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성과급’…축복이냐 재앙이냐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6. 4.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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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논쟁이 대한민국을 집어삼켰다. 한국 기업사를 새로 쓴 천문학적 이익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직원들은 ‘돈벼락’을 맞게 됐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잠정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3조6000억원을 1개 분기 만에 넘어섰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으로 분기 기록을 새로 썼다. 올해와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비현실적’이란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약 300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년 360조원대를 올릴 것으로 바라본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90조원대, 내년 235조원 수준이다. 두 회사를 합치면 올해 약 490조원·내년 590조원에 달한다.

성과급 규모는 일상적인 감각을 벗어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상한도 없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한다. 단순 계산 시, 두 회사 임직원 성과급 재원은 삼성전자 45조원, SK하이닉스 19조원대로 올해만 64조원이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기아 합산 영업이익 3배를 웃돌고 LG전자 영업이익 26배에 달한다. 내년은 삼성전자 54조원·SK하이닉스 23조7000억원으로 77조7000억원까지 불어난다. 각 사 임직원 수(삼성전자 12만5000명·SK하이닉스 3만4500명)로 단순 추산하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삼성전자 직원 1인당 약 7억9200만원, SK하이닉스 직원은 약 12억5100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쟁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제조업 모든 업종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한국 제조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초과이익이 노동 보상으로 얼마나 배분돼야 하는지, 그 재원을 영업이익에 연동하는 게 타당한지 논쟁이 들끓는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성과급 갈등 전선을 정규직 노사를 넘어 하청·협력 업체까지 확산시켰다. 고정비 부담과 경기 진폭이 큰 제조업에서는 보상 제도가 사실상 자본 배분 전략 일환이라는 점에서 초유의 성과급 갈등 이면을 우려하는 시선이 팽배하다.

지난 4월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위)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래) (연합뉴스)
성과급 논쟁 업종 불문 확산

비교 심리 자극·공정성 논쟁 비화

반도체에서 분출된 성과급 논쟁은 한국 제조업 전체로 확산했다. 개별 기업 성과급 갈등을 넘어 한국 산업계 분배 질서를 가늠할 시험대가 됐다는 진단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노조 5월 총파업을 앞두고 수사 의뢰, 형사 고소, 가처분 신청 등으로 법적 대응 수위를 높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16일 수원지법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반도체 생산시설(팹·Fab) 점거 시 생산 차질을 넘어 화학물질 유출·화재 등 대형 안전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내 시스템을 통해 임직원 개인정보를 대량 조회·유출한 직원을 고소하고 노조 미가입자 명단 유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해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노조는 적법 절차를 거친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입장이다.

노사 갈등 핵심은 성과급 체계다. 사측은 OPI(초과이익성과급) 재원을 EVA(경제적부가가치) 20% 또는 영업이익 10% 가운데 선택하는 방안과 임금 6.2% 인상, 자사주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고수해 협상이 결렬됐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로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되 기존 ‘기본급 1000%’였던 상한을 없앴다.

성과급 논쟁은 제조업 전체로 들불처럼 번졌다. 자동차 업종에서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신호탄을 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에 전년도 순이익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현대차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 10조3648억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 규모는 3조원을 웃돈다. 노조는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인공지능(AI) 관련 고용·노동조건 보장 ▲완전 월급제 시행 ▲상여금 800% 인상 ▲노동시간 단축 ▲정년 연장 ▲신규 인원 충원 등도 요구하기로 했다. 성과급 적용 대상을 정규직 조합원에 그치지 않고 협력 업체 직원까지 넓히겠다고도 명시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기간 산업에서는 원청을 대상으로 하청 교섭 요구가 잇따른다. 원청 책임 확대와 직고용 문제까지 얽히고설켜 기간 산업 성과급 논쟁이 임금 협상을 넘어 원·하청 구조를 흔드는 장기전으로 비화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조선업에선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가 원청과 동일한 성과급과 격려금 지급을 요구한다. 한화오션 하청지회도 원청 교섭을 촉구하는 등 이익 공유와 처우 격차 해소 요구가 드세다. 철강 업종에선 포스코의 협력사 직원 직고용, 현대제철의 자회사 방식 직고용을 둘러싼 안팎 갈등이 이어진다.

성과급 논쟁이 거센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 특유의 강한 비교 문화와 기업별 노사 구조를 배경으로 꼽는 시각이 많다. 한국 대기업은 같은 업종 내 경쟁사 비교가 매우 강해 보상 체계가 공개되면 상대 비교로 이어지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의 보상체계 개편 이후 삼성 내부에서 경쟁사와 보상 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지며 노조 가입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한국처럼 기업별 노조가 강하고 소수 초대형 기업이 산업 이익을 집중적으로 흡수하는 구조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집단 교섭과 파업 압력을 높이는 동력이 된다는 지적이다.

