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들이 검은 피로 쓴 그 "많은 헛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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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질식한 것 같은 지구의 하늘은 신들의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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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기자말>
[이설야]
검은 눈물
- 김해자
날마다 자라요 갓 태어난 무덤들은
폭탄이 터질 때마다 환해지는 무덤은 어린 올리브나무처럼 단단한 기도,
날마다 팔을 뻗어요 구멍난 땅을 붙잡고 찢어진 하늘을 향해
콜타르처럼 검은 눈물을 빨며 덜자란 키를 키워가요
해 뜨는 공동묘지는 우리들의 학교,
시멘트처럼 납작하게- 분필가루처럼 안 보이게- 헌납된
우리들은 펼쳐요 피 묻은 책과 모서리가 타버린 공책
간신히 살다가 죽을 힘을 다해 죽은 우리는 읽어요
부러진 연필심보다 가는 목소리로- 옹알이를 하듯
사브제- 밀과 보리와 콩의 새싹처럼 푸르게 자라라
센제드- 말린 과실처럼 사랑스러워라
소마크- 새벽처럼 빛나라
우리는 살아요 낮에도 밤에도 캄캄한 무덤 속에서 교실 책상처럼 줄 맞춘
무덤은 죽을 수가 없어요 비닐가방에 담겨 김밥처럼 싸여진 우리는
꽃이 피기 전엔 떨어질 수 없는 꽃받침처럼
지도와 국경보다 오래된 올리브나무처럼
기름비가 내리는 밤,
우리는 섞어요 먼지가 되어 날아간 서로의 꿈들을
흩어진 살점과 발목이 없는 운동화와 부서진 빵- 위에 검은 눈물을 부어
우리는 빚어요 샤프란 냄새가 나는 따뜻한 밥과 다마스크 장미의 향기를
우리는 써요 당신들 발밑에서
지도 위로 번져 나오는 검은 피를 지우개로 빡빡 지우며,
번들번들한 잉크가 마르는 날 알 거에요 켜켜이 쌓인 무덤 속에서 스며 나온
검은 피로 당신들이 얼마나 많은 헛소리들을 써왔는지
시인_김해자 :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축제>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니들의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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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뒤에도 멈추지 않는 작은 입 |
|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
날마다 세계 곳곳에서 무덤을 만들 폭탄들이 쉬지 않고 터지고 있다. 우리의 곤한 잠 속까지 따라와 미사일이 떨어진다. 질식한 것 같은 지구의 하늘은 신들의 전쟁터. "기름비"가 쏟아져 내리는 밤, 세계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보아버린 것들. 검은 불기둥 아래 작은 마을들, 우물 속에도 아이들 눈동자 속에도 날아다니는 폭탄들.
우리는 어쩌다가 악마들이 검은 피로 쓴 그 "많은 헛소리들"에 영혼마저 약탈당하는가. 우리는 어쩌다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은 채로 "지도 위로 번져 나오는 검은 피"를 밟고 가야 하는가. 어쩌다가 우리는 우리가 되지 못하는가. "어린 올리브나무처럼 단단한 기도"는 이제 어느 하늘, 어느 신에게 올려야 하는지. 우리를 잠식한 수많은 전쟁의 그림자 아래, 평화라는 단어는 지금 거대한 호흡기를 매단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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