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살려고, 아리셀과 합의했다... 그런데 항소심 판결에 죄책감"

박소희 2026. 4. 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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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상황실] 23명 사망에도 징역 15년→4년... "유족 짓밟은 판결... 판사님, 겪어보면 아실 것"

[박소희 기자]

지난 22일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 부장판사)는 '아리셀 참사'의 총책임자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두 가지를 핵심 사유로 내세웠다. 첫째, 사업주의 비상구 설치 의무와 비상통로 유지 의무는 없다. 둘째, 피해자 유족 전원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최현주씨는 28일 오마이TV '이병한의 상황실' 인터뷰에서 눈물을 참아가며 말했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 그동안 2심으로 올라갈수록 형량이 줄어드는 게 관례처럼 있지 않았나. 그런데 이 정도로 파격적으로 될 줄은 몰랐고, 그날 선고를 들었을 때 기분은, (우리가) 짓밟혔다는 느낌? '2년 가까이 유가족들도 정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투쟁했는데 우리 얘기를 안 들었구나, 짓밟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다른 유족들은 실신 정도의 오열을 했는데 저는 눈물도 안 나오고, 망연자실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아무 생각 안 나고, 남편 얼굴만 떠오르고, '(나라가) 우리를 버렸구나' 이런 생각이 심지어 들었고. 나도 이 나라를 버리고 싶다, 진짜. 내가 계속 여기서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마저 들었고... 저희 아이도 이민 가자고 하더라. 즉흥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그정도로... 법이 이런 거였구나. 약자들, 피해자들이 그동안 수백 번, 수천 번 얘기했는데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구나."

최씨는 <충북인뉴스> 기자로 2023년 7월 14명이 사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1년 간 취재했다. 하지만 자신이 '유족'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 못했다. 최씨는 "피해자들 인터뷰했을 때 (나의) 자세를 돌아봤다"며 "지금 심경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이 얼마나 멍청했나, 한심한 질문이었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이어 "제3자가 보는 것과 당사자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신현일 판사님, 겪어보면 아실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리셀 참사 유족 최현주씨
ⓒ 오마이TV 이병한의 상황실
'평소 이윤을 극대화하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의 합의를 시도하는 악순환을 뿌리뽑아야 한다'며 회사와 유족 간 합의를 제한적으로 참고했던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합의를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 신하나 변호사는 "2심 재판부 논리는 굉장히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피해자가 누군가. 돌아가신 분들은 돌아올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피고인들을 용서해줄 수 없다. 다만 남은 가족들의 상처인데, 가족들이 지금 '합의금 더 받게 해주세요' 그런 주장을 했나. 그런 주장을 한 사실도 없고, 유족들이 합의금을 더 많이 받는 것만이 피해회복이라고 보는 사고 자체가 굉장히 오만하다. 합의를 하면 형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피해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처벌을) 가중하는 게 맞다. 피해자 용서 받아야죠. 그런데 그것으로 죄를 사면해준다면, 안건보건조치 시스템 만드는 돈 아끼고 사고 나면 합의하고 처벌은 적게 받는 시스템으로 가겠지, 누가 막대한 예산 들여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겠나."

최현주씨는 무엇보다 재판부가 '합의의 진짜 이유'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봤다. 부상자 9명과 사망자 23명 모두 합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저마다 시기도 달랐고, 최씨는 심지어 2심 선고 10일 전에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에만 합의했다. 그마저도 "내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고, 아이들도 같이 무너지는 게 1년 반 이상 지났기 때문에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지난해 국민의힘 우재준 의원의 '아리셀 대표의 징역 15년형은 패가망신' 발언을 두고 "정말 우리들이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는 패가망신 정도가 아니라 (삶이) 풍비박산났다"고 했다. 그는 "합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합의한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간단하다.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판결이 났다니까 또다시… 나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게 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신현일 판사님은 저희들을 또 죄인으로 만든 거다. 제발 좀 알려주고 싶다.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을 알려주고 싶고, 본인이 어떤 판결을 한 것인지 한번 다시 돌아봤으면 좋겠다."
 아리셀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률대리인 신하나 변호사
ⓒ 오마이TV 이병한의 상황실
신하나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 진행도 문제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판부가 방청하는 유족들이) 고통스러워하거나 소리내서 울면 '유족이 아니면 감치하겠다'고, 선고날까지도 말하더라. 피해자 대리인의 의견서 제출에 대해서도 '양형 이외에는 제출하지 마라, 제출해도 읽지 않겠다'고 했다"며 "재판과 관련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서류 제출한다. 그런데 피해자 대리인의 의견서를 읽지 않는 것은 상당히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법 왜곡죄' 고소도 검토 중이다. 신 변호사는 "하도 판결이 어이없다보니까 (기자들이) '법 왜곡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주셨다"며 "피해자 대리인 진술권, 제출권 이런 것들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았나. 적용되어야 할 법령이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고, 양형조사도 유족과의 통화내용이 왜곡이 많이 됐다. 법왜곡죄 주장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판소원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_Jzmtx5S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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