행동경제학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특정 기업(SK하이닉스)이 상한 없는 성과급이나 영업이익 연동 방식을 도입하자 다른 기업(삼성전자 등) 직원들에게는 기존 보상안이 경쟁사 대비 ‘덜 받는 손해’처럼 인식됐고 이는 공정성 논쟁으로 번졌다. 다른 기업 직원들의 기대 수준(Reference Level)이 덩달아 올라가 기존 보상안은 상대적으로 손해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결국 소수 초호황 기업의 천문학적 성과급이 공정성 논쟁과 사회적 비교 심리를 자극해 노동 시장 전체 기대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각계에서 여러 우려가 분출된다. 반도체 초호황에 올라탄 성과급 파장이 세금·재정까지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이 올해 약 500조원, 내년 600조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10~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막대한 법인세는 물론, 성과급에 붙는 근로소득세까지 한꺼번에 불어난다. 일시적 호황기에 늘어난 초과 세수를 상시 지출 재원처럼 쓰기 시작하면 업황이 꺾이는 순간 그 부담은 재정 전반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과급만으로 다른 업종 근로자의 수년, 길게는 10~20년치 연봉에 맞먹는 격차가 벌어질 경우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박탈감의 부정적 외부효과도 상당할 전망이다.

익명을 원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성과급은 기업별 업황, 이익 구조, 자본집약도, 투자 사이클을 반영하는 매우 특수한 보상이다. 초호황 기업의 사례가 반복 노출되면, 예외적 성과급이 전체 노동 시장의 정상 보상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확산하면서 노동 시장 전체 기대 수준이 왜곡될 수 있다. 비교 기준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대다수 기업 종사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노사 갈등이 함께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과급 갈등 점입가경

주주 가치·혁신 역량 훼손 우려

성과급은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더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이는 유인 장치로 평가된다. 반도체처럼 소수 핵심 인력의 문제 해결 능력이 생산성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산업에서는 파격적인 성과 보상이 노동생산성과 인재 선별 효과를 높인다는 실증연구가 많다. 그럼에도, 국내 산업계를 집어삼킨 ‘무한 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상당수다. 영업이익에 연동된 보상이 호황기 땐 동기부여와 인재 유치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설비투자 사이클이 길고 선제 투자 부담이 큰 산업에서 영업이익을 성과급 재원으로 삼을 경우, 투자 여력은 물론 주주 가치·장기 혁신 역량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쟁점(1) 성과급 재원이 영업이익?

회계이익≠분배 가능한 돈

성과급 논쟁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재원 기준’이다. 최근 주요 기업 노조는 영업이익을 기준점으로 제시한다.

SK하이닉스가 시발점이다. SK하이닉스는 2021년부터 전년 영업이익의 10%를 재원 삼아 개인별 성과를 연계해 초과이익성과급(PS)을 지급했다.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도 각각 영업이익의 15%, 20%를 재원으로 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한다. 영업이익이 자주 언급되는 건 가장 직관적인 지표여서다.

다만 짚어볼 지점은 있다. 영업이익은 말 그대로 ‘영업 단계에서의 이익’이다.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비용이 적지 않다. 이자비용, 법인세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서 영업이익은 분배가 가능한 최종 재원이 아니라, 이후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나눠 줘야 할 몫이 남아 있는 ‘중간 단계’에 가깝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영업이익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건 부담이 크다. 가령, 반도체·자동차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설비투자 규모가 크고 이를 위한 차입 부담도 뒤따른다. 문제는 투자 이후다. 생산설비가 본격 가동되기 전까지는 현금 유입이 제한적인 반면, 이자 비용은 꾸준히 발생한다. 여기에 감가상각비까지 반영되면서 회계상 이익과 실제 현금흐름 간 괴리가 커진다. 결국 재무제표상 영업이익과 기업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 사이 상당한 간극이 생긴다.

글로벌 기업은 이를 고려해 다른 재원을 기준 삼는다. 대표 사례가 대만 TSMC다. TSMC는 대만 회사법과 정관에 따라 ‘법인세 차감 전 이익(세전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 규모를 산정한다.지난해 TSMC 정관(Articles of Incorporation)을 보면, 회사는 세전이익이 발생할 경우 일정 비율을 직원 보너스로 배정하도록 규정한다. 직원 보너스는 최소 1% 이상, 이사 보수는 0.3% 이하로 정했다. 세전이익은 영업이익에 이자 비용과 환차손익 등 재무 활동까지 반영한 지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금융 비용까지 고려하겠다는 취지다.

