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우리 집 냉동실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

김남정 2026. 4. 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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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개떡 한 장에 담긴 계절의 맛, 그리고 늦게 알게 된 부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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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정 기자]

요즘처럼 봄기운이 완연해질 즈음이면 우리 집 부엌에는 꼭 초록빛이 들어온다. 바로 쑥이다. 이맘때 간식을 책임지는 것도 단연 쑥개떡이다. 봄 쑥은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 영양소가 풍부해 면역력 유지에 좋다고 한다. 이런 효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한방재료나 음식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도 봉사활동 가는 남편 가방에 따뜻한 커피와 쑥떡 두 장을 넣어 주었다. 내 몫도 두 장 남겼다. 찜기에서 막 꺼낸 떡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볶은 콩가루를 솔솔 뿌리고 손바닥으로 얇게 눌러주면 쫄깃하고 구수한 봄 간식이 완성된다. 한입 베어 물면 은은한 쑥 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콩가루의 고소함이 맛을 담당하는 미뢰를 간질거린다.
▲ 쑥개떡 콩가루 쑥개떡을 만들었습니다.
ⓒ 김남정
쑥을 뜯어본 지는 오래다. 시골에서 초등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엄마를 따라 친구들과 밭둑에 쪼그려 앉아 쑥을 캐던 기억이 전부다. 그때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게 쑥이야. 너무 큰 건 질기니까 어린 잎으로 골라야 해."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작은 손으로 연한 잎을 찾던 풍경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래서인지 '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이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얼어 있던 땅을 뚫고 무언가 쑥~욱 올라오는 느낌이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올라오는 기운 같은 것 말이다.

엄마는 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봄이면 쑥과 각종 산나물, 여름이면 햇감자와 옥수수, 가을이면 햇밤과 고구마, 겨울이면 무와 배추. 사계절마다 가장 맛있는 것을 자식들에게 먹이려 하셨다.

계절을 건네는 엄마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는 봄의 초입에 연한 쑥을 뜯어 깨끗하게 손질해 보내주셨다.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다. 쑥을 다듬고, 쌀을 불리고, 함께 갈아 반죽한 뒤 동그랗게 빚어 봉지마다 나눠 주신다.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바로 찌기만 하면 되도록 말이다.

"엄마,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이제는 바쁘지 않아요."
"너 바쁜데 언제 이런 걸 다 하니. 그냥 해 먹어."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늘 같은 마음이 담겨 있다. 끼니 거르지 말라는 걱정, 바쁘게 사는 딸을 향한 안부,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 엄마의 기억 속에는 늘 내가 일하는 중인가 보다.

엄마의 냉동실에서 우리 집 냉동실로 옮겨온 초록빛 반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손이 많이 가는 수고이고, 자식이 허기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잘 지내고 있지?"라는 말 대신 건네는 안부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져서일까.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둥지 속 아기 새처럼 입만 벌리고 귀한 음식을 받아먹는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나이를 먹어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자식이고, 엄마의 손맛 앞에서는 아직도 철없는 아이가 된다.

예전에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 이제는 안다. 이 한 장의 떡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제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절과 시간을 함께 먹는 일이라는 것을.

요즘은 사계절 내내 무엇이든 쉽게 살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야생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고 자란 제철 식재료가 주는 기쁨은 분명 다르다. 기다렸다가 만나는 맛, 그 계절이 와야만 누릴 수 있는 맛에는 특별한 위로가 있다.

쑥개떡은 우리 집의 봄이다.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인 초록빛 반죽을 보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올봄에도 엄마는 말없이 쑥을 보내셨고, 나는 또 말없이 받아먹는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의 무게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다짐했다. 나도 딸들에게 이렇게 계절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봄이면 봄을, 여름이면 여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철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먹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끼를 먹으면서도 사랑을 배운다. 올해도 엄마가 보내주신 봄나물을 먹으며, 나는 조금 늦게 철이 들어가고 있다.
▲ 쑥개떡 만드는 과정 왼쪽 사진부터 쑥개떡 만드는 과정입니다.
ⓒ 김남정
엄마의 쑥개떡 레시피

1. 쑥 손질하기
연한 쑥을 깨끗하게 다듬어 여러 번 씻은 뒤 물기를 뺀다.
2. 쌀과 함께 갈기
쌀은 쑥 양의 절반 정도 준비해 충분히 불린 뒤, 쑥과 함께 곱게 간다. 양이 많으면 방앗간을 이용해도 좋다.
3. 반죽 만들기
갈아 놓은 쑥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치댄다. 너무 질지 않게 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4. 납작하게 빚기
반죽을 탁구공 크기로 떼어 둥글게 만든 뒤, 손바닥으로 눌러 지름 7~8cm 정도의 납작한 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든다.
5. 냉동 보관하기
비닐 사이에 반죽을 한 장씩 넣어 차곡차곡 쌓은 뒤 밀봉해 냉동실에 보관한다.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쓰기 좋다.
6. 찌고 콩가루 묻히기
찜기에 약 10분 정도 찐 뒤, 볶은 콩가루를 뿌린 도마 위에 올린다. 떡 위에도 콩가루를 뿌리고 손바닥으로 얇게 눌러주면 더욱 쫄깃하고 맛있다(뜨거울 수 있으니 면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끼면 안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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