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딸이 왕실 며느리로? '21세기 대군부인'이 놓친 것
[김종성 기자]
평민 성희주(아이유 분)와 왕족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결혼을 다루는 MBC <21세기 대군부인> 속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결혼이 성사될 조짐이 나타나자 놀람과 충격의 반응을 보인다. 재벌 딸이기는 해도 평민에 불과한 성희주가 어떻게 왕실 며느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당혹감을 표시한다.
이런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이 왕실 전문가 황우경(정희태 분)의 방송 인터뷰 장면이다. 18일 방영된 제4회에서 황우경은 "캐슬그룹의 성희주 상무는 평민이고 사업가입니다"라며 "왕실의 전통적인 신붓감과는 거리가 멀죠"라고 말한다.
그는 "이안대군과 성희주 대표의 혼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혼인까지는 어려울 겁니다"라고 답한다. 그런 뒤 "출신에 민감한 왕실에서 평민을?"이라며 뜸을 들이다가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라고 선을 긋는다.
이 드라마 속의 대한민국에는 양반도 존재한다. 성희주가 재벌 딸이기는 하지만 양반은 아니라는 점이 충격을 자아낸다. 이처럼 왕정체제뿐 아니라 귀족체제도 이 드라마에 함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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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21세기 대군부인> 관련 이미지. |
| ⓒ MBC |
왕정국가의 정치적 안정을 담보하는 것 중 하나는 귀족제였다. 왕실이 모든 것을 독점하면 나라 안의 모든 세력이 왕실의 적이 되므로 왕실이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귀족들의 존재는 왕정체제가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세력의 존재를 의미했다. 이런 세력이 너무 적으면 왕실은 대중의 민란을 막아낼 수 없었다.
왕실은 민란에 맞설 동맹자를 얻기 위해서라도 귀족들의 지분을 인정해야 했다. 왕조가 유지되려면 적정 규모의 귀족들이 존재해야 했다. 왕실과 귀족은 한편으로는 경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했다. 이 둘은 노비와 토지를 발판으로 대중을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한 배를 탄 동업자들이었다. 그래서 왕정제와 귀족제는 자연스레 어울렸다. 위 드라마는 두 제도의 공존에 기초한다.
그런데 그 공존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북아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제2차 대전 종전 당시에 공산주의세력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왕정체제와 귀족제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군이 점령한 동북아의 또 다른 지역에서는 왕정제만 남고 귀족제는 사라졌다. 공산세력과 미국이 점령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사라진 것은 귀족제다.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주도하에 제정됐다고 해서 맥아더 헌법으로도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은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한 뒤, 제14조에서 "화족(華族) 그 외 귀족의 제도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다. 과거 일본제국의 '최대주주'만 남기고 주요 주주들을 죄다 몰아냈던 것이다.
이 조치는 귀족들의 특권 상실에만 그치지 않고 이들의 재산 박탈도 초래했다. 혼마 야스코 캇스이여자대학 전임강사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면서 490개 가문에 달하는 화족은 그 지위와 재산상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다"라며 덕혜옹주의 올케인 이방자(영친왕 배우자)의 친정 쪽이 입은 타격을 설명한다.
이 책은 "나시모토노미야 백작가의 재산은 3686만 엔으로 간주되어 재산세가 2565만 엔이었다"고 알려준다. 이 집안의 경우에는 귀족제 해체 때문에 재산의 70%를 재산세로 납부했다.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재산은 여전히 상당했지만, 남은 것을 지킬 힘이 그 시기 일본 귀족들에게는 충분치 않았다. 귀족들의 재산 유지는 정치체제와 더욱 긴밀한 관련을 갖기 때문에, 정치가 불안정하면 당장에 이들의 재산 유지부터가 쉽지 않았다. 이방자는 회고록인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에서 자기 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다.
"700여 평의 집은 불타 없어지고, 1만 7000평의 대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두 개의 별장도 팔려 갔다. 가구도 차례로 팔았다. 설상가상으로 두 차례나 도둑이 들어 옷가지들까지 모두 쓸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천황 부처가 아버님에게 겨울을 날 옷가지 등을 보내 주었다."
덕혜옹주와 그의 남편인 소 다케유키 백작도 평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정든 집을 처분해야 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설명이다.
"소 백작가의 카미메구로 저택도 재산세를 지불하기 위해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31년 가을 이래 약 15년에 걸친 부부의 생활공간이기도 했으며 마사에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1910년에 일본 제후급으로 전락한 영친왕을 비롯한 이왕가(李王家)는 일반적인 일본 귀족들보다 처지가 좋았다. 하지만 이들도 패망 뒤에는 재산을 지키기 힘들었다. 이왕가의 재산은 일본 패망 직후에 960만 엔으로 평가되고 여기에 재산세 750만 엔이 부과됐다.
이 시기 일본 귀족들이 겪은 또 다른 상실이 있다. 제국의회 귀족원이라는 국가기관이 증발한 일이 그것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입법에 반영시킬 수 있는 국회 상원이 사라졌던 것이다.
일본 귀족들은 일왕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특권을 누렸다. 그런 특권이 미군정에 의해 산산조각 났기 때문에 일왕은 더 이상 그들의 충성을 받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 왕실의 존립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패망 이후의 일본 왕실은 귀족제도 없는 기형적인 왕정체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제2차 대전 전승국인 영국의 경우에는 귀족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귀족들이 국회 상원을 점거해 입법권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전 이후의 동북아에서는 이것이 힘들었다. 공산진영과 친미진영이 점거한 지역에서는 귀족제만큼은 철저히 소멸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21세기 대군부인>은 평민 성희주의 입지를 불안정하게 하는 귀족제도를 배경에 깔고 있다. 이 드라마는 왕실-귀족-평민이 공존하던 제2차 대전 이전의 전통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희주의 불안은 왕정제는 용인돼도 귀족제는 용인되지 않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동북아 정치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 친미·반미진영 양쪽에서 귀족제가 철저히 파괴된 역사적 상황이 배경에 깔린다면, 성희주가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겪는 고충은 이 드라마에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왕실의 생존법도 달라지게 된다. 귀족과 동맹해 평민들을 억누르던 전통적 방식이 통하지 않으므로, 대중 친화적인 접근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 속의 왕실은 귀족이 사라진 시대의 왕실 생존법을 보여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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