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부산행'이 던진 질문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이고, 그 설계의 이름이 바로 ‘이재명믹스’다. 이는 실용외교와 경제정책을 결속해 한국의 성장 엔진과 국가경쟁력을 다시 세우려는 실용국가 전략이다. 외교와 경제를 따로 보지 않는다. 대외 불확실성을 국익의 기회로 바꾸고 산업전환의 동력을 민생의 성장으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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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 회의에 참석해 있다. 2026.4.9 |
| ⓒ 연합뉴스 |
이 장면을 정책의 언어로 번역해야 할 축에는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있었다. 그는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 출신으로,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의 초대 AI미래기획수석에 임명됐다. 네이버AI랩 연구소장으로 선행 AI 기술 연구를 총괄했고, 소버린 AI와 한국형 AI 역량 확보를 강조해 온 민간 전문가라는 점에서 인선 자체가 메시지였다. 새 정부가 AI를 부수 업무가 아니라 국정의 중심축으로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런 그가 2026년 4월 27일 사의를 표명하고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수순에 들어갔다. 표면만 보면 컨트롤타워의 이동이다. 그러나 조금 더 크게 보면 행정부 안에서 설계된 AI 전략이 입법부와 지역 현장으로 확장되는 첫 시험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위기라기보다 전환이다. 다만 전환이 기회가 되려면 설계가 있어야 한다.
[관련기사] AI 수석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에게 플랜B는 있는가 https://omn.kr/2hvet
하정우의 이동, 공백이 아니라 확장의 과제
하 수석의 부산행을 두고 우려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4월 9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하 수석 차출론을 두고 "할 일도 많은데, 작업 들어온다고 넘어가고 그러면 안 된다"라는 취지로 공개 언급했다. 대통령이 직접 AI 현안의 연속성을 강조한 셈이다. 이후 불과 3주가 지나 사의 표명 보도가 나오면서, 'AI 골든타임'과 '선거의 시간'이 충돌하는 듯한 인상이 생겼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은 때로 정책의 경로를 바꾼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단순한 선거용 차출에 그치느냐 아니면 국가 AI 전략을 국회·지역·산업 현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재배치가 되느냐다. 더불어민주당이 하 수석을 설득한 논리도 "AI 3대 강국 설계를 국회에서 입법으로 완성해 달라"는 방향으로 보도됐다. 행정부의 청사진은 법률, 예산, 규제 혁신, 지역 실행 계획과 만날 때 지속성을 얻는다.
따라서 이번 사안의 핵심은 "왜 나가느냐"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이어가느냐"다. 하 수석이 국회로 간다 해도 청와대의 AI 전략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동시에 국회에 들어간 AI 전문가는 기술을 아는 입법가, 산업을 아는 조정자, 지역 전환을 이끄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미 제도적 토대는 움직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볼 대목은 분명하다. 한국은 이미 AI 정책을 선언의 단계에서 실행 계획의 단계로 옮기고 있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인공지능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국민 권익 보호, 삶의 질 향상, 국가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지향한다. '산업진흥'과 '신뢰·안전'을 한 법체계 안에 놓은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도 2025년 9월 8일 공식 출범했다. 위원회는 AI 관련 국가비전과 중장기 전략, 부처 간 정책 조정, 이행점검, 성과관리 기능을 맡는 최상위 AI 전략 논의기구로 설명됐다. 2026년 2월에는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이 확정·공개됐고, 2026~2028년 기본계획의 성격을 갖는 이 계획은 99개 실행 과제와 326개 정책 권고로 구성됐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하정우 한 사람의 이동으로 AI 전략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인사 의존형 프로젝트다.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법, 위원회, 행동 계획, 부처별 실행 체계가 작동한다면 한 사람의 이동은 위기가 아니라 역할 분화가 된다. 청와대는 방향을 잡고, 정부 부처는 실행하며, 국회는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하고, 지역은 현장 모델을 만든다. 이것이 이재명믹스 AI 2.0의 성숙한 형태다.
