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퇴행하는 연극계, 시스템이 버린 정의 다시 세울 방법 없나 [D:이슈]

박정선 2026. 4. 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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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내 수직적 권력 구조 지속
성범죄 전력 배우, 변칙적 복귀 시도 검증 부재
"내부 윤리 가이드라인 세우고...필요 시 영구퇴출도 고려해야"

국내 연극계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감형 판결과 핵심 인사의 성비위 수사, 가해 배우의 복귀 시도가 맞물리며 ‘미투’(Me Too) 운동 이후 구축하려 했던 윤리적 기준이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법 체계의 한계와 업계 자정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성범죄 예방과 단죄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지난 23일 광주고법 형사1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광주 지역 극단 대표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의 징역 3년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2년부터 수년 동안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로서 극단원들을 상대로 위력에 의한 상습적인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감형의 결정적 요인은 피해자가 호소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법상의 ‘상해’로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진단받은 PTSD와 과거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이에 따라 가해자의 혐의는 ‘강제추행치상’에서 ‘강제추행’으로 변경됐다.

죄명 변경은 법리적으로 큰 차이를 낳았다. 해당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기 전인 2013년 6월 이전에 발생했다. 상해 혐의가 인정되지 않고 일반 강제추행 혐의만 남게 되자, 재판부는 고소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상당수 범죄에 대해 ‘공소권 없음’에 따른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는 사법부가 피해자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법적 상해의 범주에 포함하는 데 보수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가해자에게 법적 면죄부를 준 결과적 퇴행이라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연극 극단 대표 A씨의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는 유죄로 판단하고 A씨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 처했다.

연극 및 뮤지컬계의 수직적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성비위 의혹은 2026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서울 방배경찰서는 뮤지컬 배우 남경주를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남경주는 지난해 서울의 한 장소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을 벗어난 피해자가 즉시 112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경주 측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해당 사건은 검찰로 넘겨져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 이후 예술계 내 위계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자정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 내 영향력이 큰 원로급 인사를 둘러싼 권력형 성비위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예정이나, 의혹이 제기된 것 자체만으로도 연극계 내부의 고질적인 위계 문화가 여전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법적 단죄의 한계와 더불어 가해 배우들의 변칙적인 무대 복귀 시도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19년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배우 이명행은 출소 후 개명을 통해 복귀를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명행은 2025년 4월 연극 ‘헨리 8세’로 복귀하려 했으나 관객들의 항의로 하차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이훈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해 11월 연극 ‘더 파더’에 캐스팅되어 다시 무대 복귀를 꾀했다. 그러나 개명 사실을 인지한 관객들의 정체 확인과 불매 운동이 이어지면서 공연 하루 전날 하차가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제작 시스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작사가 캐스팅 단계에서 출연 배우의 범죄 이력을 검증하는 ‘레퍼런스 체크’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가해자의 개명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시스템상의 구멍이 확인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연계의 자정 능력이 마비된 상태에서 관객들의 자발적인 감시와 집단적 항의만이 가해자의 복귀를 막는 유일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반복되는 성비위와 가해자의 복귀 논란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산업 전체의 시스템 부재를 의미한다. 광주 미투 사건 판결에서 나타난 법리적 사각지대와 원로급 인사의 수사 상황, 그리고 개명을 통한 가해자의 복귀 시도는 연극계가 직면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객의 감시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며 “사법부의 전향적인 피해자 보호 대책과 더불어, 연극계 내부적으로 성범죄자의 무대 복귀를 원천적으로 검증하고 차단할 수 있는 윤리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영구 퇴출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면서 “무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제도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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