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억으로 100억 벌어들인 영화, 책이 더 강렬한 까닭
김성호 평론가
모든 영화는 그 작품을 대변하는 장면으로써 기억된다. 때로는 시퀀스, 때로는 신, 때로는 쇼트일 수도 있겠다. 짤막한 이야기, 짧은 동영상, 아예 멈춘 그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모두가 다시 한 장면으로 귀결된다.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과 같이 이 영화 하면 떠오르는, 혹은 그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 장면 말이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장면은 마치 멈춰선 회화처럼 그를 본 이에게 영화 한 편을, 그를 보았을 때의 감상을 뚝딱 펼쳐낸다. <타이타닉> <박하사탕> <플래툰>에서 서로 같고 다른 팔 벌린 이들의 모습이 꼭 그렇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에도 한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라면 많은 수가 같은 장면을 지목할 테다. 아마도 이로부터 영화가 태어났구나 짐작할 수 있는, 영화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감추었다 드러내는 엔딩신 말이다. 엔딩신 프레임 안에는 사각의 프레임이 하나 더 들었다. 카메라는 작은 증명사진 하나를 비춘다. 그 안에 얼굴 하나가 들었다. 이 영화 한 편이 그 얼굴을 확인하기까지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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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책 표지 |
| ⓒ 세미콜론 |
애니메이션 연출에 이어 실사영화, 장편과 중편, 단편까지 오가며 표현의 형식부터 관객과의 접점을 다각화해가고 있던 연상호다. 그에게 그래픽노블이란 선택지는 충분히 매력적일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림과 실사란 차이, 프레임의 예술이란 공통점, 그러면서도 멈춰 있고 멈춰 있지 않다는 차이점이 서로 다른 맛과 멋을 만들었다. 연상호는 그 같고 다름 위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드문 작가다. 그가 <얼굴> 이후 <지옥> <반도 프리퀄 631> <계시록> <지옥2: 부활자> 등 그래픽노블을 만화 전문 작가들과 협업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매체가 그에게 충분한 매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픽노블과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각장애를 딛고 도장 파는 장인으로 시작해 캘리그래피 연구소까지 차린 전각 달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눈도 안 보이는 장애인이 아내도 없이 홀로 키운 아들은 다행히 잘 자라 연구소 소장으로 그를 보좌한다. 그 자체로 인간승리의 감동실화가 아닌가. 여러 언론사가 그를 찾아 다루려 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다. 작품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이 장인을 찾아 촬영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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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스틸컷 |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얼굴>은 제목 그대로 '얼굴'에 얽힌 이야기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임동환과 김수진에게 죽은 어머니가 '못생겼'다고, '괴물' 같은 생김이었다고 말한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사람대접 받지 못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장례식에 찾아온 형제자매와 수소문하여 만난 옛 직장 동료, 사장 등의 증언을 통해 조금씩 확인된다. 실타래를 잡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진실을 복원하는 시도가 오늘에 던지는 충격이 결코 작지 않다.
사진 한 장 없는 어머니다. 그녀와 결혼했던 아버지는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사체와 함께 발견된 그녀의 주민등록증에서도 사진이 있어야 할 부분이 패여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가족과 동료들에게 묻고 물어도 함께 찍은, 혼자서라도 찍힌 사진 한 장을 얻지 못한다. 오로지 증언뿐이다. 그 증언 속에서 어머니는 '똥걸레'이고 '못난 년'이다. 모두가 못난 외모를, 그로부터 생겼을 게 분명한 멸시와 혐오를 절제 없이 드러낸다. 흠 있는 이는 마음껏 짓밟아도 괜찮다는 듯이. 못생긴 게 그대로 흠이란 걸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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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스틸컷 |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얼굴>이 진짜로 겨냥하는 게 무언지를 그래픽노블을 통해 더 확실히 알았다. 미추의 구분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아무렇지 않게 못한 이를 짓밟는 폭력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읽는 내 안에 그와 같은 못남이 들었음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영화에도 인상 깊게 나오는 "보이지 않는다고 모를 것 같으냐고, 아름다운 건 존경받고 추한 건 멸시당한다"고 말하던 맹인의 대사가 또한 인상 깊다. 가만 보면 그러하다. 보지 못하는 이일 수록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추한 이가 아름다움에, 어리석은 이가 지혜로움에 매달린다. 나조차도 지혜와 아름다움을 좇는 이유는 어리석고 못나서가 아닌가. 지혜와 아름다움을 꾸미기보다 감춰진 어리석음과 추함에 직면하여야 나를 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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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스틸컷 |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영화란 매체는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실험적 연출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같은 규격의 프레임으로 전개되는 게 보통이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시네마스코프라 부르는 '2.39:1' 비율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의 크기, 또 보는 이가 앉는 좌석에 따라 같은 비율의 화면이 크고 작아지는 효과가 더해질 뿐이다.
반면 그래픽노블에선 그 프레임을 조절할 수 있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매 프레임이 그렇다. 영화처럼 원근법을 주어 프레임 안에서 인물과 사물의 배치를 달리 하는 건 기본이다. 필요에 따라 프레임 자체를 크고 작게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다. 또 일괄적인 프레임을 가져가다 어느 하나만 달리하여 차이가 주는 인상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얼굴>의 마지막 장면은 이와 같은 효과를 제대로 활용한다. 그토록 찾아 헤맨 어머니의 얼굴이 한 장 가득 채워진 그래픽노블의 감흥이 영화보다 훨씬 클 밖에 없다. 그리하여 여운이 짧지 않다.
본 이는 알겠으나 <얼굴>은 영화와 그래픽노블 모두 여운이 큰 작품이다. 여운을 통하여 작품을 보는 이의 세계를, 내면을 건드린다. 그로부터 작품이 세상과 관계 맺는다. 그 효과에 있어 그래픽노블이, 책이 갖는 장점이 결정적 역할을 해낸다. 나는 <얼굴>이 그래픽노블로써 갖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여긴다. 틀림없이 당신에게도 그러할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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