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우는 거 아냐"… '왕사남' 보고 오열한 아이의 반전 대답
[김동근 기자]
극장에서 아이가 울었다. 영화의 후반부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였다. 나는 슬퍼서 우는 줄 알았다. 주인공이 힘든 일을 겪어서, 누군가를 잃을까 봐 마음이 아파서 우는 줄 알았다. 거긴 슬픔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극장에서 왜 울었는지. 아이는 짧게 답했다.
"무서웠어."
그 짧은 한마디가 꽤나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본 여러 순간들 중에서도, 유난히 오래 기억될 것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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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 |
| ⓒ ㈜쇼박스 |
극장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아이는 시작부터 유난히 집중했다. 늘 그렇듯 초반에는 팝콘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의자를 만지작거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또렷했고, 작은 몸은 등받이에 붙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 왜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서로 싸우는지를 계속 속삭이며 묻는다. 아주 단순하게 배경을 설명하지만, 아이가 그걸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영화보다 아이의 반응이 더 신경쓰였다. 스크린의 빛이 아이 얼굴 위로 지나갈 때, 웃는 장면에서는 입꼬리가 따라 올라가고, 긴장되는 순간에는 어깨가 움츠러든다. 아이는 말없이 감정을 드러낸다. 어른들이 잊어버린 방식으로.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는 조금 어두워졌다. 갈등이 깊어지고, 위협이 가까워지고, 등장인물들의 표정에도 불안이 번졌다. 나는 그 정도의 긴장을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야기에는 위기가 필요하고, 위기가 지나야 결말이 온다는 걸 안다. 수많은 영화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달랐다. 어느 순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 눈가가 젖어 있었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슬퍼서 우는 줄 알았다. 아니 그 장면은 당연히 슬픈 장면이었으니까, 슬픔의 눈물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살다 보면 그런 장면들이 있다. 아이의 눈물을 보며 어른인 내가 먼저 이유를 정해버리는 순간들. 분명 속상해서 울 거라고, 분명 마음이 아파서 우는 거라고, 내가 아는 방식으로 쉽게 설명해버리는 일들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슬프다는 말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나를 당황시켰다. 무섭다는 말이 이상하게 콕 가슴에 박혔다. 슬프다는 말보다 더 직접적이고, 기쁘다는 말보다 더 깊숙하다. 무섭다는 건 아직 견딜 힘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고, 세상이 생각보다 크고 낯설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11살이 된 아이는, 비슷한 나이에 유배를 가서 10대 시절을 보낸 단종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냥 그 상황이 무서웠던 걸까. 강제로 죽어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사람들의 눈물, 그런 슬픈 것들이 무서움을 준 것일까.
아이에겐 영화의 이야기보다는 감정이 먼저 박힌다.
서사의 구조나 연출의 의도보다 먼저, 화면에서 다가오는 공기와 표정과 소리에 반응한다. 악당이 등장하면 정말 위험이 찾아온 것 같고, 누군가 위협받으면 자기 일처럼 떤다. 아이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아직 단단히 세우지 않은 채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더 몰입하고, 더 웃고, 더 무서워한다.
나는 언제부터 무서움을 그렇게 쉽게 넘기게 되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얻는 대신, 있는 그대로 떨리는 감각을 조금씩 잃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 옆에서 영화를 보면 그 사실을 자주 깨닫는다. 나는 내용을 따라가지만, 아이는 감정을 따라간다. 나는 다음 장면을 예상하지만, 아이는 지금 장면을 온몸으로 지나간다. 나는 안전한 객석에 앉아 있고, 아이는 여전히 이야기 속 숲 한가운데 서 있다.
그래서 아이가 무섭다고 말했을 때,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갈등에도, 폭력에도, 불안에도, 심지어 타인의 눈물에도. 세상이 원래 이런 거라고, 영화는 원래 이런 거라고, 역사적으로 지나간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넘겨버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아니었다. 무서운 건 무섭다고 말했고, 슬픈 건 슬프다며 울 수 있었다. 그 솔직한 감정 앞에서 나는 오히려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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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보이후드> 스틸 이미지. |
| ⓒ 유니버설 픽쳐스 |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본다는 건 그런 시간이다. 한 편의 영화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나이의 두 사람이 같은 화면을 본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아이는 무섭다고 말하고, 나는 왜 무섭지 않게 되었는지 생각한다. 아이는 눈물을 닦고, 나는 내 무뎌진 마음을 들여다본다.
집에 도착한 뒤 아이는 금세 다른 이야기를 했다. 배가 고프다고 했고, 내일 학교에서 뭘 할지 떠들었고, 잠들기 전엔 영화 속 귀여운 장면만 다시 이야기했다. 무서움은 아이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남았다. 무섭다고 말하던 그 얼굴이, 젖은 눈가가, 그리고 아직 세상을 전부 알지 못해서 더 진하게 느끼는 마음이 오래 남았다. 역사적인 일이었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 마음을 멈췄다. 아이가 그 역사적인 잔인함을 받아들일 때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냥 아이가 무서워하는대로, 그대로 놔두는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앞으로 더 많은 영화를 볼 것이다. 더 크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지금은 무섭던 장면들을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게 될지도 모른다. 나처럼 말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이 곁에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 같은 화면을 보며 다른 감정을 느끼는 시간을 조금 더 누리려 한다. 아이가 무섭다고 말하면 손을 잡아주고, 슬프다고 울면 함께 가만히 있어주고, 재미있다고 웃으면 나도 따라 웃으려 한다.
언젠가 아이는 내 옆자리 대신 친구 옆자리를 고를 것이다. 혼자 영화를 보고 돌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도 올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아직, 영화가 끝난 뒤 내게 무섭다고 말해주는 나이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고맙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추억과 마음을 내게 남겼다. 아이는 이 순간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무서움'을 기억하며 영화와 극장에서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남겠지. 그리고 그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추억을 위해 주말 극장 시간표를 보며 아이와 다음 영화를 고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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