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나물로 가득한 밥상, 나는 나를 대접합니다

황윤옥 2026. 4. 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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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옥 기자]

"오늘 시장 다녀올 거지?"

지난 23일 새벽에 출근하던 남편이 넌지시 물어본 말이다. 며칠 전 먹었던 가죽(참죽) 나물이 입맛에 맞았는지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해 달라는 주문을 해 왔다. 나는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그 요청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집안일을 끝내고 나니 오전 10시였다. 부리나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장바구니를 챙겼다. 재래시장에 가려면 꼭 챙겨야 할 게 또 있다. 바로 현금이다. 할머니들이 파는 봄은 꼭 현금으로 값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갑에서 5만 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머니에 고이 넣고 시장으로 향했다.

걸어서 30여 분이 걸리는 거리를 산책 삼아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하였다. 재래시장은 여전히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고 싶다면 시장으로 가 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활기가 넘치다 못해 공기 중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형형색색 봄꽃을 파는 꽃가게를 지나자 없는 것 말고 다 있는 만물가게가 나타났다. 평소에 보기 힘든 까만 고무줄, 노란 고무줄도 자체 발광을 하며 길가에 서 있었다.

이어서 할머니들의 장터가 시작되었다. 벌건 바구니에 담겨있는 과일과 채소 무더기가 보였다. 이번에 살 녀석은 가죽나물인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눈을 다시 크게 뜨고 금이라도 찾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살펴보아도 없었다.

시장 골목 가장 끝자락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자리를 지날 때였다. 보랏빛 색깔을 지닌 가죽이 보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값을 물어보았더니 한 소쿠리에 만 원이라는 것이다.

"저번엔 한 소쿠리에 5천 원 했는데 좀 비싸네요."
"아이고. 그라믄 2천 원 빼 줄 테니 8천 원에 가 가소."
"그러면 두 소쿠리 주세요."
"오늘은 이거밖에 없소."

한 소쿠리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내친김에 옆에 누워있는 아이들도 같이 데려왔다. 머위(경상도에서는 머구라고 함)잎과 두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바구니 가득 담긴 봄나물은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봄을 한아름 사 들고 오는 기분이었다. 혹시나 해서 지난번에 가죽나물을 샀던 인적이 드문 곳으로도 가 보았지만,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원래 가죽나물만 살 생각이었는데 두 녀석을 함께 데려왔으니 요리할 가짓수가 늘어난 셈이다.

가장 먼저 소금물에 두릅과 가죽을 데쳐내고 머위잎은 채반에 쪄냈다. 두릅은 초장에 찍어 먹을 건 접시에 담아두고, 부침가루를 입혀 전을 부쳤다. 가죽은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고 장떡처럼 부쳐냈다. 프라이팬 위에서 가죽나물과 고추장이 만나 지글거리는 소리가 거실까지 퍼졌다. 봄의 향기가 집 안 가득 번지니, 비로소 진짜 봄이 우리 집에 찾아온 것만 같았다.

머위잎은 쌈으로 먹을 것이라 강된장이 당첨되었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알배추, 양파, 호박, 고추와 파를 꺼내 먼저 쫑쫑 썰고 국을 끓이려고 사다 둔 소고기도 꺼냈다.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끓이면 되지만 강된장은 넓은 프라이팬에 끓인다.

먼저 프라이팬에 썰어놓은 고기와 채소를 다 넣고 볶은 다음에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된장을 넣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두부를 깍둑 모양으로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넣었다. 어느 정도 졸여지면 참기름을 한 방울 넣었더니 맛있는 강된장이 완성되었다.
▲ 봄밥상 가죽전, 두릅전, 두릅숙회,머위잎과 강된장으로 차려진 봄밥상
ⓒ 황윤옥
주방에서 종종거리다 보니 남편이 점심 먹으러 올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밥상을 차려냈다. 밥상에 초록 가득 건강한 봄이 차려졌다. 띠띠띠띠, 남편이 도착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맛있는 냄새, 정말 맛있겠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눈으로 맛을 본 후 입으로 맛을 본 남편의 반응이 더 맛있다.

"정말 행복하다. 요즘 이런 음식 해 주는 사람들이 잘 없을 거야. 고마워."

남편의 젓가락이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다. 긴 세월 '맏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식구들 밥상만 챙기느라 정작 내 입맛이 무엇인지 잊고 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봄나물을 찾아 장을 보고, 남편과 마주 앉아 오붓하게 즐길 여유가 생겼다.

오늘의 밥상은 누군가를 위한 의무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차린 즐거운 봄 소풍이다. 나는 슬며시 막걸리를 한잔 졸졸 따랐다. 몇 시간을 동동거리며 시장 보고 요리하느라 애쓴 나에게 토요일 한낮의 호사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날은 해야 할 공부도 없으니 좀 여유로운 날이기도 했다.

"아휴, 나도 일하러 가기 싫다."

잠시 쉬고 다시 일을 나가야 하는 남편의 귀여운 앙탈이 시작되었다.

"저녁에도 딱 이대로 다시 해 줄게."

제철 음식은 딱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재래시장에 나가 봄을 사 오는 일은 번거롭고 시간도 꽤 걸린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좋아한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맛을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것, 이것이야말로 팍팍한 일상 속에서 내가 나를 가장 귀하게 대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만든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다시 시장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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