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마음으로, 봉준호 즐거워했던 그때처럼 할 것"

이선필 2026. 4. 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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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은영 신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동시대와 호흡하는 시네마테크 기획 필요"

[이선필 기자]

지난 3월 9일 모은영 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한국영상자료원(아래 영자원) 신임 원장으로 취임했다. 영화계에선 환영의 분위기였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소식을 공유하던 영화인들 상당수는 '금의환향'이라며 모 원장에게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유가 있었다. 과거 객원연구원으로 협력하다 2008년 영자원에 입사한 그는 프로그램팀에서 약 9년간 일하며 기관의 황금기를 연 주축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기 때문. 특히나 그가 주도한 고전 영화 <청춘의 십자로>(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무성영화-기자 주) 변사 공연을 비롯한 여러 복합 문화 공연은 기존 영자원의 역할을 확대, 나아가 영자원의 대표적인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1월경 영자원을 나온 뒤 그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했다. 공모를 통해 '친정' 영자원에, 그것도 원장으로 온 그의 복안은 무엇일까. 취임 후 약 한 달 보름이 지난 시점인 4월 20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영화에 매달린다는 오해
 한국영상자료원 모은영 신임 원장.
ⓒ 한국영상자료원
"한창 업무 적응 중"이라던 모 원장은 "공교롭게 10년 전에 입사했을 때도, 다시 돌아온 지금도 영자원이 변화하는 순간이었는데 그게 내 운명인가 보다"라고 운을 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그간 예술의전당 부속 건물에 있다가 2007년 5월 16일, 지금의 상암동 신사옥으로 독립 이전했다. 모 원장 퇴사 직전인 2016년 5월 19일엔 국내외 영상 관련 자료의 보존, 복원 역할을 강화한 파주보존센터가 설립됐다.

"그새 조직이 커졌더라. 60명 정도였던 직원이 100명을 넘겼으니. 영화를 발굴하고 보존, 복원하는 일들은 더 깊게 하고 있는데 영화산업은 물론이고 외적 환경 또한 크게 변했다.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땐 아카이브 기관으로 성장하던 초창기였고,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그 안정성을 좀 깨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그 변화가 어떤 것인지 물었다. "겉으로 보이는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내적 동기부여가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이 돌아왔다. 모 원장 취임 직후 영자원은 '트립 시네마'(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자극하는 20편의 영화 상영전) 기획전을 진행했고, 5월 2일부터 홍상수 감독 데뷔 30주년 관련 전작 상영 행사를 열 예정이다. 모 원장은 "사실 지금의 프로그램들은 이미 작년에 기획된 거라 제가 특별히 뭘 더 준비한 건 아니었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해왔던 일들도 영자원이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시점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조직이 커지고 업무가 깊어지면서 각 인원당 맡는 일이 많아졌다. 그게 계속되면 지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걸 줄이고 이젠 다같이 공유할 수 있는 내적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이란 뜻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몇 번 했던 여러 작품의 '10주년 상영전' 같은 행사 말이다. 과거 영화만 찾고, 상영한다는 오해가 있는데 동시대와 호흡하려 꽤 노력했다. 이런 동시대성을 더욱 가져가려 한다.

<살인의 추억>(2003) 10주년 상영 때 봉준호 감독님은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이 거의 다 오셨다. 영자원 시네마테크 1관이 꽉 차서 의자를 더 깔 정도로 관객들이 많았는데, 봉 감독님이 즐거워하며 직접 의자를 나르더라. 입구에서 연출부들과 표도 나눠주셨고(웃음).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상영 땐 <카게무샤> 배우인 나카다이 타츠야 선생(2025년 11월 별세)이 영화 속 딱 그 자세로 관람하고 계시더라. 이게 바로 살아 있는 시네마테크지 싶었다."

기획의 힘과 입소문

모 원장이 프로그래머 시절 진행한 10주년 상영회는 제법 입소문을 탔다. "감독들이 자기 영화는 안 해주냐 성화기도 했다"고 모 원장은 귀띔했다. 한재림 감독의 <연애의 목적>,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등도 상영됐다.

