼, 제작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는 안전한 선택'이 된다.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이 글로벌 시장에 공개되면 감독·배우·제작사의 이름값이 올라간다. 이 레퍼런스가 다음 작품의 협상력을 높이고, 더 나은 조건을 끌어낼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 수직적 종속 구도는 방송 생태계 전반으로 번진다. 제작사에게 방송사가 갑이라면, 그 방송사 위에 군림하는 것이 OTT라는 시각이다. OTT에 선판매하지 못한 드라마는 이제 제작 자체가 어렵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방송사의 제작비 지급률은 40~60% 수준이다. 드라마 한 회당 제작비가 5억이라 치면, 3~4억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작사가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공백을 메우는 수단이 PPL이다. 제작비 충당을 위해 PPL은 사실상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됐다. OTT 선판매마저 성사되지 않으면 이 구멍은 더 커진다. 결국 OTT에 줄을 대지 못한 작품은 PPL에 더 의존하거나, 아예 제작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방송사들은 만성 적자 속에서도 편성을 멈출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방송법 편성 의무에 따라 일정 비율 이상의 국내 제작 프로그램과 장르별 편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높여놓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제작비를 쏟아부을수록 적자 폭만 커지는 구조다.
결국 제작사들이 기대는 것은 단일 플랫폼의 거대한 유통망 뿐이다. 문제는 이 고착이 길어질수록 협상력은 줄고, 구조적 불균형은 깊어진다는 점이다.
창작자들이 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등 영상창작자 단체들은 IP 양도 이후에도 흥행 성과에 비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추가보상청구권 도입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창작자 측은 "법안이 시행되면 넷플릭스 같은 거대 글로벌 플랫폼이 가장 많은 보상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라며 "남의 돈으로 우리 창작 토양에 거름을 주는 효과"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방송협회와 OTT협의회 등 플랫폼 연대는 사적 자치 원칙 위배와 투자 위축을 이유로 맞서고 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유정주·성일종·이용호 의원 등이 추가보상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다시 발의됐지만, 플랫폼 업계의 반발 속에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불법복제물 유통 차단을 다룬 별개의 법안으로, 수익 배분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스마트폰 등장에 빗댔다. "넷플릭스의 역할을 묻는 건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폴더폰 시절이 그립냐고 묻는 것과 같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다." 피할 수 없는 구조라는 말이다. 그러나 흐름을 인정하는 것과, 그 안에서 균형을 설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일 플랫폼 의존이 고착된 채로는 글로벌 성공의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불균형 역시 고착될 수밖에 없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3 픽] "대구마저 내줄 순 없다"…벼랑 끝 보수 결집, '분열' 딛고 '원팀' 시너지 낼까
- "옆집 7억인데 우린?"…삼성·현대차 너머 하청까지 번진 '보상 전쟁'
- [지선 현장] "재수야 떠나면 우야노" "이미 당선됐다"…전재수, '고향'서 감사 인사
- [영상] "맙소사!" 하늘 치솟은 후 끊어진 놀이기구
- [6·3 픽] 정청래의 민주당, '대통령 분신' 김용 공천 배제…계파 갈등 재점화되나
- [6·3 픽] 국민의힘 재보선 9곳에 25명 지원…정진석·이진숙·박민식 등 출사표
- 러 "北과 군사 협력 계속…韓·美·日, 한반도 긴장 고조시켜"
- "'나만 살자' 안돼"…李대통령, 노동절 앞두고 삼성전자 노조에 경고?
- 둘이 합쳐 티켓값 40만 원 시대…안목과 실속 챙기는 ‘대학로 데이트’
- 체면 구긴 한화, 회장님 오신 날 대패…류현진 충격 6실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