일본의 교훈: 사람보다 강한 구조
일본의 사례는 비교 지점이 된다. 일본은 AI 관련 법제와 기본 계획을 바탕으로 총리가 이끄는 AI 전략본부를 중심에 둔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일본 정부 자료와 법률 분석에 따르면 AI 전략본부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고 각료들이 참여하는 구조다. AI 기본 계획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관계 부처가 함께 조율하는 방식이다.
일본 방식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AI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일수록 정책은 한 사람의 역량보다 구조의 복원력에 기대야 한다. 컨트롤타워는 필요하지만 컨트롤타워 하나에 모든 것이 묶여서는 안 된다. 핵심은 중앙의 집중력과 제도의 분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이다.
한국도 이미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AI미래기획수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각 부처 AI 책임관, 산업계와 연구계가 하나의 실행망으로 연결되면 누가 어느 자리로 이동하더라도 정책은 이어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연결망을 국민이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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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4.17 |
| ⓒ 연합뉴스 |
물론 선거 판세만 보고 정책적 의미를 단정할 일은 아니다. <뉴스토마토> 의뢰로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24, 25일 이틀간 만 18세 이상 부산 북구갑 거주 성인 남녀 8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안심번호)를 활용한 무선 ARS(자동응답, 100%)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하정우 수석은 35.5%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28.5%,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26.0%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표본오차가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인 만큼 '대세'라고 쓰기보다는
'오차범위 내 접전 속 우위'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적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이 곧 정책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가능성을 성과로 바꾸려면 부산형 AI 전환 모델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항만 물류의 예측 최적화, 제조 현장의 안전관리, 지역 의료·돌봄 서비스, 행정 민원 자동화, 대학과 청년 인재 양성까지 AI가 지역의 실생활 문제를 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정우의 부산행이 의미를 얻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중앙의 AI 전략을 지역의 체감 성과로 번역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재명믹스 AI 2.0의 조건
이재명믹스 AI 2.0은 단순히 "AI에 돈을 많이 쓰겠다"는 구호가 아니다. 성장과 안전, 속도와 신뢰, 중앙 전략과 지역 실행을 함께 묶는 통합 정책이어야 한다. 정부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등 신산업 분야에 민간투자를 도입하고, 향후 5년간 100조 원 수준의 민간투자 사업을 발굴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 표현은 '100조 원 재정 투입'이 아니라 '민간투자 사업 발굴·유도'로 정확히 써야 한다.
AI 강국의 조건은 기술력만이 아니다. 제도적 연속성, 사회적 신뢰, 안전한 활용, 지역 확산이 함께 있어야 한다. 안전혁명의 관점에서 AI는 위험을 키우는 기술이 아니라 위험을 예측하고 줄이는 국가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재난 대응, 공공서비스, 산업 안전, 의료·돌봄, 교육 격차 해소까지 AI가 들어갈 자리는 넓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를 제도가 감당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후임 AI미래기획수석 인선은 신속해야 하되 단순한 자리 메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새 수석은 AI 인프라, 파운데이션 모델, 데이터 거버넌스, AI 안전, 산업 AX, 지역 AX를 통합 조정할 권한과 팀을 가져야 한다. 둘째, 청와대·국회·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c 사이의 상설 협의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 AI 기본법 시행 이후 필요한 후속 법안과 예산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야 한다. 셋째, 지역 AI 전환을 국가 전략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 과제로 세워야 한다. 지역이 실험하고, 중앙이 지원하며, 국회가 법과 예산으로 확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시스템이 버티는 AI 주권
하정우의 부산행은 이 질문을 앞당겼다. 한 사람의 이동을 두고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그 이동을 계기로 더 넓은 제도망을 만들 것인가. 답은 청와대와 국회, 정부와 지역이 함께 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이탈이 아니라 확장의 문제다. 청와대에서 설계된 AI 전략이 국회의 법으로, 지역의 프로젝트로, 산업의 투자로, 시민의 안전으로 이어진다면 이재명믹스 AI 2.0은 더 단단해진다. AI 주권은 한 명의 전문가가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가 움직여도 제도가 버티고, 제도가 버티는 동안 더 많은 전문가가 현장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AI 주권은 살아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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