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안경 빌려주는 베트남 호텔... 이게 너무 부럽습니다

이경호 2026. 4. 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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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기 위해 머무는 곳, 탐조인의 낙원... 베트남 짬침 국립공원 인근 '와일드버드 호텔'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지난 4월 19일, 베트남 출장 중 짬침 국립공원 인근의 와일드버드 호텔(Wildbird Hotel)에 묵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와일드버드 호텔, 야생의 새를 위한 호텔이라니?

인간들은 늘 호텔 이름을 거창하게 붙인다. 로열, 프레스티지, 그랜드 하지만 막상 가보면 창밖엔 주차장과 에어컨 실외기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이름부터 이미 정직하지 않은가? 호텔이라는 이름에 비해 소박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와일드한 곳이었다.
 와일드버드 호텔 전경
ⓒ 이경호
직접 도착해 보니 기대보다 더 놀라웠다. 이 호텔은 베트남 짬침 국립공원 바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숙소에서 바로 국립공원 수로로 연결되는 동선이 있고, 실제로 보트 투어를 호텔에서 바로 연결할 수 있다.

호텔 자체 설명에서도 "람사르 습지인 짬침 국립공원을 탐방하는 자연 애호가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의 일자리와 지속가능한 생태경제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생태관광의 거점인 셈이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큰두루미'였다. 짬침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보호종이자 동탑성의 상징 같은 존재다. 두루미 관련 사진과 자료, 굿즈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단지 예쁜 장식이 아니라 "이곳은 새들의 땅"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호텔에 전시된 사진
ⓒ 이경호
호텔 곳곳의 벽면에는 다양한 조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그냥 인테리어용 사진이 아니었다. 실제 짬침 국립공원에서 관찰되는 새들의 기록이었다. 홍대머리황새, 아시아열린부리황새, 검은머리흰따오기, 물꿩, 백로류, 맹금류까지. 마치 작은 조류박물관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새를 중심에 둔 호텔이라니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물 외벽 한쪽이었다. 짬침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다양한 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거대한 벽화로 그려 놓은 공간이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국립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새 이름을 하나씩 설명하는 교육자료가 될 수 있어 보였다.
 호텔벽면에 그려진 벽화
ⓒ 이경호
객실 안도 마찬가지였다. 방 안 벽에는 새 사진이 걸려 있었고, 조류와 습지에 관한 간단한 책들이 놓여 있었다. 일부 후기에서는 "TV와 냉장고 대신 자연을 경험하게 만드는 호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은 자원을 절약하고 자연 속 경험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호텔방에 있는 새와관련한 소책자
ⓒ 이경호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호텔 뒤편에서 만났다. 습지로 나가는 작은 출입문 앞에 쌍안경이 준비되어 있었다.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빌려 탐조를 할 수 있도록 해둔 것이다. 베트남 조류도감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새벽 6시면 보트투어에 맞춰 아침식사까지 준비해준다. 호텔 전용 선착장에서 바로 보트가 출발한다.
 대여가능한 쌍안경
ⓒ 이경호
쌍안경을 빌려주는 호텔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실제로 호텔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습지이고, 새를 보기 위한 준비가 이미 끝나 있다. 자연과 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장소일 수 밖에 없다.

호치민에서 버스로 5시간을 이동해야 하지만 탐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곳은 충분히 그 시간을 감수할 만한 장소였다. 아니,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짬침 국립공원은 단지 보호구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와일드버드 호텔은 그 중심에 있었다.

새를 보호하는 일은 거대한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새를 좋아하게 만들고, 다시 찾고 싶게 만들고, 그 경험이 지역의 경제와 연결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보전일지도 모른다.
 호텔입구에 설치된 푯말
ⓒ 이경호
호텔 하나가 생태교육장이 되고, 관광이 보전의 이유가 되는 방식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도 철새도래지와 습지는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개발의 대상이 되거나 민원의 이름으로 밀려난다. 탐조는 여전히 조금 이상한 취미처럼 취급받기 쉽다. 짬침의 와일드버드 호텔은 정반대였다. 새를 보는 일이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이 지역의 자랑이자 산업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부러웠다. 베트남은 백로를 따라 베트남까지 왔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호텔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호텔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자연은 그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늦기 전에 꼭 우리나라에서도 와일드버드 호텔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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