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마다가스카르의 나무가 되고 싶었던 ‘작은 거인’

장창일 2026. 4. 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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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윤(54) 마다가스카르 선교사가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건 지난 20일이었다.

2002년부터 선교사로 살며 마다가스카르 무슬림 선교에 인생을 바쳤던 전도자의 삶이 그렇게 마무리 됐다.

마다가스카르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박 선교사의 발목을 잡은 건 2020년 발견된 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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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라나나의 어머니 박은윤 선교사
무슬림 땅에 ‘환대의 씨앗’ 남기고 잠들다
박은윤 선교사가 2016년 마다가스카르 암빌루베에서 열린 어린이성경학교에 참석해 아이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유족 제공

박은윤(54) 마다가스카르 선교사가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건 지난 20일이었다.

2002년부터 선교사로 살며 마다가스카르 무슬림 선교에 인생을 바쳤던 전도자의 삶이 그렇게 마무리 됐다. 하지만 유족과 그를 파송한 국제아프리카내지선교회(AIM)는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앞으로도 계속 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복음화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박 선교사는 마다가스카르 최북단의 ‘안치라나나’라는 도시에서 사역했다. 과거 디에고 수아레스라고 불렸던 도시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조차 많지 않은 지역인데 주민 다수가 무슬림이어서다.

이곳에서 그는 마다가스카르의 미래에 투자했다.

안치라나나대학교에서 영어 교수로 활동하면서 후학을 양성했고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활용하며 대학생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했다. 박 선교사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나누며 사랑도 전했다.

박은윤(오른쪽) 선교사가 2020년 마다가스카르 마하짜라교회 청년부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유족 제공

문을 잠그지 않았던 그의 집에 강도가 든 건 2013년이었다. 박 선교사는 이때 부상을 입어 머리를 다섯 바늘이나 꿰맸어야 했지만 치료보다 정해졌던 사역에 나섰다.

그를 후원했던 서현교회(이상화 목사)가 당시 교인들과 공유한 긴급 기도편지에는 치료 대신 사역을 택했던 그의 결정이 담겨 있었다.

“부상으로 CT도 찍어야 하지만 암빌루베 지역 청소년 캠프 진행이 있어 그곳으로 갑니다. 150명의 아이들이 모이는데 영적전쟁이 심합니다. 캠프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 일이 있은 뒤에도 그는 빗장을 거는 대신 문을 열어뒀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환대해야 할 이웃으로 봤기 때문이다.

숭고했던 삶과 죽음이 뒤늦게 알려진 건 조용히 사역하려던 박 선교사의 소신 때문이었다. 취재를 위해 그를 파송한 AIM 한국 본부 이진우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도 “어떻게 아셨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이 대표는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사역하시는 것처럼 박 선교사님도 자신의 사역 알리는 걸 원치 않으셨다”고 전했다.

박은윤(뒷줄 왼쪽 세 번째) 선교사가 2020년 마다가스카르 학생들과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성경공부를 한 뒤 진행된 수료식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유족 제공

마다가스카르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박 선교사의 발목을 잡은 건 2020년 발견된 암이었다. 현지 병원에선 항생제 처방만 받았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한국에 나와 검사를 하니 유방암이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없이 약을 가지고 1만㎞ 떨어진 마다가스카르로 돌아갔다. 하지만 암은 계속 커졌다. 2022년에 간으로 전이된 암이 2024년엔 전신으로 퍼졌다.

집중 치료가 시작됐고 몰라보게 살이 빠졌다. 고통스러운 시간 중에도 그는 “나는 기도에 빚진 자”라면서 감사하는 일상을 살았다고 한다.

박 선교사의 오랜 지인인 이윤경 권사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외유내강 선교사로 겉으론 한 없이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철저하게 자신을 쳐서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렸던 분이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든 걸 마다가스카르 복음화를 위해 드렸던 선교사님이었어요.”

박은윤(왼쪽) 선교사가 2011년 마다가스카르 안치라나나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무슬림 선교훈련반 학생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유족 제공

유언에도 마다가스카르 복음화를 향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이 대표는 “안치라나나대 캠퍼스 나무 아래 자신의 재를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유족들도 무슬림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박 선교사의 선교적 열정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한 손에는 복음, 다른 손에는 사랑을 들었던 박 선교사의 선교적 열망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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