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강국 외치더니…항만 '뇌'와 '팔' 모두 中에 맡긴 한국
미국은 관세 쥐고 안보 전쟁 중인데…한국은 '무혈입성' 방치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가 결합된 ‘피지컬 AI’ 강국을 선포하며 ‘K-스마트항만’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 기반 시설인 항만의 ‘뇌(제어 SW·데이터)’와 ‘팔(크레인)’은 중국산에 통째로 점령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산 항만 장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자 국내 업계에도 반사이익의 기회가 오는 듯했으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은 중국 국영기업에 최적화된 입찰 조건을 방치하며 우리 안방을 ‘무혈입성’의 장으로 내어주는 모양새다.
28일 관련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2028년 준공 예정인 인천신항 1-2단계(완전 자동화 부두)에 도입될 핵심 물류 장비 95기의 수주전에서 중국 기업들의 낙점이 확실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실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K-스마트항만 장비 도입 현황'에 따르면 컨테이너 크레인 공급 업체로 중국 국영기업인 상하이진화중공업(ZPMC)이 사실상 낙점됐다. 또한 컨테이너를 옮길 무인운반차량(AGV) 역시 중국의 웨스트웰(Westwell)과 계약이 예정된 상태다.
인천신항 1-2단계는 하역과 이송, 적재 과정을 완전 자동화하는 ‘한국형 4세대 스마트항만’의 핵심 거점이다. 하지만 컨테이너크레인과 야드크레인 등 주요 하역 장비 입찰에는 중국 업체들만 참여해 경쟁 없는 독무대가 형성됐다. 특히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령한 ZPMC의 저가 공세에 국내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점령의 이면에는 국내 기업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입찰에서 국내 업체들은 참여 자체를 포기했다. 발주처가 제시한 납기가 통상적인 제작 기간(30개월 이상)에 못 미치는 24개월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 보조금을 받는 중국 국영기업들은 표준형 크레인을 미리 제작해 쌓아두는 방식으로 이 납기를 맞추고 있다. 특히 업계는 사업이 1년가량 지연됐음에도 현실적인 제작 기간이 납기 조건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부두 운영 구조의 차이도 국산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부산신항 등은 항만공사(PA)가 장비를 직접 발주해 운영사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국산 장비 도입을 이끌어낸 반면, 인천신항은 운영사인 인천글로벌컨테이너터미널(IGCT)이 장비를 발주하는 구조다. 공공기관의 개입 여지가 제한적인 민간 발주 방식이다 보니, 가격 경쟁력만 앞세운 중국산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산업 경쟁력을 넘어선 국가 안보에 있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 잠식보다 더 큰 위협으로 ‘데이터 종속’을 꼽는다. 모든 물류 정보가 디지털화되는 4세대 스마트항만에서 항만의 ‘뇌’인 제어 소프트웨어와 통신 모듈을 중국산이 장악할 경우, 국가 물동량은 물론 군사 장비 이동 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노출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2024년 중국산 장비에서 무단 설치된 통신장비를 적발한 이후 자국 항만 장비 육성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며 중국산을 퇴출하고 있다.
또한 한번 중국산 시스템이 구축되면 향후 20~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중국 기술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술 인질’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스마트항만 조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지원에 나서는 한편, 기술 수출까지 공언하고 있으나 정책 목표와 현장 실행 간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업계 우려가 나온다.
한국항만장비산업협회 관계자는 “스마트항만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간산업인 만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GPA) 미가입국이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 제도를 활용한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삼석 의원은 “국가 항만 장비의 경쟁력과 물류 안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K-스마트항만에는 반드시 국산 장비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조달 계약 규정을 마련하는 등 조속히 대책을 수립해야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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