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자녀' 출현 사회,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할 것
[윤일희 기자]
전업주부의 '전업'은 애매한 용어다. '전업'은 집중적 돈벌이로서의 일을 뜻하지만, 전업주부의 노동은 언제나 무급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용어가 상당히 불편한데, 이제 급기야 '전업 자녀'라는 용어를 접하기에 이르렀다. 요상한 세상이다.
인구 전문가 전영수는 인구 변화와 시대 전환에 따른 한 가지 변화에 주목한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동거하는 자식들의 대거 등장이 그것인데, 그는 이러한 자식 세대를 '전업 자녀'라 부른다. 그리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의 제목도 <전업 자녀>(2026년 2월 출간)다.
그가 말하는 '전업 자녀'의 출현 배경은 이렇다. 우선 경제적 요인으로는 청년 세대의 취업난, 비정규직화, 주거 비용의 증가, 독립할 자산의 부족 등을 든다. 이는 이미 한국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어 온 지 오래다. 다음은 사회 문화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청년들의 비혼화와 부모의 과잉 보호가 낳은 독립 기피 등이다. 세 번째는 개인적 요인으로 청년 자아 정체감의 지연이나 자율성과 책임감의 부족 그리고 우울감들이다. 납득 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
|
| ▲ 책표지 |
| ⓒ 한국경제신문 |
이는 의미상 '전업 자녀'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전업을 운운할 정도로 수적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며, 이제는 일부의 가족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해 저자는 '전업 자녀'로 호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전업주부가 무임 노동이듯이 '전업 자녀'도 그렇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전업 자녀'를 호명하기 전 나는 이 현상을 꽤 심각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지인의 자녀 중 적지 않은 수가 집에서 '쉬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준비하다 이제는 포기한듯한 분위기인 자녀나, 아직 '취준생'으로 인지하긴 하나 딱히 노력하지도 않는 자녀 등이다.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아마도 '전업 자녀'일 이들의 일상은 주로 게임으로 소일하기였다. 부모인 지인들은 답답하지만 자식에게 눈치를 주고 있지는 않다는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전업 자녀'를 접하기 전 사회는 이런 청년들을 '은둔 청년'이라 호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방송된 KBS 추적 60분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은둔 청년'>은 은둔 청년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들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도 있었고, 독립 주거를 하면서 은둔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송을 보며 확인한 건 어쨌든 이들이 은둔할 수 있는 주된 환경에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호구지책이 막연하다면 자녀의 은둔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이 현실의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 현상을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해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었을 뿐 아니라, 자녀의 은둔에 엄마가 문제적 요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바라봐서는 은둔 청년이든 '전업 자녀'든 해결할 수 없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청년 세대의 '쉬고 있음' 현상을 은둔 청년으로 부정적으로 이미지화 하는 것에 저자는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청년 세대의 '쉬고 있음'을 사회 문제이자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라면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호구지책부터 먼저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의 진단이자 조언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부모의 사후 남겨질 '쉬고 있음' 청년 세대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다. 앞서 소개한 내 지인들의 경우, 이들의 '전업 자녀'가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데 문제없을 유산을 남길 여력이 되는 이들은 없어 보인다. 그때 이들의 '전업 자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전업 자녀'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부모의 연금으로 겨우 생활하던 은둔 자녀가 부모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연금을 타 생활하다 발각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심각한 취업난에 취업을 접고 아예 부모의 연금을 나누어 쓰는 조건으로 부모를 돌보는 청년 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는 부모의 사후 연금이 끊기고 난 다음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가족 복지로서의 '전업 자녀'를 제안한다. 부모 돌봄을 가족 복지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이 제안은 이미 적지 않은 '영케어러'가 해 온 돌봄 노동과 상통 한다. 문제는 돌봄 노동에 대한 대가다. '영케어러'니 'K장녀'니 하는 말은 부모를 무제한 무급으로 돌봐온 이들의 고된 돌봄에 사회가 응답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잔혹한 용어다. 이들의 돌봄에서 무기한 무급 노동이라는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면, 가족 복지로서의 '전업 자녀'는 '영케어러'나 'K장녀'의 연장선이 될 뿐이다. 이들의 돌봄이 복지가 되려면, 이를 노동으로 공인할 사회적 책임과 재정 정책이 우선 돼야 하지 않을까.
'쉬고 있음' 청년의 계급적 취약성을 분석해야
저자는 '전업 자녀'의 공인화와 함께 고령화 사회로 침체될 경제 성장을 선순환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업 자녀'와의 자산 공유를 제안한다. 그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제시하는데, 일본의 '치매 머니'가 GDP의 32%라고 볼 때, 이 자산이 '전업 자녀'에게 순환되었다면 경기 침체를 완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치매 머니'는 GDP의 6%로 추산되는데, 저자는 이 적체된 돈을 청년에게 순환 시킨다면, 청년의 경제도 넉넉해지고 경기도 순환 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럴듯하지만 이 또한 나눌 자산이 있는 경우일 테다. 이는 2030 청년 세대의 부동산 취득 광풍이나 늘어나는 증여나 상속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눌 여력이 있는 부모는 이미 자녀와의 자산 공유를 초과 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제안에는 나눌 것이 없는 부모 세대의 자산 공유 없음으로 인해 더 취약해질 '전업 자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가 '전업 자녀'를 화두로 제시한 데는, 이를 단지 부정적인 사회 문제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문제를 사회의 '활용 엔진'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적인 시각을 거두어들이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쉬고 있음' 청년의 계급적 취약성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한 단계별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물려받거나 공유될 자산이 없는 청년 세대는 정작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전업 자녀'이지 않을까. 내 자식이 '전업 자녀'를 선언한다면? 나로서는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나같이 심난한 부모가 한둘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금 제주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이 대통령의 평소와 다른 화법
- 한화의 수상한 응원가... '달관'해서 웃는 게 아닙니다
-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 중요한 게 빠졌다
- 꽃구경 왔는데 출입 금지... 국회 산책, 반려견만 안된다니
- 은퇴한 손님들에게 "부럽다" 소리 듣는 아빠가 일하는 법
- 나는 이미 '그 노래' 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 식도를 타고 흐르는 계피의 열기에 마음이 진정되는 차
- '심판 겸 선수' 지적에 양향자, 최고위 불참 "논쟁할 시간 없다"
- AI가 '가상의 한국인' 700만 명을 만들었다
- 입지도 않는 '등골 브레이커' 교복, 왜 고집해야 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