서울 주요 대학 경영학과 A교수는 “영업이익은 기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지만, 이를 그대로 분배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투자 부담과 재무 구조를 반영하지 않으면 단기 성과에 치우친 보상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성과와 분배 가능 재원 사이 간극을 줄이려면 세전이익이나 현금흐름 등 여러 지표를 함께 고려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노사 간 수용 가능한 적정선을 찾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쟁점(2) 주주 가치와 충돌

주주는 무배당 vs 직원은 ‘무한 성과급’

성과급 논쟁은 ‘누가 얼마를 가져가느냐’의 문제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주주 반발이 커진다. 주주는 기업 이익의 마지막 몫을 가져가는 잔여청구권자다. 비용을 다 쓰고 빚을 갚고 세금을 낸 뒤 남은 돈이 주주 몫이다. 다시 말해 영업이익 단계에서 성과급이 먼저 확정되면 주주 몫은 그만큼 줄어든다.

주요 기업은 주주 대상 배당 재원을 잉여현금흐름(FCF)으로 잡고 있다. FCF는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나 각종 비용 등을 제외하고 남은 여유 현금이다. 삼성전자는 잉여현금흐름 50%를 총 배당 가능 재원으로 쓴다. SK하이닉스도 FCF를 배당 기준점으로 잡는다. 제조업이나 바이오 위탁생산(CMO) 등 설비 투자 부담이 큰 산업일수록 잉여현금이 많이 남기 힘들다. 공장뿐 아니라 각종 설비나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돈이 빠져나가서다. 겉으로는 이익이 커 보여도 실제 쓸 수 있는 현금은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급까지 빠져나가면 주주환원에 쓸 여력은 더 줄어든다.

주주와 직원 간 갈등은 이미 현실화했다. 대표 사례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회사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3년간 무배당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주주들은 중장기 성장을 위해 현재 배당을 포기하는 선택을 받아들였다. 노조는 정반대 행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조는 사측에 ▲영업이익 20% 성과급 지급 ▲기본급 14% 인상 ▲인당 격려금 3000만원 등을 요구 중이다. 주주 입장에선 “주주는 무배당으로 버티는데 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려 한다”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이런 행태가 주주자본주의와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성과급을 이익의 일정 비율로 요구하거나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하는 방식은 선진 자본 시장 관행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주주 권리를 제약할 수 있는 요구는 주주권 강화 흐름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소유권은 자본을 투입하고 손실을 감수하는 주주에게 있으며 주가 하락 시 손실을 감내하는 주주가 사실상 회사의 주인”이라며 “성과급 규모 역시 본질적으로는 경영진이 판단해야 할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업이 창출한 이익은 배당과 재투자, 보상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주주환원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며 “성과급이 이를 앞서는 구조는 자본 시장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쟁점(3) 이익 공유 경계선은

“하청도 원청과 동일 성과급” 주장

누가 받을 것인가도 쟁점이다. 통상 성과급은 해당 기업 임직원이 대상이다. 최근 이 경계가 흔들린다.

변화의 출발점은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은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원청 기업에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법적 사용자 범위가 넓어졌다. 그 결과 임금·성과급 협상이 개별 사업장을 넘어 원·하청을 포함한 구조적 문제로 확장됐다. 하청 노동자 비중이 큰 조선업계에서는 사내하청과 협력 업체 노조가 원청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성과급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제조업 하청 노동자는 총 31만7000명이다. 이 가운데 조선업이 63%에 달한다.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는 성과급 동일 지급과 기본급 14만9000원 인상 등을 담은 원청 교섭 요구안을 확정했다. 원청 노조와 교섭 타결 시 지급되는 격려금도 동일 지급을 명시했다.

‘이중 보상’ 이슈도 있다. 원청이 하청 업체에 지급하는 납품 단가에는 이미 인건비와 이윤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내부 재원을 기반으로 하청 노동자 대상 성과급까지 지급하자는 주장은 원청 주주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준이 한 번 넓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성과급은 일종의 기대치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원청과 동일 수준 보상이 관행처럼 자리 잡을 경우, 업황이 꺾였을 때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더 큰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설비 투자부터 수주 리스크와 원가 관리 등은 모두 원청이 부담하는데, 하청 노동자가 동일 기준의 성과 배분을 요구하는 것은 위험과 보상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 기업은 어떻게 하나

직무·책임·성과로 보상 차등화

해외 선도기업도 성과를 구성원과 공유한다. 다만, 배분 방식과 속도, 의사결정 구조는 한국과 확연히 구분된다는 진단이다. 해외 주요 기업은 보상을 장기 성장과 주주 가치, 직무별 기여에 연동해 섬세하게 설계하는 방식이다.

