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인당 월15만원’ 농어촌 비명…“농협 배만 불린다” 왜

신진호 2026. 4.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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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충남 청양군 청양읍의 한 점포에 농어촌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청양사랑상품권 가맹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4일 낮 12시 충남 청양군의 한 면(面) 지역의 식당. 점심시간이 한창인 데도 식당 안엔 두 테이블에서만 손님이 식사 중이었다. 나머지 10여 개 테이블은 빈 상태였다. 오후 1시가 넘도록 추가로 들어온 손님은 없었다. 식당 주인 A씨(40대)는 “이번 달 들어서는 매일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고 하소연했다.


농민 많은 면(面) 지역 소상공인 매출 감소


청양 읍내에 살던 A씨는 지난 2월 말 정부가 청양을 비롯해 전국 10개 시·군 지역을 대상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차렸다. 애초 읍내에 식당을 준비하던 A씨는 ‘기왕이면 고향 마을에서 사업을 시작하자’는 생각에 아내를 설득해 지난 2월 초 식당을 개업했다. 쌈짓돈과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돈을 모두 투자했다. 하지만 개업한 지 채 두 달도 되기 전에 매출이 급감하면서 월세까지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A씨는 “임대보증금과 집기를 준비하는 데 9500만원이나 들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며 “농어촌 기본소득 혜택을 기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빚만 더 쌓이게 됐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의 한 농협 자재창고 앞에 비료가 쌓여 있다. 전통시장과 상인들은 농어촌 기본소득이 농협에만 도움이 된다며 사용한도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같은 날 오전 11시30분 청양 읍내의 한 식당. 점심시간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식당 내 30여 개 테이블은 이미 절반이 넘게 찼다. 11시50분이 되자 예약손님까지 들어오면서 식당은 만원이 됐다. 손님 대부분은 청양군이 매달 지급하는 농어촌기본소득으로 음식값을 결제했다. 지난 3월 7일 문을 연 이 식당 손님 대부분은 청양 읍내에 있는 공공기관 직원이나 인근 주민이었다. 식당 관계자는 “(농어촌기본소득인) 청양사랑상품권 사용자가 절반이 넘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점심시간마다 손님이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지역 "지역경제 선순환" 홍보


지난 2월 27일 충남 청양을 비롯해 전국 10개 군(郡)에서 농어촌기본소득 지급이 시작한 뒤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다” “자금 선순환에 견인 역할을 한다”며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에선 소지역간 불균형이 나타나면서 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규모 영업망을 갖춘 농협으로의 매출 쏠림 현상으로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말부터 충남 청양군이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전통시장과 자영업자들이 농협만 배불리는 제도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신진호 기자
지난 1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식당 업주 B씨는 “면(面) 지역은 노인들이 많고 대부분 농사를 짓는데 농어촌기본소득을 모두 농협에 갖다 주고 있다”며 “상한선 등 대책 마련이 없다면 동종업계 사람들과 함께 군청에 가서 항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양 읍내에서 만난 상인은 “농협 마트에는 없는 게 없다. 외상값까지 정부가 갚아주면 기본소득이라는 원래의 취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월 5만원' 농협 사용한도 15만원으로 상향


청양군을 비롯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한 기초자치단체는 매달 1인당 지급하는 15만원 가운데 농협 하나로마트와 주유소 사용 금액을 ‘월 5만원’으로 제한했다. 나머지 10만원은 농자재를 구입하거나 일반 점포에서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미용실과 빵집 등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과 상생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민 대부분이 농협에서 비료와 농자재를 구입하거나 밀린 외상값으로 농어촌 기본소득을 사용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농협에서의 사용금액 한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청양의 3개 지역농협(옛 단위농협)은 본점과 분점, 하나로마트를 종합한 매출이 연 30억원을 초과하자 행정안전부의 유권 해석을 받아 본점과 분점, 하나로마트 등의 매출을 각각 분리해 농어촌 기본소득 사용처로 허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들은 “농협이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청양군은 “쓸 곳이 없다는 주민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돈곤 충남 청양군수가 전통시장을 찾아 농어촌 기본소득 사용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청양군]

청양군에 따르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시행 45일 만인 지난 4월 13일까지 주민이 사용한 금액은 66억원을 돌파했다. 청양사랑상품권 가맹점이 늘어났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점포에 새로운 상점도 들어섰다. 청양 읍내에는 23곳, 면 지역에는 A씨가 운영하는 식당처럼 15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45일간 사용한 금액을 보면 일반 소매점이 25.1%로 가장 많고 음식점 20.8%, 슈퍼·마트 20.1%, 병원·약국 11.6% 등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조사는 농협 사용금액 확대가 이뤄지기 전 진행한 것으로 상인들은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청양 읍내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C씨는 “군수까지 나서서 기본소득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홍보했다”며 “지금 보니 결국은 농협만 배를 불리는 상황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청양군, "신규 점포 증가, 기본소득 효과 나타나"


이와 관련, 청양군 관계자는 “기본소득 사용률이 60%를 넘어서며 지역 내 자금 선순환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농협에서 사용 한도를 제한하자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양=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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