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장] 독일 축구팬들 요즘도 노상방뇨하네? '황당 풍경부터 시민의식까지' 경기장 체험기

[풋볼리스트=레버쿠젠(독일)] 김정용 기자= 졸졸졸 소리가 나면 반드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노상방뇨하는 사람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분데스리가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본 풍경이다. 다른 사람들은 '독일에선 이게 일상이야'라고 말하는 듯 태연했다. 지난 23일(한국시간)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 아레나에서 열린 20252-2026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4강전을 치른 바이에른뮌헨이 바이엘04레버쿠젠에 2-0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서포터 틈에 섞여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맥주를 파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퍼마시지 않은 성인은 나 하나뿐인 듯했다. 공원 사이로 난 숲길에서 맥아 냄새가 진동했다. 투입된 수분을 즉시 배설하는 실시간 순환은 잘 정돈된 뮌헨 경기장 근처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니 여러 축구장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라고 했다. 문득 몇 년 전 찾았던 샬케04 홈구장 관중석 한곳에 고여있던 물과 거기서 나던 지린내가 생각났다. 설마 이 양반들이 경기장 안에서도?
▲ 저놈들 잡아라, 뮌헨 향한 강렬한 적개심
레버쿠젠은 바이에른과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2년 전 사비 알론소 감독이 이끄는 무패우승으로 김민재와 해리 케인의 분데스리가 1년차 우승을 무산시켰다. 레버쿠젠만 바이에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바이에른 입장에서도 '새로운 데어 클라시커' 상대로 레버쿠젠을 강하게 의식한 계기다. 바이에른이 레버쿠젠 선수를 여럿 노리는 과정에서 구단 수뇌부 사이에 비난이 오가는 등 감정이 나빠졌다.
그래서인지, 킥오프 직전 홈팀 서포터석에서 홍염이 피어올랐다. 붉은 불꽃이 여러 개 보이더니 곧 매캐한 연기에 가려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게 됐다.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 여의도 근처를 지나다보면 맡는 화약냄새가 경기장 전체에 퍼졌다. 킥오프가 5분 정도 지연됐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연기가 퍼지자 바이에른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공을 돌리면서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레버쿠젠 쪽 스태프와 볼보이들이 재빨리 공 두 개를 투입해 바이에른보다 조금이라도 밀리지 않게 했다.
홍염을 열댓 개 숨겨 들어왔는지, 킥오프 전에 그 난리를 치고도 후반전 막판까지 계속 불이 타올랐다. 구단에서 자제하라는 안내방송은 틀었지만 심드렁했다. 딱히 저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수간 감정은 나쁠 이유가 없었지만, 경기장 전체의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뛰다보면 휩쓸리기 쉬웠다. 초반부터 해리 케인과 마이클 올리세가 조금이라도 얄미운 짓을 할라치면 바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레버쿠젠 선수들도 그 에너지에 취했는지 점점 거칠어졌다. 전반전 막판 에세키엘 팔라시오스가 올리세를 거칠게 넘어뜨리자, 올리세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한 채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와 감정싸움을 벌이자 레버쿠젠 고참 출신인 요나탄 타가 다가와 양쪽을 좋은 말로 타일렀다.
특히 인상적인 건 감정이 격앙되는 가운데서도 플레이는 냉정했다는 점이다. 이날 레버쿠젠은 경기 중 유연한 대형 변화로 바이에른의 공격을 상당히 잘 틀어막았다. 비록 역습의 위력은 떨어졌지만 결정적인 슛 하나만 들어갔다면 1-1을 만들 수도 있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후반전 교체 투입된 김민재가 관여한 추가시간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루이스 디아스가 득점하면서 더 차가웠던 바이에른이 승리를 따냈다.

▲ 관중 숫자는 적지만, 열기는 뮌헨 이상
독일 제 3의 대도시 뮌헨을 연고로 하는 바이에른뮌헨과 달리, 바이엘04레버쿠젠의 연고지 레버쿠젠은 인구가 약 20만 명에 불과하다. 인기 축구팀이 몰려 있는 독일 서부 공업지대의 일부라 인근 도시 주민들은 각자 연고팀을 응원하지, 레버쿠젠이 잘나간다고 '팬고이전' 하지 않는다. 홈 구장 바이아레나의 수용인원은 30,210명으로 김민재가 평소 홈 경기를 갖는 알리안츠 아레나의 75,000명에 비하면 절반에 못미친다.
레버쿠젠은 2009년 바이 아레나를 개축하면서 수용인원을 더 늘리지 않고 이 정도 규모에 만족했다. 대신 관중 체험의 밀도를 높이고 좌석의 단가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VIP석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관중석 4면에 모두 띠처럼 둘러 있는 데다 남쪽 스탠드에는 유독 큰 규모로 제일 좋은 자리를 할애했다. VIP석을 강화하는 건 요즘 독일 팀들의 공통점이다. 레버쿠젠은 경기장 소개 문구에 "홈 서포터, 원정팬, CEO들, 가족팬들"을 모두 환영한다고 쓸 정도로 '사장님'들의 유치를 중시한다. 지나친 상업화라고 비판받는 잉글랜드와 다른 건, 일반석 가격 인상은 여전히 자제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 수익을 위해서는 VIP석을 더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일반석에서는 전투적인 분위기가 이어져 내려오고, 그것이 곧 독일 축구의 스펙터클을 형성하는 선순환이 벌어진다. 분데스리가는 유럽 빅 리그 중 서포터 응원이 가장 장관인 리그로 꼽힌다. 레버쿠젠은 이웃 샬케 등에 비해 관중석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고, 가족친화적인 구단이다. 그건 일반석 이야기고, 양쪽 서포터석 앞에는 투척물을 막기 위한 그물이 쳐 있어 수틀리면 뭔가 던질 족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배 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에너지를 뿜지 않았던 바이에른의 알리안츠 아레나보다 훨씬 뜨거웠다.

▲ 꽉 차는 장애인석, 수익 다변화를 위한 VIP석
남쪽 스탠드에는 아예 일반 관중석을 최소화했다. 골대 바로 뒤 전망 좋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장애인 석에 배정했다. 휠체어석과 시각장애인석이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들어찼다. 훨씬 적은 규모로 존재하는 장애인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한국의 스포츠 구장들과 비교하면, 독일의 장애인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실감이 됐다. 또한 남쪽 스탠드 중 한 층은 관중석을 놓지 않고 용품점 창문으로 썼다. 관중석을 줄이는 한이 있었도 경기장이 아닌 나머지 6일 내내 '굿즈'를 사러 온 사람들에게 더 만족스런 체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레버쿠젠 경기장의 경험은 독일 축구팬의 더러움과 야성으로 시작해 그들의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는 풍경으로 다채롭게 이어졌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바이에른뮌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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