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액상형 전담 재고 1년치 쌓아뒀다” 벌써 구멍 난 규제, 왜
지난 24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매장. 여러 형태의 전자담배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이다. 업주에게 담배사업법 개정안 시행으로 가격이 올랐느냐고 묻자 “아직은 예전에 사둔 게 있어서 싸게 드릴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두 달 뒤엔 가격이 많이 뛸 수 있으니 여유 있게 사두라는 조언도 했다.
21일 세종시의 한 오피스텔 뒷골목. 평소 청소년 흡연으로 민원이 잦은 곳이다. 이날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서너 명이 모여 있었고, 이 중 두 명은 연기가 특히 많이 나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어떻게 구했느냐고 묻자 고교 2학년인 박모군은 “집앞 무인매장에서 샀는데 아무래도 연초보다는 구하기 쉽다”고 말했다.

24일부터 액상형 전자담배(합성 니코틴)도 법적으로 ‘담배’가 됐다. 37년 만의 담배사업법 개정에 따라 담배의 정의가 ‘연초의 잎’에서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바뀌면서다. 사각지대에 머물던 액상형 전자담배도 규제 틀 안으로 들어왔다. 세금 수입 증가 기대감도 있지만, 현장에선 규제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자담배 판매점은 2019년 500여 곳에서 2024년 2000곳 이상으로 5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별도의 허가가 필요 없고, 창업 비용도 낮아 최근엔 특히 무인 매장이 많아졌다. 국내에 액상형 전자담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15년 이후 10여 년 만에 시장은 급팽창했다.
사실상 미성년자 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 수요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무인 전자담배 매장 중 출입문이 상시 개방됐거나 성인 인증장치가 없는 곳 비율은 83.9%에 달했다(한국건강증진개발원). 청소년 사이에 구하기 힘든 연초 담배의 대용품으로 널리 퍼진 이유다.
최근 들어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2년 736만 달러 수준이던 합성 니코틴 용액 수입액은 지난해 6453만 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3월까지 합성 니코틴 용액 수입액은 7959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수입액을 넘어섰다. 담배사업법 시행에 앞서 재고를 쌓아두려는 수요가 몰린 탓이다. 담배사업법은 ‘제조·반출일’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즉 법 시행 전에 이미 반출된 물량은 세금 없이 유통될 수 있다. 세금이 부과된 물량과 그렇지 않은 물량이 공존하는 기형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거란 의미다.
이번 법 시행에 따라 최소한의 규제 기반은 마련됐다. 앞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도 온라인 판매가 금지되고, 가게를 운영하려면 담배판매 소매인 지정을 받아야 한다. 청소년 판매도 금지되는데 무인 가게여도 판매기에 성인 인증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기존 담배처럼 mL당 1799원의 제세부담금이 붙는다. 정부가 업계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2년간 세금을 절반으로 낮춰 적용하기로 했지만 30mL짜리 합성 니코틴 액상 한 병에 2만7000원가량 세금이 새로 부과된다.
하지만 이런 대책도 큰 효과를 보긴 어려울 거란 지적이 많다. 10년간 입법이 지연되면서 재고 쌓기 등 업계가 이미 대응을 해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혼란은 입법 과정에서도 예견됐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 장치는 마련되지 못했다. 일단 정부는 과세 전 제조돼 6개월이 지난 제품부터 판매 중단을 권고한다는 입장이다.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수거·파기까지 강제하겠다는 취지인데, 재고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실효성은 의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많게는 1년 치 재고를 쌓아 놓은 곳들도 있는데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긴 쉽지 않은 구조”라고 꼬집었다.
청소년 접근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 2%대에서 2024년 4%대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청소년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탓에 이동식 저장장치(USB)나 키링 등의 형태로 변형된 제품도 수없이 많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법 시행 이후에도 유통구조 전반에 엄격한 관리와 함께 소매 판매인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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