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10개월짜리 AI 수석의 부산 '탈출'

하정우 청와대 인공지능(AI) 미래기획수석 입장에선 그저 상대해야 할 많고 많은 기자 중 하나였겠지만, 네이버 시절부터 그와 인연을 맺은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하 수석을 내 AI 가정교사로 생각해왔다. AI 관련 기술이나 트렌드 등 궁금한 게 있으면 그를 찾았고, 바쁜 와중에도 그는 항상 문과 눈높이에 딱 맞는 쉬운 용어로 내 의문을 풀어주곤 했다. 챗GPT 출시 두 달 전에 이미 하이퍼클로바(네이버의 초거대 AI) 등을 탑재한 생성형 AI 서비스 뤼튼(wrtm)이 짧은 한글 칼럼을 뚝딱 내놓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시연해준 사람도 하 수석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초대 AI 수석에 발탁됐을 때 기술 진보와 플랫폼 기업에 부정적인 더불어민주당 정권 안에서 그가 중심을 잘 잡아줄 거라는 기대가 컸다. 부지런히 언론에 설명하고, 기업 고객을 설득하는 한편 서울대와 협력해 AI공동센터장까지 맡았던 그를 '네이버의 AI 영업사원' 쯤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 같은 글로벌 최상위 AI 학회에서 활동해온 유능한 AI 연구자가 기업을 리드하며 다른 대학·산업계와의 소통 능력까지 갖춘 건 결코 욕먹을 일이 아니라 귀한 재능이었다. 그를 공직으로 이끈 것도 아마 이런 배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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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 외치다 출마 조기 퇴장, 출마
AI 강국 구호 선거용 소모품인가
대만 오드리 탕과 너무 다른 선택
」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 AI 3대 강국 진입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고 하 수석을 "국가 대표 AI 전문가"로 치켜세우며 없던 자리까지 신설해 발탁했다. 그 역시 "앞으로 3년, 혹은 5년이 AI 골든타임"이라며 "AI 경쟁력 강화에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GPU 26만장 확보'와 같은 몇 가지 계획표를 내놓은 지 고작 10개월이 흘렀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 여당 후보로 나가기 위해 하 수석이 지난 27일 사의를 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적 실망을 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배신감마저 들었다. AI는 특정 기업의 승자 독식 정도가 아니라 국가 존망을 가를 핵심 경쟁력이고, 한국은 지금 그걸 미·중에 버금가게 키우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AI 정책을 직접 이끈 상징 인물이 국가의 성장 전략이 아닌 특정 정당의 선거 전략에 발맞춰 공직을 버리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어느 여권 인사가 했다는 말마따나 "생뚱맞다"는 말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AI 현장 일각에선 그가 주창하던 소버린 AI가 성과 없이 끝날 거 같아 미리 도망가는 거라는 냉소마저 나온다. 증시에서 특정 기업 주요 임원이 주식을 내다 팔면 앞으로 주가가 내려갈 일밖에 없다는 악재로 비치는 것과 같다. 적잖은 국민이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구호를 이제 곧 폐기될 정치적 소모품으로 여길까 우려스럽다.

이쯤에서 자연스레 대만 오드리 탕을 소환하게 된다. 지난 2016년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 정부는 해커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떨친 당시 35세 천재 개발자 탕을 정무위원(장관급)에 발탁했다. 탕은 2022년엔 신설 디지털발전부(MoDA) 장관을 맡아 2024년까지 굵직한 성과를 냈다. 가령 정부 공공 데이터 공개로 민간이 쉽게 활용할 수 있게 API(연동체계)나 플랫폼을 정비한다거나, 디지털 도구로 부처 간 정보를 공유하는 정책 소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코로나 땐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 노출하는 오픈 데이터 팬데믹 대응으로 주목받았다. 투명성에 기반한 디지털 혁신은 회의록 등 본인의 모든 공직 행적을 공개해버릴 정도로 급진적이었다. 같은 날 언론에 하 수석 본인을 포함한 대통령 참모들이 그의 출마와 관련한 상반된 말로 혼선을 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대만과 한국이 똑같이 기술 엘리트 공직자를 발탁했는데, 대만은 기술로 정부를 업그레이드한 반면 한국은 기술을 정치의 도구로 값싸게 팔아넘겼다. 탕은 입각 당시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와 함께 일한다"는 원칙을 내걸었다는데, 누가 하 수석 후임으로 오든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고 특정 정당과 함께할 거라면 AI 수석 자리는 다시 없애는 게 낫겠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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