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연구한 딸, 학교 급식실의 문을 열다
[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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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짓는 여자들> 책표지 |
| ⓒ 산지니 |
특히 튀김이나 볶음처럼 기름을 사용하는 날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다. 고온의 기름이 기화하면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은 조리사들의 폐를 소리 없이 갉아먹는다.
"이러다 정말 암 걸리는 거 아니냐"는 현장의 뼈아픈 농담은 잔인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실제로 수십 년 간 아이들의 밥을 지어온 노동자들이 폐암 진단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기름 요리를 도맡은 날이면 퇴근길에 곧장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방치됐던 급식실 문제는 2025년 7월 학교급식법 개정안 발의로 비로소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법을 만들어낸 것은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어온 투쟁의 결과였다.
현장을 '엄마의 정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기지 않고, 전문 노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기록자가 있다.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어머니와 그 동료들의 삶을 담아낸 <밥 짓는 여자들>의 저자 정다정 작가를 지난 16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 기록의 시작이 어머니의 한마디였다고 들었습니다.
정다정 작가(이하 정): "맞아요. 침묵을 깬 건 제가 아니라 어머니였어요. 어머니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의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어머니와 수시로 통화하며 자문을 구했기에 이 책은 저 혼자 쓴 게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쓴 것이기도 합니다."
- 지자체 및 공공기관 사무직 이력이 있으신데,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감각'은 어디서 왔나요?
정: "특별히 소외된 이들이라기보다, 저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비정규직과 공무직을 오가는 불안정한 노동자였거든요. 고용 형태나 성별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현실이 당장 저와 제 가족, 친구의 이야기였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읽은 다양한 여성 노동자 연구들도 글의 방향성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 현장 급식노동자들은 스스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고요.
정: "그게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든 모순입니다. 학교 급식이 오랫동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인식되어 온 탓에, 노동자들조차 사회적 저평가를 내면화하신 거죠. 하지만 수백 명의 식수를 오차 없이 맞추는 시간 관리와 위생 관리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임기응변과 순발력, 작업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갖춘 현장의 '프로'들입니다."
- 인터뷰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인가요?
정: "본인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실무사님이 떠오릅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엄마를 마주치면 모르는 척 지나갔다는 경험을 나누어 주셨는데, '엄마가 조리사가 아니라 선생님이었어도 그랬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그런 고민들이 뭉쳐져 연구 결과와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 급식실의 환경, 특히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정: "어머니의 동료를 인터뷰하며 어머니가 입은 화상 흉터에 얽힌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습니다. 독한 약품으로 후드를 닦다 약품이 피부를 타고 흘러 화상을 입으셨는데, 당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과정과 고통이 전해져 녹취를 풀다 말고 카페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솥을 혼자 들어 옮겨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 연구자로서의 거리와 딸로서의 가까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셨나요?
정: "억지로 구분하지 않고 '연구하는 딸'의 위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 책 출간 후 주변이나 현장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정: "조리사, 실무사분들은 자신의 업무가 체계적인 표와 글로 정리된 것을 보며 생경해하시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 '내 일이 드디어 인정받는 것 같다'는 그 반응 자체가 하나의 인정으로 작용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장의 인력난이 해소되어 많은 동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절실한 바람도 전해주셨습니다."
- 지난 1월 학교급식법 개정안 통과를 어떻게 보시나요?
정: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는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현장 노동자분들이 수년간 거리에서 투쟁하며 얻어낸 결실입니다. 단순히 '출발점'이라고만 하기엔 그분들이 쏟은 시간이 너무나 막대합니다. 이제는 이 법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개선 계획이 세워져야 합니다."
- 지금 급식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 "가장 먼저 '1인당 담당 식수 인원'을 줄여야 합니다. 현재 노동자 한 명이 약 150명을 담당하는데, 노동 강도가 너무 높으니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고 신규 인력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이 급식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물꼬가 될 것입니다."
- 작가님이 생각하는 '돌봄 노동'의 정의와 이 책이 만들길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정: "돌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오랫동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며 저평가되어 왔습니다. 급식 노동도 그 맥락 안에 있습니다. 10년 후에는 이 책이 '예전엔 이랬구나' 하고 참고할 수 있는 유물이 될 만큼 현장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급식실이 단순히 밥을 먹이는 곳을 넘어 교육의 장이라는 점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랍니다."
- 지금도 현장과 연대하는 방식이 있다면요?
정: "책을 내고 인터뷰에 응하며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경험을 계속 알리는 것이 저만의 연대 방식입니다. 또한 일상 속에서 '아줌마'나 '이모님' 대신 '조리사님, 실무사님'으로 제대로 호칭하는 것부터가 노동 주체로 인정하는 강한 연대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정다정 작가는 변화의 시작점으로 '호명'을 제안한다. '아줌마'나 '이모님'이라는 편안한 이름 뒤로 노동의 가치를 숨기는 대신, '조리사님', '실무사님'이라는 직함으로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존중을 담는 듯하지만 결국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방향입니다. 그분들이 일터에서 노동자로 불리는 것, 그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점심, 급식실 앞을 지나며 건네는 "조리사님,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 한마디. 정 작가의 기록이 바라는 변화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잡지교육원 30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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