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군도 추첨? 20년 만에 군입대 의무 전면 개편
[박정연 기자]
20년 만에 전면 개편되는 캄보디아 의무병제가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병력 충원 체계를 넘어 청년 정책과 노동시장, 예비군 제도를 하나로 묶는 구조 개편으로, 국가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편 구상은 지난 4월 26일 노동절 기념행사에서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가 직접 공개했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새 의무병역 제도의 작동 방식을 설명했다.
훈 마넷 총리는 "18세부터 25세까지 모든 남성이 병역 의무 대상이지만, 모두가 즉시 입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방위 수요에 따라 매년 필요한 인원을 추첨 방식으로 선발한다"고 밝혔다.
선발된 인원은 2년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뒤, 45세까지 예비군으로 편입된다. 예비군은 전력 유지를 위해 연간 1~2주 훈련을 받는 구조다.
훈 마넷 총리는 사회 복귀 문제도 강조했다. 그는 "의무 복무를 마친 병사들은 반드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 이행이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뜻이다. 단 급여 체계는 자원입대 병사와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추가 보너스는 지급되지 않는다.
이번 개편은 군사 정책을 넘어 청년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훈 마넷 총리는 법무부 장관에게 청소년 범죄자들을 군의 비전투 지원 역할에 활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무기를 지급하지 않고 참호를 파거나 군 공병, 물류 지원 등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 수감은 국가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의 복무 기간은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훈 마넷 총리는 "군 복무 경험을 통해 군인들의 헌신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청년들에게는 다른 형태의 사회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병역 제도를 단순한 군사 정책이 아닌 국가 운영 구조의 일부로 규정했다. "병역 제도는 청년 정책과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의무병제는 이미 2006년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당시 국가 방위 의무를 명시한 법 개정을 통해 징집 제도의 틀은 만들어졌지만, 실제 전면 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수년간 제한적 적용이나 사실상 미가동 상태가 이어졌다.
이번 개편은 사실상 '잠재적 제도'의 현실화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추첨제 도입, 예비군 장기 관리, 노동시장 복귀 보장, 급여 체계 정비 등이 결합되면서 병역 제도가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재구성되는 흐름이다.
캄보디아 군 약 12만 규모, 육군 중심 체계
한편 이번 개편 논의의 현실적 기반에는 현재 캄보디아 군 구조가 있다. 공개된 국제 군사력 추정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왕립군은 총 약 12만4천 명 수준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육군이 핵심 전력이다. 육군은 약 7만5천 명 수준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지상 방어와 국경 지역 통제를 담당한다. 해군은 약 2800명 규모로 구성돼 있으며,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 그리고 제한된 해안 구역에서의 경비 및 순찰 임무를 수행한다. 소규모지만 내륙 수로 중심의 국가 구조를 반영한 형태다. 공군은 약 1천5백 명 규모로 가장 작은 전력이다. 수송기와 헬리콥터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투기 전력 없이 제한적인 공중 이동 및 지원 임무에 집중돼 있다.
결과적으로 캄보디아 군은 육군 중심의 전형적인 내륙 방어형 구조를 갖고 있으며, 공군과 해군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다. 이 구조적 한계는 최근 국경 분쟁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논쟁적인 요소는 청소년 범죄자의 군 활용 방안이다. 총리는 법무부 장관과 군 지휘부에 해당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총리는 군사적 활용 범위를 전투가 아닌 지원 영역으로 제한했다. 총리는 "이들에게 무기를 지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참호를 파거나 군 공병, 물류 지원 같은 후방 역할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 교정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그는 "이들을 감옥에 보내면 결국 우리의 쌀만 낭비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출소 후 일부는 변화하겠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전선에 투입할 필요는 없지만 전선을 지원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캄보디아 개편과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국가는 태국이다. 태국의 병역제는 동남아에서도 대표적인 추첨 징병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은 만 21세 전후 남성을 대상으로 의무 징병을 실시하지만, 핵심은 매년 4월 진행되는 공개 추첨이다. 신체검사 이후 추첨을 통해 복무 여부가 결정되며, 빨간 카드는 현역 입대, 검은 카드는 면제다. 복무 기간은 일반적으로 2년이며 자원입대자는 단축 복무가 가능하다. 여기에 ROTC(장교후보 과정), 종교적 면제(불교 승려), 가족 부양 사유 등 다양한 예외 장치가 결합돼 있다.
한편 다른 동남아 주변국 병역제도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베트남은 강한 국가 동원형 의무복무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정 연령 남성이 사실상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수행하는 구조다. 싱가포르는 전면 의무복무와 장기 예비군 체계를 결합한 고도화된 모델로, 모든 남성이 군 복무 이후 국가 차원의 예비군 관리 체계에 편입된다. 인도네시아는 선택적 군사훈련 기반의 제한적 동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면 징병제는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과거 의무훈련 제도를 운영했으나 현재는 자원입대 중심 구조로 전환됐다.
이처럼 각국은 서로 다른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캄보디아는 추첨 징병과 장기 예비군을 결합한 혼합형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
안보 충돌과 노동시장 붕괴가 만든 정책 압력
이번 개편의 배경에는 최근 안보 경험이 자리한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태국과의 국경 군사 충돌을 통해 양국 간 전력 격차를 체감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대응 능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국방 체계 전반의 재검토가 촉발됐다.
경제 구조도 중요한 변수다. 캄보디아는 해외 노동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태국 등 인접국으로의 노동 이동이 주요 생계 기반이었다. 그러나 국경 분쟁 과정에서 태국에서 일하던 대규모 노동자가 귀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 노동·이주 매체인 미그런트 타임스(Migrant Times)는 양국 국경을 둘러싼 무력 충돌 이후 지난해 태국에서 일하던 약 90만 명 규모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단계적으로 귀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태국의 공장, 건설, 농업 부문에 종사하던 이주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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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해 태국과의 전쟁 여파로 여전히 집으로 귀환하지 못한 캄보디아 난민들. 2026년 1월 촬영 |
| ⓒ 박정연 |
이를 구조적으로 환산하면, 전체 귀환 노동자 약 90만 명 가운데 약 27만 명 정도만이 재취업 또는 경제활동에 안정적으로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약 60만~65만 명 규모는 여전히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실업 상태이거나, 불안정한 생계형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일부 현지 분석가들은 캄보디아정부가 내놓은 이번 병역제 개편이 군사적 필요에만 국한된 정책이라기보다는, 과잉 상태에 놓인 청년 실업 노동력을 군 조직 내부로 일정 부분 흡수함으로써 노동시장 압력을 완화하려는 기능적 성격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을 단순한 병력 확대가 아니라 복합 국가 재편 정책으로 본다. 제한된 자원으로 군 전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청년 관리, 노동시장 조정, 사회 안정 기능까지 결합된 구조라는 평가다.
반면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지 군 관계자는 "징병 강화가 주변국 흐름과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특히, 청소년 범죄자 군 활용 방안이 군과 사법 체계의 경계를 흐릴 수 있어 다소 걱정된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결국 이번 병역제 개편은 군사 정책을 넘어 청년 정책, 노동 구조, 사회 관리 시스템까지 함께 재편하는 국가 운영 방식의 변화로 읽히고 있다.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추첨 방식의 공정성, 예비군 운영 실효성, 사회 복귀 보장 장치, 그리고 범죄자 활용 제도의 법적·윤리적 정당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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