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 이하 무서명 제도’ 한도 10년째 제자리… “결제 불편”
10년간 물가상승률 20% 반영 안 돼
핀테크 시대에도 결제마다 서명
카드사, 수수료 절감에 상향 찬성
밴사·대리점 반발에 개편 난항

27일 서울 중구 한 냉면집. 문 앞 뿐 아니라 계산대 앞에서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냉면 두 개에 수육 하나 시켰을 뿐인데 6만원이다. 근처 직장인 염모(42)씨가 고물가를 실감하며 신용카드를 내밀자 몇 초 후 점원의 무심한 “서명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5만원이 넘어서다. 염씨는 손가락으로 사인패드 화면을 대충 긁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조모(35)씨는 퇴근길 집 근처 한 대형마트에 들려 돼지고기와 두부, 계란, 과자와 음료수 몇 개를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약 7만2000원이 나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핀테크 간편결제로 계산했지만 역시나 서명 요청을 피하지 못했다. 이미 휴대전화에서 본인 인증을 마쳤지만 5만원이 넘으면 서명이 필요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5만원 이하 결제 시 서명을 생략할 수 있는 ‘무서명거래 전면 시행’이 다음 달이면 도입 10년을 맞는다. 10년 누적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약 20%에 달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5만원 한도가 이제는 너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인 김모(36)씨는 “마트에서 물건 몇 개 사면 5만원이 훌쩍 넘는데 그때마다 서명해야 하는 건 불편하다”며 “점원과 고객 모두가 피로한 상황이 아니냐”고 말했다.
당초 카드결제는 금액과 상관없이 서명이 원칙이었다. 2007년부터 카드사와 가맹점 간 무서명거래 계약이 돼 있는 경우 5만원 이하는 무서명거래가 가능했지만, 대다수 중소가맹점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가 전면 시행된 것은 2016년 5월부터다. 금융위원회가 카드업계와 가맹점에서 건의를 수용해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여신금융협회는 5만원 이하 무서명결제 시행을 알리며 “거래 간소화는 물론 금융소비자 편익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제도는 그대로다. 그동안 높아진 물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편익 제고 등 본래의 예상했던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무서명거래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의 5만원은 현시점에서 5만원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무서명결제 도입 전 5만원(2016년 3월 기준)은 10년 뒤인 4만150원(2026년 3월 기준)으로 집계됐다. 20% 가까이 가치가 하락했다. 냉면, 삼겹살, 짜장면 등 외식물가는 50~60%가량 크게 올랐다. 카드결제 시 서명을 할 일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무서명결제 도입 직후 BC카드와 현대카드 등 일부 카드사는 무서명거래 금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해달라고 금융당국에 건의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건당 결제금액이 5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았고, 무서명거래 금액 한도가 높아지면 부정 사용 등에 대한 카드사의 책임도 늘어나 이에 따른 위험이 늘어나는 것도 우려해서였다.
카드업계는 대체로 무서명거래 한도 상향을 찬성하는 분위기다. 무서명거래가 확대되면 카드사가 카드 전표를 수거할 필요가 없어 밴(VAN)사에 내는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부정 사용 위험을 지고도 수수료를 절감하는 게 더 유리한 카드사들은 찬성하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와 소비자가 원한다고 무서명거래 금액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서명 거래가 확대될수록 밴사와 밴 대리점의 수수료 수익은 줄어들 수 있어서다. 무서명결제 도입 당시에도 밴 대리점의 반발로 추진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카드사와 밴사, 밴 대리점이 무서명거래에 따른 이익과 비용을 3자가 나누는 방안을 마련해 협의에 이른 바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결제 규모가 오프라인 결제를 이미 넘어선 상황에서 업권 간 갈등을 일으키면서까지 다시 논의에 나설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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