가장 큰 차이는 보상 기준과 재원이다. 엔비디아의 경우, 임원 보수는 1년 매출과 1년 영업이익, 3년 총주주수익률(TSR) 등으로 나눠 평가한다. 일반 직원에게도 주가와 연동돼 일정 기간이 지나야 권리가 확정되는 주식 보상을 폭넓게 부여한다. 현금으로 모두 소진하는 구조가 아니라, 장기 성장과 직원 보상을 묶는 방식이다.

마이크론도 다르지 않다. 현금 성과급은 수익성뿐 아니라 기술, 제품, 고객, 매출 구성, 지속가능성과 인적자본 같은 전략 지표를 함께 반영한다. 장기 보상은 차세대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제품, 총주주수익률 등에 연동해 설계한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한국에서는 이익의 현금 배분이 이슈라면,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은 이사회가 설계한 장기 주식보상과 복수 성과 지표로 보상을 분산시킨다”고 평가했다.

성과급 결정 구조 역시 다르다. 해외에서는 적어도 임원 보수는 이사회와 주주 견제를 받도록 설계돼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이사회·주주 승인 체계는 엄밀히 말해 임원 보수에 관한 것”이라며 “일반 직원 성과급까지 주주총회가 직접 통제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경영진 보수가 주주 통제를 받는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고 진단했다.

임직원 성과급을 노사 협상으로 정하는 한국 방식은 투자 여력이나 사업 특성이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힘들고 교섭력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노사 협상 중심 구조는 직원 체감 공정성과 단기 사기 진작에는 유리하지만, 주주 가치와 자본 배분 관점이 반영되기 힘들고 장기 인센티브 설계가 빈약해지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과급 적용 범위도 차이가 있다. 해외 주요 기업은 직무, 책임,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경우가 많다. 핵심 기술 인력과 경영진, 특정 사업부에는 장기 성과 지표와 주식보상 비중을 높이고 일반 조직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보상 구조를 적용한다. 한국처럼 전 직원을 포괄하는 집단적 성과급 요구가 산업 전반으로 번진 모습과는 구분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단기·현금·평등 중심이고, 글로벌은 장기·주식·차등 중심”이라며 “성과급 인플레이션 위험은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원가 상승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과급 논쟁, 한국형 대안은

단기 현금 보상↓장기 인센티브↑

단기 성과에 연동된 성과급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연구·개발비나 장기 프로젝트, 설비투자는 눈앞 이익을 낮추는 비용으로 보이기 쉽다.

다수 전문가들은 단기 실적 기반 현금 배분을 지양하고 장기 성과와 혁신, 실패 허용을 함께 반영하는 구조로 성과급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과급에 3년 이상 장기 지표와 혁신 목표를 함께 반영하면 당장 실적이 흔들려도 유망한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유인이 생긴다. 미래지향적 성과급 체계는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시도를 가려내 보상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뜻이다. 김석집 대표는 “장기 인센티브를 잘 설계하면 혁신 성과의 양과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성과급 ‘3층 구조’가 지목된다. 첫째는 전 직원이 함께 나누는 얇은 이익공유제다. 기준은 영업이익이 아니라, 최소 투자 재원을 확보한 뒤 조정이익이나 잉여현금흐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처럼 보다 보수적인 지표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둘째는 직무와 사업부별로 차등화한 단기 현금 인센티브다. 수익성만 볼 게 아니라 고객, 제품 경쟁력, 매출 구성, 지속가능성, 인적자본 등 전략 지표를 함께 넣어야 한다는 당부다.

셋째는 핵심 인재와 임원을 대상으로 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과 장기성과 인센티브(LTI)다. 주가와 장기 성과, 일정 기간 재직 조건을 결합해 보상의 상당 부분을 미래에 걸쳐 확정하는 방식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직원 대상 이익 공유는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되, 생산 현장에는 생산성 중심 보상을 적용하고 핵심 인재와 경영진에게는 RSU나 장기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향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교수 역시 “단기 성과급은 일부만 현금으로 주되, 장기 보상은 주식과 이익 공유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큰 틀에서 보상 철학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의 전략 우선순위를 어떻게 반영할지, 지속가능한 성과를 어떻게 도출할지, 보상 구조를 어떻게 쉽고 투명하게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HP·홈플러스에서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지낸 최영미 이화여대 특임교수의 조언이다.

[배준희·최창원·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7호(2026.04.29~05.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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