특히 <살인의 추억> 상영 당시 봉준호 감독이 "사실 행사를 한 이유도 저는 범인이 여기에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읊었던 범인의 인상착의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2019년 복역 중에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특정된 이춘재씨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봉 감독과 작업한 스태프들의 증언으로 '봉테일'이란 별명이 널리 알려졌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영자원 만이 할 수 있었던 기획이 필요하다. 영화의 복원, 발굴 개념을 영자원이 정착시키고 확산시켰잖나. 제가 왔을 때 시작한 일이니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 덕에 한국 영화사에서 단절됐던 일제 강점기 영화 연구도 시작됐다. 그런 토대를 마련해주고 학계든, 산업이든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부적으로도 우리 나름 기발하게 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인정해야 한다.

시네마테크 상영도 좀 더 확대할 기회를 보고 있다. 저희가 모았던 영화들을 대거 상영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땐 하루에 4, 5회씩 했거든. 수장고에 있는 옛날 한국영화 필름뿐 아니라 1960년대 일본의 황금기였던 영화들도 엄청 틀었다. (일본에서) 필름을 트럭으로 한가득 싣고 왔는데 영사실 실장님에게 맨날 혼났다. 그만 좀 가져오라고(웃음). 왜냐면 필름 상태가 안 좋은 건 끊어질 수도 있어서 손으로 받쳐가며 틀어야 했거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국정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이야기였다. 모 원장의 퇴사 배경엔 당시 보수 정권의 특정 영화 상영금지, 특정 영화인 배제 지침을 거부한 뒤 당한 부당 전보 사건이 있었다. 시네마테크부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던 그는 시네마테크부 밑에 신설된 영화관운영팀의 팀장으로 2016년 3월경 '명목상' 승진했다.

2019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백서를 통해 '(당시 류재림) 원장의 인사권을 활용한 특정 직무에서의 배제,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 차별적 조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적시했다. 진상조사위 진술서에 따르면 모 원장은 "여러 차례 인사조치에 대해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껴 퇴사"했다.

"당시엔 관련자 몇 명 빼곤 블랙리스트 때문인지 아무도 몰랐다. 퇴사 후 1년 뒤에 그 이유를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더라. 저도 그렇지만 영자원의 여러 직원에게도 상처였다. 이미 공지된 행산데 위에서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 그 말을 듣는다는 게 너무 비상식적이지. 한동안은 그 일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제가 여기 왔다는 건 어떤 면에선 명예회복일 수도 있다. 백서가 워낙 방대해서 아직 다 못 봤지만, 특정 개인에게 책임이 다 돌아가지 않도록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많은 애정을 가지고 일했던 조직인 만큼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매듭지을 건 짓고, 영자원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 한다."

"복원과 저장 역할에서 교육 센터로 나아가야"
 한국영상자료원 모은영 신임 원장.
ⓒ 한국영상자료원
영자원이 발굴·복원한 콘텐츠들은 자체 유튜브 채널 등에 활발히 게시되고 있다. 영자원 공식 계정과 별도로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는 2011년 9월 개설 후 현재까지 10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 풍경을 비롯, 해방 직후 만들어진 한국 고전 영화 다수가 올라와 있다. 모 원장은 "이런 본연의 사업을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데 갈수록 지원 예산이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긴축 재정인데,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우리가 계속 밀리니까. 복원과 아카이빙, 보존이라는 핵심 사업 예산이 줄어드는 게 큰 문제다. 또한 우리가 보존 기구면서 동시에 극장과 영상 도서관, 박물관이 있는 향유 기관이기도 하잖나. 10년 전 제가 있을 때 리모델링 한 번 한 이후로 시설 투자가 거의 없었더라. 아까 제가 동시대성을 강조했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간과되지 않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파주 보존센터 설립 후 10년이 되는 동안 예상보다 필름이 빨리 찼다. 수장고가 거의 포화 상태다. 주요 필름이 남아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인데 별도의 수장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필름 기술, 인화, 상영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잖나. 이런 유산을 체계적으로 다음 세대로 연결하기 위해 단순 저장을 넘어서 교육 기관 내지는 교육 센터 역할도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당초 생각보다 영자원 내 변화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게 모 원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인상 자체를 바꾸고 만들 수 있는 매개가 이런 영상, 영화인 만큼 단순한 보존 기관이 아닌 한국 문화와 관련한 곳으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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