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아이유 이긴 박보검-김유정의 '청춘 사극'
[양형석 기자]
사실 1990년대까지 사극은 <용의 눈물>과 <한명회> 등으로 대표되는 KBS의 대하 사극이나 MBC의 <조선왕조500년> 같은 정통 사극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해 허구와 현대적 감각을 최대한 자제한 채 이야기를 진행했고 고 이순배 배우와 고 김무생 배우, 이덕화, 유동근 등 연기력이 검증된 베테랑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긴 호흡으로 드라마를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허준>과<상도>, <대장금>, <선덕여왕> 등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사극'이 유행했고 더 나아가 사극의 외피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퓨전 사극'이 사극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MBC의 <다모>와 <주몽>, <해를 품은 달>, KBS의 <쾌도 홍길동>, <추노>, <공주의 남자>, SBS의 <일지매>, <뿌리 깊은 나무> 등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퓨전 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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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
| ⓒ <구르미 그린 달빛> 홈페이지 |
미취학 아동 시절이던 2003년 과자CF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김유정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각설탕>, <황진이>에서 각각 임수정과 송혜교의 아역을 맡았다. 영화와 함께 드라마 활동도 꾸준히 병행한 김유정은 2008년 <일지매>에서 한효주, <바람의 화원>에서 문근영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SBS 연기대상에서 아역상을 수상했다.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은지 역을 맡아 김윤석과 뛰어난 연기 호흡을 보여준 김유정은 2009년 <해운대>를 통해 일찌감치 1000만 배우에 등극했다. 김유정은 2010년에도 <동이>와 <욕망의 불꽃>, <로드 넘버 원>,<구미호:여우누이뎐>에 출연하며 일찌감치 아역상(청소년 연기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2012년에는 <해를 품은 달>에서 허연우(한가인 분)의 아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4년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악역으로 변신한 김유정은 2016년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누군가의 아역도, 주인공의 딸도 아닌 주인공 홍라온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020년 웹툰 원작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에서 주인공 정샛별 역을 맡아 지창욱과 연기 호흡을 맞춘 김유정은 2021년 SBS 드라마 <홍천기>에서 조선 최초로 도화원에 입성한 여화공 홍천기를 연기했다. 굴곡 있는 홍천기의 삶을 세심하게 표현한 김유정은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를 통해 12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2023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통해 데뷔 첫 연극에 도전한 김유정은 2023년 <마이 데몬>에 출연했고 <마이 데몬>은 넷플릭스에서 3억3100만 시간의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넷플릭스 TOP 10 집계 기준). 2024년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에 특별 출연한 김유정은 작년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친애하는 X>에서 11년 만에 악역 연기에 도전했고 하반기에는 tvN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에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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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보검은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과 베스트 커플상,네티즌상을 수상했다. |
| ⓒ KBS 화면 캡처 |
지금이야 2016년에 큰 사랑을 받았던 '퓨전 청춘 사극'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처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방영 첫 주에는 SBS 드라마 <닥터스>와 겹쳤고 <닥터스> 종영 후에는 이준기와 아이유 주연의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가 방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은 최고 시청률 23.3%를 기록하면서 월화드라마의 최종 승자가 됐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이영은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만들었지만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기 때문에 역사와는 다른 오류들이 많았다. 홍라온 역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민폐 캐릭터가 되면서 김유정의 열연과 별개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원작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했던 김병연(광동연 분)의 비중은 드라마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박보검은 제작 발표회에서 시청률 20%를 넘기면 광화문에서 팬사인회를 열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단 7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결국 종영 다음날인 2016년 10월 19일 연극 일정이 있던 채수빈을 제외한 주연 배우 4명이 경복궁에서 팬사인회를 진행했는데 드라마의 열혈 팬들과 일반 시민들, 외국인 관광객까지 5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경찰병력까지 동원돼 행사를 진행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젊은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한 청춘 사극답게 OST의 완성도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실제로 12번에 걸쳐 공개된 OST에는 거미와 성시경, 케이윌, 백지영, 벤, 황치열, 이적 등 쟁쟁한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고 박보검도 <내 사람>이란 곡을 직접 불렀다. 다만 화려한 OST의 뒤편에는 OST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이야기의 몰입에 방해를 받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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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동연이 연기한 김병연은 가장 가까이서 세자 이영을 지키는 호위무사이자 벗이었다. |
| ⓒ KBS 화면 캡처 |
박보검이 연기한 이영이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면 곽동연이 맡은 김병연은 김삿갓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원작 소설에서 이영-홍라온과의 삼각관계가 부각된 것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김윤성(진영 분), 조하연(채수빈 분)이 얽힌 4각관계가 중심이 되면서 본의 아니게 분량이 줄었지만 김병연은 끝까지 이영을 향한 충심을 보여주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2023년 정소민, 김유정과 함께 연극 <셰인스피어 인 러브>에서 비올라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던 채수빈은 아직 신인의 이미지가 남아있던 2016년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예조판서 조만형(이대연 분)의 딸 조하연 역을 맡았다.
<허준>의 광해군, <주몽>의 대소왕자, <광개토대왕>의 고운 등 사극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줬던 김승수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순조를 모티브로 한 조선의 국왕을 연기했다. 어린 시절에 왕이 되고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김헌 일가에 권력을 이양한 유약한 군주가 됐는데 김승수는 카리스마라고는 찾을 수 없는 나약한 왕을 잘 표현하면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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