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애를 아픈 애로 34번 속였다…AI 날개 단 보험사기

오효정 2026. 4. 2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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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A씨는 2022년부터 3년 동안 39건에 이르는 보험금 청구를 했다. 진단명은 손가락 골절부터 늑골 골절, 암까지 다양했다. 짧은 기간 한 사람에게 여러 질병이 생긴 걸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가 해당 병원의 실제 서류와 비교했더니 문서 형식부터 병원 직인, 의사명, 의사 서명 모두 가짜였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진단서와 진료비 영수증·세부내역서를 조작했는데, 이렇게 A씨가 타간 보험금은 2500만원에 달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40대 여성 B씨는 아이 한 명의 의무기록을 바탕으로 나머지 아이도 아픈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지난해 34건에 걸쳐 6000만원을 청구했다. 변조 수준도 매우 정교했다. 보험사가 막판에 고유식별번호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사건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AI를 활용한 사기가 늘면서 보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보험사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탐지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진화하는 사기 수법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27일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1571억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중 2009억원이 진단서 위변조, 입원·수술비 과다 청구 유형이다. 자동차 사고 조작·과장 유형까지 더하면 전체 보험사기 적발액의 35%가량 비중을 차지한다.

AI 이용 위변조 사건만 따로 집계하는 통계는 없지만, 보험업계는 사기가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로 AI를 꼽는다. 박철현 보험범죄문제연구소 소장은 “AI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를 추궁해야만 알 수 있는데, 소액 사건은 보험사가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며 “지난해부터 AI 사용 보험사기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보험사기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지난해 처음 나왔다. 20대 남성 C씨가 AI 프로그램으로 입원 기간을 늘리고 진단명을 바꿔치기한 사건이었다. 2024년 7월부터 1년여간 11차례에 걸쳐 보험금 1억5000만원을 타냈지만, 입원 일자와 퇴원 일자가 뒤바뀌는 등 허점이 드러나면서 꼬리가 잡혔다.

해외 보험업계도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계 등 고가 물품 사진을 생성해 분실 피해를 봤다고 꾸며내거나, 차량 파손 사진을 조작해 사고 규모를 부풀린 사례 등이 보고되고 있다.

포토샵 등 과거 편집 프로그램이 기존 서류의 일부를 바꿔내는 수준이었다면, AI 프로그램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새로 만드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보험금을 청구할 때 종이 서류 대신 사진을 찍어 내는 방식이 보편화한 것도 사기 문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사진을 흐릿하게 찍어 올리면 위변조 여부를 쉽게 판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도 AI 기술을 활용해 방어에 나섰다. 보험 가입 이력, 보험금 지급 데이터, 진료 패턴, 사고 빈도 등을 AI가 분석해 비정상적인 흐름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위변조된 이미지를 가려내기엔 역부족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AI는 이상 패턴만 감지할 뿐 결국 인력이 투입돼 실제 병원 진료 기록을 일일이 파악해 대조해야 한다”며 “기술적으로 검출되지 않은 부정 청구를 파악하는 현장 조사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AI 이용 사기가 성행할수록 다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역설이다.

금융당국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위변조 확인 기술을 고도화하는 등 보험사들과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실효성 있는 수준까지 개발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 데이터와 교차 검증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민감한 의료 정보가 민영 보험사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크다. 현재로썬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플랫폼(실손24)을 보편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의료기관에서 데이터가 보험사로 자동 전송되면, 실손 보험 청구 건에 한해서라도 서류 위변조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다만 전문가는 향후 AI 활용 사기가 서류 위변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박철현 소장은 “AI가 보험 약관을 분석해 적발이 어려운 수법을 설계하거나, 허위 판례를 생성해 방어에 나서는 등 고도화할 수 있다”며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하루빨리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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