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의 비극을 예언한 곡...나는 지방도로 위에서 울었다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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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
| ⓒ CJ ENM |
이 대사가 관객들의 가슴에 콱, 박혔던 영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많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양한 관계들, 습관들, 기억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공적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을 널리 알려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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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포스터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1971년 제작 |
| ⓒ 영화사 |
말러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랑은 영화 첫 장면의 느린 호흡처럼 천천히 이루어졌던 사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말러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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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궁정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있었던 1909년 말러의 모습 |
| ⓒ 위키백과 |
음악을 주로 카세트 라디오로 듣던 시절, 그 무렵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성음'에서 나온 테이프를 사서 듣거나 아니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들었다. 그래서 공테이프를 많이 사 두었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이면 그녀가 공테이프에 녹음해 준 음악을 애지중지 여기며 들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등...
그러다가 우연히 말러의 명성을 접했다. 이상하게도 말러를 좋아한다는 말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 속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모르겠다. 내가 그 곡을 부탁한 것인지, 아니면 감상을 권유받았던 것인지. 말러의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와 <대지의 노래>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 하지만 플레이 버튼을 눌러 말러의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좌절했다. 아무 느낌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음악적 감각이 없구나. 그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듣기까지 안되다니.
그리고 오랫동안 말러는 내게 잊혔다. 말러를 잊고 있는 동안, 내 인생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문예지로 등단해서 소설가가 되었고, 사표를 던져 훌쩍 교직을 떠났고, 미혼에서 기혼이 되었고, 돌봐야 할 아이가 생겼다. 뒤늦게 대학원의 문턱을 넘어 알량한 시간 강사의 신분도 되었다. 십 년간 지방 대학에 강의하러 다닐 때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간이 배나 걸려서 한 시간쯤 외곽 도로를 운전해서 다녔는데 길이 익숙해지자, 그 시간이 몹시 지루하고 갑갑했다.
그 도로 위에서 어느 날 말러 교향곡이 내 귀에 꽂혔다. 그때는 USB에 음악을 녹음해서 다녔다. 5번, 4번, 6번, 2번, 1번... 나는 언젠가 들었던 5번 4악장만을 듣고 싶어 했지만, 순서와 상관없이 녹음된 곡 중에서 내가 듣고 있는 곡이 몇 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출발과 함께 시디플레이어를 누르면 1악장이 시작되어 대학교 정문에 도착할 즈음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가 흘러나오곤 했다.
자발적 비정규직. 혹은 노마드라고 멋있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방 도로 위에서 신호에 멈춰 서 있게 되었을 때면 불현듯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떠다민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왜 여기 길 위에 있는가?
육중한 컨테이너 박스를 실은 화물 트럭이 앞질러 가면 뽀얗게 일어나는 흙먼지, 손님 하나 없을 듯한 간이 휴게소, 폐업한 지 오래된 주유소, 무수한 차 바퀴에 짓눌려 아스팔트 위 검붉은 얼룩이 되어버린 고라니나 들고양이들의 흔적들... 그때 내 눈앞에는 이런 것들이 스치고 있었고 그 위로 말러의 음악이 흘렀다. 황막함, 슬픔, 여전히 다스려지지 않는 내 안의 열정, 이런 감정들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죽음에서 삶으로 이끄는 말러의 교향곡
드디어 말러 음악을 공연장에 찾아가서 듣게 되었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집에서 정명훈,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의 지휘로 연주되는 동영상을 보았다. 동영상의 장점은,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주로 뒷모습만 볼 수 있던 지휘자의 정면 혹은 측면 모습, 호른 연주자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바순이나 오보에를 불 때 연주자의 홀쭉해지는 볼, 지휘자의 사인과 함께 일제히 활을 치켜올릴 때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얼굴에서 힐끗 엿보이는 긴장.
말러 교향곡 5번에서 내가 좋아했던 1악장의 테마가 장송 행진곡인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군악대의 나팔처럼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되었다가 이어지는 구슬픈 멜로디라니. 말러의 음악 속에서 이런 장송곡의 테마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교향곡 1번 <거인> 3악장과 3번 1악장. 1번 3악장은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 동요 <아 유 슬리핑, 브라더 존(Are you sleeping, Brother John)>의 멜로디를 단조로 느리게 바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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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서 추모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말러의 교향곡 5번은 1악장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해서 4악장 아다지에토로 이어지다가 5악장 론도의 피날레로 끝난다. 알마 쉰들러를 만나기 전에 1악장을 작곡했던 말러는 그녀를 만나서 4악장을 헌정하고 그녀와 결혼한 후에 마지막 악장까지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한 후에도 출판업자가 머리를 흔들 정도로 여러 번에 걸쳐서 개작했다고 하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죽음.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것을 여러 번 경험한다.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야 했을 때, 예기치 않은 사회적 재난을 만났을 때, 삶의 의욕이 갑자기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버렸을 때. 그럴 때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친다.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은 우리를 삶으로 다시 이끈다. '사랑의 아다지에토'. 삶의 긍정으로 이끄는 멜로디. 그래서 그 멜로디는 그렇게 느리게 흐른다.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슬픔, 절망, 좌절 등을 천천히 저 넓은 바다로 흘려보내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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